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이 가을, 그대의 뿌리는 건강한가요?”

by 푸른킴

HY에게

여름이 마침내 가을에 굴복했습니다.

지난여름은 지난하게 삶을 괴롭혔습니다.

열기와 비로 무장하고, 삶의 숨구멍을 완전히 틀어막았었습니다.

비틀거리는 인간과 달리 숲과 나무는 여름에 저항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자주 역부족이었습니다.

뜨거운 햇빛이 조금 가려졌다 해도

숲은 아예 습기에 포위되어 버렸습니다.

바람마저 냉기를 잃고 숲 안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맴돌면 돌수록 열기만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이었습니다.

강한 여름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강하패퇴(强夏退敗)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빛나는 결실을 위해 수고한 일이 없습니다. 어떤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저 버티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은혜입니다. 그 끝 여름 앞에 승장(勝將)처럼 서 있으니 말입니다.

온몸이 청랑합니다. 계절은 연약해 보이는 카이로스 앞에

스스로 복종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경험합니다.

이렇게 가을은 마침내 여름을 이겼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좋은 소식을 한 번 더 이 글에 실어 전해드립니다.


Y!

올해 가을은 길지 않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가을은 더는 시간의 길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내용으로 자기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강한 여름에 비한다면, 가을은 여리고 여릴 것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오랜만에 삶을 즐겁게 할 것 같은 기대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밖을 한번 나가 보십시오.

산길이라도 한번 걸어보십시오.

바람은 몸에 알맞게 휘감깁니다.

기온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줍니다.

하늘은 끝없이 푸릅니다. 땅은 황금빛으로 덮이고 있습니다.

나무와 숲은 갈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세계는 자연답게 탈색 중입니다.

모든 뿌리는 열매로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길고 긴, 강한 여름이 끝내 이뤄내지 못했던 삶의 결실,

여릿하고 하늘하늘한 가을이 조건 없이 선물해 줄 것입니다.

사람은 이 결실하는 시간의 강둑에 앉아 반성하며 철학합니다.

솟구친 열매가 아니라 숨겨져 보이지 않는 내 삶의 뿌리를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것이 마르거나 썩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그대의 삶의 뿌리는 건강하신가요?


Y!

올해 서른여덟 번째 주일을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와 내 작은 좌탁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일기를 적습니다.

9월 하루하루 적어두는 제목은 ‘내 인생의 네 글자 단어’입니다.

오늘 단어는 ‘심기일전(心機一轉)’입니다.

사전에 따르면, ‘마음의 틀을 한번 바꿔보는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용기를 낸다’ 라거나

‘마음을 다잡아 힘을 내보다’라는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애쓰지 않아도 편히 지나갈 나의 삶,

습관처럼 굳어진 삶,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생각의 틀,

마음의 경계를 한번 비판해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심기일전은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입니다.

마음의 경계를 넓혀보는 일입니다.

열매가 아니라 뿌리를 다시 살펴보는 일입니다.

뿌리에 대한 ‘반성’입니다.

결실을 향해 내달렸던 직진의 생에 대한 프락시스(praxis)입니다.


H!

저는 여름 내내 고전했습니다.

하지만 가을이 심기일전으로 저를 안내합니다.

이것이 저를 위로합니다.

다행히 지난여름에도 아직 뿌리는 마르지 않았고,

썩지 않았다고 다독여줍니다.

올해 그대의 가을은 어떠할까요?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어떤 열매를 맺었을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대의 열정으로

그대 주위의 여러 사람이 행복한 추억을 간직했을 것입니다.

봄과 여름을 꿋꿋하게 지나온 그대에게

이 가을은 성찬(盛饌)의 계절이 분명합니다.

이 잔치를 누릴 자격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 잔치가 다가올 겨울을 버텨낼 새 힘을 공급할 것입니다.

여유롭고, 느긋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할 것입니다.

그 잔치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마음으로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근처 시간의 강둑에 올라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 둑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심기일전의 의례(儀禮)를 가져본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심기일전은

나를 해체하는 것이며,

탐스럽게 맺힌 열매가 아닌 흙 속에 가려진 뿌리를 들춰내는 것입니다.

‘돌이킴’이며, ‘처음으로 되돌아감(ad fontes)’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 의례 속에서 그대의 가을은 더욱 화사하게 물들 것입니다.


H!

저는 여전히 되새겨봅니다.

세계는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전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제가 도달해야 할 자리가 있는지 안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내판이 선명한지 매번 제 눈으로 확인해야겠습니다.

심지어 그 방향을 스스로 찾아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겠습니다.

최종 항구에 안착하도록 오래된 나침반을 잘 다듬어야겠습니다.

밤바다 같은 세계를 비추는 땅의 등대를 주시해야겠습니다.

또한, 세계는 분명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 개혁은 정교한 교리나 화려한 책이나

치밀한 논문, 강한 선포와 놀라운 업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래 온전한 개혁은

보잘것없는 자기반성과 성찰로 지지될 때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뒤덮고 있는 불순한 흙을 털어내는

‘뿌리 털기’로 동력을 얻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 가을에 드러낼 화려한 열매와 더불어

아직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 나의 뿌리가

곧 다가올 엄동설한을 견실하게 지나갈 수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려 합니다.


진리가 변색된 이 계절에

HY, 그대와 나의 삶에

언제나

샬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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