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기도 詩 3. 광장 순례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후부터 어느 날

by 푸른킴
<주> 〈걷는 기도 詩 3. 광장 순례〉는 단순히 ‘시위의 현장’을 기록하는 사회참여 시가 아니다. 광장을 하나의 신전(神殿)으로, 걷기를 하나의 기도로 전환하여 이 시대를 사는 나를 성찰하려는 시적 신학(詩的神學)을 구현해 보려 했다. ‘걷는 기도시’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시는 지난해, 정치적 절망을 안겨주었던 나의 현실을 통과하면서 그래도 신앙적 성찰로 나를 이끌어보겠다는 나의 순례를 서사로 구성한 것이다. 신학은 문학, 시학, 시의 철학이다.


오늘 슬프나 버틸만한

생각 깊어진다

여의도 광화문 길바닥 찬바람에

몸은 사그라들고

격앙되어야만 할 구호와 연설 속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쿠오 바디스Quo vadis”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요


도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자유와 평화란 무엇인가

법은,

공의와 정의란 어디로


자기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고

손발 묶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족쇄를 받아들여

이 정도면

‘잘했다’며

당당하게 포장하고,

‘계엄선포 심각한 위헌’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고

진중한 척 말 만하는,

너, 정치여―


스스로 고유한 자기 권한 빼앗겨도

무리에 몸 숨겨,

아이들의 미래와 장래를 위해

지금은 불법을 감당해야 한다는,

조삼모사와 권모술수,

자기방어와 자기모순으로

자유와 정의를 팔아먹어도 좋다고 강변하는,

법의 정의로움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서

불법의 비겁함에 대해서는 말을 바꾸는,

정략에 따라 이익을 따라 태도를 달리하면서도

국익과 공익으로 포장하며 거짓도 용인하는,


아담과 하와의 후예


자기 투표는 쓰레기처럼 버렸으면서

시간이 지나 한 표가 필요할 때가 오면

넙죽하며 한 표 줍쇼 말하는,

계엄이라는 묵은 법령과 사장된 교과서의 단어를

시대의 신조어인 양 꺼내서

무력과 권력, 사익과 이기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사과라는 이름을 걸고서도 절박하지 않으며

썩은 사과인지를 자신만 모르고 새것마냥 우쭐대며

기계처럼 멀뚱멀뚱, AI처럼 투석투석,

형식만 흉내 내는 인간 로봇들,

어리석을 대로 어리석은 자들,


이들과 함께 이 땅에서

나는,

돈 데 보이―


그러나


여기,

추위에 굴하지 않고 찬 바닥에 마음을 쏟아붓는 청년,

분노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민주주의 절차를 기다리는 어른,

국격의 실추가 곧 나의 실패라는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앞으로도 자기 나라이기에 엄마 손 잡고 나온 촛불 아이,

너도나도 이 추운 계절 따뜻한 차 한 잔 먹으라며

선결제에 앞다퉈 선물한 익명의 사람,

민주주의는 절차와 투표로 꽃피운다고 확신하는 학생,


추위에도 서로 둥글게 얼싸안으며

깃발 높이 올리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목놓아 부르는 노동자,

자기 쓰레기는 스스로 치울 줄 아는 시위자,

정치는 시궁창으로 가라 해도

살아있는 문학과 노래로

청계 따라 전진하며

우리의 자유가 언제든 억압될 수 있다 해도

두려움이 아닌 축제로 저항할 줄 아는 아이,

민주주의는 온몸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아이,


당당하게 이 더러운 정치를 받아내는

오롯한

신로의 순례자


광야 같은

신의 길, 믿음의 길

마주 부는 찬바람

어둑한 밤길,

터벅터벅 어깨 기대며 함께 걷는,

고독하나 춥지 않은

이 추운 계절, 이 광장 어느 구석에

나의 예수도 웅크리고 함성 쏟을 테니

그를 찾자

나의 헐거운 신앙으로라도

그와 함께 이 땅을 두 발로,


너는,

나는 어디에

우리는 어디로


위험한

어리석은

무모한

이 여정을

언제

어떻게 끝낼 것인가?


사이


눈이 내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겨울은 끝난다”

(2025. 2월 어느 날 쓰고, 10. 15 아침 다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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