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둥싱둥

나의 한 단어 50-365

by 푸른킴

본래 기운이 남아 있어 싱싱한 모양.

부끄러워하지 않고 괜히 시큰둥한 모양.


1.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도

이유 없이 둥둥 떠 있는 듯한 저녁이 있다.

평소와 달리, 새로운 일을 해도 좋을 만큼

몸이 활기 넘치는 순간도 있다.

‘싱둥싱둥’

힘을 쓰고도 남아 있어

싱싱한 느낌이 물씬 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글자와 발음이 잘 어울린다.


2.

싱-둥-싱-둥.

조금 천천히 읽으면

전혀 다른 느낌도 든다.

사전에는 ‘주눅 들지 않고,

시큰둥한 듯 당당한 모습’으로 풀이되어 있다.

츤데레 같은 생기발랄함을 지닌 모습이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에는

‘활기와 무심함’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공존한다.


3.

그러나 단어의 뜻이 무엇이든,

그 말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뉘앙스는 달라진다.

모든 말에는 고유한 생명력이 있다.

상황과 어울릴 때

그 의미가 싱둥싱둥 살아나고,

그 말을 기억하는 삶도

싱-둥-싱-둥

살아난다.


4.

언젠가 교육방송(EBS)에서

방송인 이동우의 인터뷰를 봤다.

느닷없는 시각장애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던 그가 말했다.

눈이 잘 보였을 때는 안 보였는데,
눈 감고 나니 사랑이 잘 보였다.

그는 완전히 좌절했지만,

삶의 잔력까지 소진하진 않았다.

싱둥싱둥한 그의 모습이 여전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오래도록

그의 목소리와 표정이 여전히

싱둥싱둥

나의 기억에 살아 있다.


5.

싱둥싱둥

온종일 힘겹게 일하고 난 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너지는 날이 많지만

즐겨보는 드라마,

한 끼 밥상,

실없어 보이는 농담,

가벼운 상상,

무심한 듯 다독이는 가족의 말 한마디가

내 삶을 싱둥싱둥하게 만들어준다.

사소하면서도 당연한 사치.

싱둥싱둥~


6.

덧붙여,

단어란 언제 태어났느냐보다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자라느냐가 중요하다.

나이보다 성장방식이

그 말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사용되지 않는 말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살아 있는 말을

싱둥싱둥할 정도로 쓰고 또 써서,

그 단어의 삶을 견실하게 지켜주자.

그 작은 말이

다시 누군가의 삶에

싱둥싱둥 피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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