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시

나의 한 단어 45-365

by 푸른킴


'겨우, 가까스로, 간신히'라는

서남지역 사투리


1.

이유는 모르지만

그 말을 들으면 ‘어머니 생각’이 나는 말이 있다.

그저 가벼운 일에, 아니면 신중한 일에,

아니면 그만저만한 일에도 마음 한편을 꺼내 주던

말이 있다. 말과 상관없이 마음소리가 들리는 말이다.


2.

‘포도~시’

포도씨가 아니다.

가운데 글자 ‘도’를 길게 발음해야

소리만큼이나

마음 한편에서 어떤 즐거운 한숨이

추억과 함께 올라온다.


3.

이 말을 오래전에 쓰려고 정해두었는데

사실, 오늘따라

이 말에 딱 어울리는 하루를 보냈다.

아이 친구가, 공동체 식구들, 우리 가족이 먹을

전을 온종일 부치고

‘겨우’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온몸의 힘을

다 쏟아부어

하루를 보냈다.

저녁 무렵

나의 지난 시간을

혼자 조용히 되새겨본다.


4.

‘포도~시’

사실 어머니의 특허 같은 말이었다.

어머니는 이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려주었다.

몇 해전, 가을 나는 청산도를 걷고 있었고,

그다음 날, 어머니는

이 말만 내 삶에 남겨두고

하늘길을 걸어 귀천하셨다.

내 삶은 그날 이후로

‘포도~시’ 하루하루를 걸어왔다.


5.

‘포도시’

여전히 나는 잘 살아왔다.

‘잘했다’ 다시 잘할 것이다.

여름내 푸르렀던

아카시아에

명절 인사 겸

새 두 마리가 찾아왔다.

초록이 끝나간다지만

그 우연한 방문에

아카시아 새싹은

다시 돋아날 준비를

힘차게 할 모양이다.

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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