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단어 34-365
동작이 재바르지 않고 더딘 듯하거나
짜임새가 탄탄하지 않아 사이사이가
느슨하고 성긴 모습
1.
아침 라디오 한 방송에서
가을, 지는 꽃 풍경을 이야기한다.
어떤 곳이 어디에,
어느 곳에 어떤 꽃이
아름답게 바람 따라 흘러가는지
조곤조곤 마음에 담아준다.
로스팅하다 그 이야기
나릿나릿한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가을을 노래한 시인의 시를 수첩에 끄적였다.
2.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엽서」
생각해 보면 숱한 꽃 틈에 살아
나릿나릿 걷는 듯한 저 낙엽이 사람만큼 아름다우리라.
3.
‘나릿나릿’
가볍게 벚꽃잎 하늘거리는 듯하고
느닷없이 목련꽃 이울어 막 떨어지는 듯하고
천천히 매화꽃 한 잎씩 날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저무는 아카시아 잎 하늘거리는 모양 같기도 하며,
떨어져 한 걸음씩 밀려가는 플라타너스 손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른한 몸에 힘이 없어 터벅터벅 걷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글자의 겉과 속이 다르고,
눈에 보이는 글자와 머릿속 떠올리는 뜻이 다르다.
4.
‘나릿나릿’
느릿느릿이라고 했다면 얼른 알아챘겠지만,
그래도 이 말을 소리 내서 읽으면
발음이 경쾌해서
몸은 기분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어린아이 같이 경쾌해진다.
손 내밀어 만지고 싶은 아기 볼살처럼.
사실 이 말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거나
괜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느긋하게 흐느적거리는 모습에 가장 어울린다.
우직하면서
비어있는 가을 걸음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