안식월 후 나의 말 詩 8. 진단서

by 푸른킴

푸른 잎 내려다보는

복잡한 상가

몸 하나 겨우 지나갈 골목길

선 채 들여다보는

가방 둘러 맨 젊은이,

하늘색 종이

나는 모른 척

스친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가 어떤 환자인지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얼마를 지불했는지

담당의사가 누구인지

모두 알 수 있다 해도

흰 글씨로 적힌

검은 마음


진단서,

슬픔의 보고서

볼수록 멀리하고 싶고

읽을수록 잊어버리고 싶은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

바람에 흩날려

손 닿을 수 없는 하늘로 사라지길 바라는

불안의 샘


젊음이 한걸음 옮길 때

그 차가운 종이

내 몸에 스치며

푸른 침처럼 찌른다

아프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단 은총


골목을 빠져나오니

세계가 진단서

스쳐가는 사람마다

하얀 종이 한 장씩

들여다보며

서 있는 광장


차가운 시대,

바람에 펄럭이는

우리의 자화상

그러나

여전히 맞잡은

검붉은 도톰한

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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