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기도 詩 5. 노인과 나

by 푸른킴

차로 10분

걸어서 100분

도서관 들러 빌린 책 반납하고

누군가 손때 묻은 새로운 책 몇 권

10년 늙은 샘소나이트 가방에 담아

무거운 두 발로 걸어오는 숲길,


10월 중순, 계절이 뒤섞인 하늘

어둑한 구름에 뒤덮이면

산너머 서둘러 해지는 줄도 모른 채

불쑥 찾아온 어둠,

낮도 밤이고

밤은 더욱 짙은 밤


등 뒤에 침묵하는 책 잊어버리고

산들바람나무숲

살아있는 책 틈에 끼어

그 노래 듣느라

말을 삼키며

숨죽이며 걷는다.


걷다 보면,


어제 내린 비의 잔재

땅은 질퍽이고, 풀은 촉촉하며

바람은 나무습기 가득 실어

그 길을 수놓는 풍경


듣는다


어둠 속

가냘프고 홀쭉한

맨발의 노인

큰 소리로 진득한 욕설

혼잣말 펼치며

나무야 들어야

풀아 기울여라

바람아 실어가라

나의 원망과 한탄

지나쳐 등뒤에서 들릴 때면

괜한 두려움에

나의 그림자

발을 멈춘다


그러나


그의 분노 내 안의 오래된 불안처럼

오늘도 나를 스쳐 검은 숲으로

흘러 흘

노랗게 물든다면


이 길은 불안과 두려움

사이 안식과 안도감

주고받는 평등의 세계


언젠가

행복해하는 이들과

같이 걸었던 그 길

떠올리고

어느새

노인과 나,

그들의 ‘평안’을 빈다


어두운 숲으로 사라져 간

그 분노의 노인

따듯한 바람 따라

그 몸, 바람에 다 비워지고

마음은 풀잎처럼 자유롭게

가벼운 걸음으로

아무 생각 없는

산책 즐기는 날

되찾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길

눈은 뜨고

생각은 멍하게

하늘길,

노래만 삼키고

그 삼켜진 말

듣는,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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