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단어 52-365
몸집이 큰 사람이나 짐승이 몸을 조금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 다니는 모양,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현상,
날이 어두워지거나 밝아질 무렵에 둘레가 조금 어두워지는 상태
1.
슬슬, 살살
사라진 듯 다시 살아나고,
살아난 듯 다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 모습
해 뜰 무렵 어두워지거나 밝아질 때
밝은 빛이 퍼지는 동안 어둠이 조금 남아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어슴푸레한 느낌이지만 완전히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멀리서도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빛나는 몸과 같다.
2.
다른 뜻도 있다.
‘어슬렁어슬렁’ 하는 모습이다.
상상해 보라.
몸집이 좀 큰 사람이나 짐승이
몸을 조금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 다니는 모습.
의도하지 않아도 큰 덩치의 몸은
그 자체가 어슬어슬 보인다.
‘어슬어슬’
빠르지 않고 느릿한 행동이다.
사실, 예전에는 힘든 일을 마치고 가볍게 산책할 때 말고는,
어둠 끝에 아침 햇살이 천천히 퍼지는 풍경 말고는,
희미했던 것들이 천천히 형체를 드러내는 것 말고는,
절망이 한 걸음씩 희망으로 옮겨가는 것 말고는
양반들의 뒷짐걸음처럼 느긋한 것 말고는
자주 쓸 수 없는
꿈같은 단어였으리라.
3.
하지만, 시대가 지나
이제는 돈을 들여
‘어슬어슬’한 삶을 사들이고 있다.
워라밸로,
피서로,
휴가로
긴 연휴를 누리게 되면
경쟁적으로
‘어슬어슬’을 쟁취하려 한다.
멀리, 화려한 곳에서
어슬어슬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4.
어슬어슬
소설가 박완서 님이
소설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음)에서
예로부터 이 나라 백성들이 기다리고 반기던
까치 소리건만 어슬어슬
땅거미 질 무렵에 듣는 그 소리는 왠지 불길했다.
라고 쓸 때는 눅눅한 어둠이겠지만,
새벽 동틀 무렵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나마
형체를 유지해 주는
잔상이라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5.
어슬어슬
당신의 어두운 삶에
번지는 작은 빛이니
이제는
겉모양만 느릿하지 말고
속마음도 어슬어슬한
생활세계에서
돈 없이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행복 산책
오늘도
어슬어슬한 걸음으로
마음껏 누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