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트필라*

*트필라: 탄원의 기도

by 푸른킴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 도심을 가로질러 북악산에 올라 불빛이 안개처럼 번지는 밤의 도시를 내려다본 뒤, 서재로 돌아왔을 때]


보이지 않는 야훼여!

그날 거기 계셨습니까?

그 공간에 들어갈 자격은 있었으나,

실상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시민은,

경계 밖에 서야 할,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그날 오후 당신은 거기 계셨습니까?

당당하게 서 있던

검붉은 자,

검푸른 자,

검고 붉고 푸른 사제, 그들은 누구의 후예였습니까?

아니 그 법정은 누구의 세계였습니까?

사람들은 오늘도 그날처럼 묻습니다.

“그는 거기 계시지 않았나?”라고.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른 체할 수도 없습니다.

안개 자욱한 도시,

시계 제로의 시대,

나의 답이 다르고, 너의 답이 다른 세계—

오늘도 여전한 악의 아우성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약한 자의 야훼여!

지난겨울 평안한 저녁,

불현듯—

비상선포에

일상의 뿌리는

속절없이 흔들렸습니다.

살아있는 숨을 힘으로 틀어막는 것,

왜 그 막강한 권한을 오직 한 사람만 독점해야 합니까?

다수의 시민은 여전히 가질 수 없는 힘입니까?

풀려있고, 비틀거리고, 굽은 얼굴 뒤에

왜 무력을 감추도록 허락하셨습니까?

영혼 없이 내던져진 말들의 잔해를

주워 담고 닦아내는 늙고 초라한 이들,

그들이 감당치 못할 힘을

왜 함부로 사용하도록 묵인하셨습니까?

‘왕관을 쓴 자의 무게’를 헌신짝처럼 버린

왕 놀음의 패거리로부터

왜 내 삶의 존폐를 가르는

사악한 혀가 무기처럼 쓰이도록 두셨습니까?

그 권력의 열쇠는

감당할 수 있는 이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아니, 아예 누구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봉인해야 했지 않겠습니까?


의로운 정치의 야훼여!

겉은 평온하나 속은 혼란한 도시,

바람 불어 서늘해진 골목마다

구름은 잔뜩 끼어 길을 삼켜버렸습니다.

산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 불빛들은

계절을 따라 안개와 어둠, 망각의 저편에 갇혔습니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향 없이 뛰는 군중,

정의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무리,

질서를 깨뜨리는 폭거—

그들은 소돔 성의 문을 부수며 달려든

비법자의 환생입니까?

나는 왜 아직도

당신이 이 일을 묵과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 일의 끝엔 무엇이 기다립니까?

극도의 피로?

진리의 승리는 언감생심이라 비아냥대는

그 소리가 여전합니다.


하늘과 땅의 야훼여!

그래서 슬픕니다. 억울합니다.

아니, 혹 내가 언젠가 피고의 자리에 설 수도 있다면

역지사지해야 합니까?

밤을 지나 아침이 와도

어둠은 여전합니다.

하루는 다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념의 밤은 깊습니다.

현실은 조용하지만

무리는 자기 동굴에 잠복한 채

내일을 피해 갈 계략을 꾸밀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모든 내일은 악의 날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측 못 할 날들 앞에서도

새벽은 오고, 아침은 옵니다.

그 브니엘의 날,

나의 선택이 당신이 의도한 길이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야훼여!

견디겠습니다.

길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옳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진리이고, 의로움이시기 때문입니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당신의 궤도에 내 몸을 걸겠습니다.

나는 최후에 당신만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이 땅을 믿어주십시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더 배우고 알아가겠습니다.

무법한 무리라면 꺾어 주시고,

정의에서 발을 떼지 않고 사는 이라면

토닥여 주십시오.

몸을 기울여 주십시오.

지치지 않게,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루도록,

힘이 다하기 전에 깃발을 들어주십시오.

그 깃발에는 이렇게 적어주십시오.

“참다 참다 일어난 삼위일체 모임.”

아직도 땅은 흔들리고 있지만

그날, 당신의 의로운 통치만이

반드시 이 땅에 이루어지리니,

나는 한결같이 쉬지 않고

'주어진 길'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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