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가기’라는 생의 의지를 실어오는 계절의 선물
1.
가을 아침엔 계절의 전령사처럼 평소와 다른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거칠고, 뭉특하지만, 나에게는 애써 밀어내고 싶지 않은 바람이다. 바람이 부는 날, 나는 자주 산 길을 오른다.
그 길은 집 옆으로 지척인 작은 동산에 있다. 오래전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흐릿한 길이었으나 이제는 제법 길다운 길로 걸을만하다. 약간의 경사에다 주변으로 높게 솟은 잎 넓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오직 길만 보여서 산책보다는 가벼운 달리기에 딱 좋은 길이다.
그런데 바람 부는 날, 혼자 이 길에 들어서면 조금 을씨년스럽다가도 따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무들과 새들이 어울린 소리가 바람에 실려 길에 흩어지면, 괜한 즐거움에 움츠렸던 마음이 화악 펴진다. 아침 햇살이 아직 바래지기 전, 집을 나서 바람과 함께 오르고 내리며 숲길을 걷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치 산책하는 즐거움을 선물로 받는다. 그래서인지 ‘바람이 분다’라는 말을 사람들은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다.
2.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지만, 유하는 무엇보다 시인이다. 그가 한때 시대 격변의 현장으로 압구정동을 지목하고,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에 거닐었던 모양이다. 그의 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는 숲과 나무, 풀과 꽃의 향미로운 정서가 더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콘크리트로 굳어있고, 기계를 따라 무덤덤하게 돌아가는 시대의 변곡점만 텁텁한 시구들로 박혀있다. 무엇보다 종교의 방향 상실에 대한 그의 분노에 가까운 슬픔이 짙게 배어 나온다.
“소망교회 앞/주 찬양하는 뽀얀 아이들의 행렬, 촛불을/들고 억센 바람 속을 걸어간다. 태초에/불이 있나니라, 이후의 —–”
-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시인에게 억세게 불어오는 바람은 시대의 파국을 예견하는 태초의 전령인 것이다. 어디를 봐도 따스한 정서는 없고, 슬픔과 아픔, 회한 심지어 분노의 언어를 실어온다. 그를 이끌었던 바람은 종교의 변절에 대한 슬픔을 목격하겠지만, 실제론 삶의 궤도를 이탈한 사람들 틈에 그를 데려다 놓은 셈이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날,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 그것뿐이랴. 그날 폐허 같은 도시로 향하게 한 유하의 바람이 분노였다면, 먼 이국의 발레리에게 바람은 생존의 의지였다.
3.
어떤 이의 바람은 사람을 삶의 희망을 돋우는 힘으로 이끌어주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가볍지 않게 되뇌는 시구는 해마다 봄의 끝 즈음에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자기 고백이었다. 이런 고백은 계절의 끝으로 가는 가을에도 여전하다. 봄이든 가을이든 인간의 생존을 촉발한다.
이 말은 프랑스 서정 시인 폴 발레리의 입을 빌려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라고 노래한 스승, S. 말라르메의 말을 절묘하게 뒤집었다. 스승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라 해도 ‘삶의 의지’를 일깨우려 했다. ‘고독한 채로 분투하는’ 인간의 비극을 노래한 시구로 읽힌다. 하지만 발레리는 그의 시 「해변의 묘지」《Le Cimetière marin, 1920》를 통해 삶의 끝에도 한결같이 불어오는 바람을 노래했다. 마침내 바람이 불어온다. 희망의 전령이 삶으로 밀려온다. 그렇다면, 당연히 살아야 한다. 바람은 생존의 의지를 촉발한다. 시인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자기 시에 쓸어 담았다.
그리하여 이 결언적 시구는 20세기 초 격동의 시간을 몸으로 부대끼며 관통해 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바람의 존재를 일깨웠다. 어디서나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한다면 생존 의지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시인의 권면이기도 했다. 어둠의 시대로 진입하는 세기의 전환기에 시인은 희망의 속삭임을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도 과대한 해석은 아니다. 그러니 발레리에게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삶의 전의를 소생하는 희망의 선언이다. 희망이라는 점에서 이 바람은 삶의 기울어짐에서도 완전히 쓰러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처럼 보인다. 지난 세기의 빛나는 이 시에 못지않게 오늘 우리 앞에 들려오는 노래 ‘바람이 분다’도 그렇다.
4.
노래 ‘바람이 분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텅 빈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노래 속 주인공은 바람이 불 때, ‘
머리카락을 다듬는다.’ 그 사이에 ‘하늘은 젖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바람이 부는 사이 ‘나는 달라져 있다.’
이 노래는 듣기에는 좋고 부르기에는 쉽지 않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 삶이, 불어오는 바람 안에 머물러 이리저리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 중 특히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냉정한 선언에 이유 없이 마음이 끌린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노래가 비단 ‘사랑과 이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추억은 자유롭게 요동한다. 바람이 불어 지난날의 추억을 실어와 새로운 미래로 이끌어간다. 그 틈에 추억은 바람을 따라 지금 이 자리에서 맴돈다. 이렇게 바람은 한 사람의 과거-미래-현재를 이어 생의 터널을 지나게 하여 마침내 ‘자유’의 종착점으로 안내한다. 바람이 인간의 추억을 새로 쓰게 하는 기제이듯, 바람이 불 때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다시 어루만지는 존재가 된다. 그러니 이 노래에서 ‘바람이 분다’라는 것도 추억을 넘어 인간 본연의 자유를 상기시키는 이정표인 셈이다. 바람이 안내한 자유는 가끔 바람이 상상의 세계와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화 속 바람이 그렇다.
5.
나의 산책로는 가끔 만화의 한 장면 같다. 산머리에 오르면 숲이 사라지고 공터가 나온다. 그 건너편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고, 그 주변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새가 날아들고 사방은 고요하다. 그런데 어느 해 이곳에 작은 산불이 일어 검고 희뿌연 연기에 채색된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언제 일어난 화재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그 검은 현장 사이로 늘 그렇듯 바람이 분다.
애니메이션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かぜたちぬ)는 이런 비극의 현장에 잘 어울릴 것이다. 지진으로 땅이 붕괴한 이들에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모티브를 이어준 것은 ‘바람이 분다’였다. 어쩌면 미야자키의 세계 속에서도 폴 발레리의 그 시구가 이식되었을지로 모를 일이다. (비록 역사의 아픔을 간과할 수 없는 ‘제로센’의 미화는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부연설명과는 상관없이 ‘가미카제’ 속에서 벗겨낼 수 없는 역사의 상흔인 것은 분명하다) 어찌 되었든 미야자키는 ‘바람이 분다’는 명제를 통해 전쟁의 악행과 그 상흔, 그리고 갈라진 땅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다시 두 다리에 힘을 얻고, 두 손을 움켜쥐게 하며, 마음에 화색을 돌게 하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모양이다. 그것이 비록 ‘순수한 사랑’에 천착한 것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그에게 ‘바람이 분다.’는 ‘사랑’ 그 자체였다. 그는 전쟁의 상처 위를 불어주는 바람을 느끼며 만화 너머, 인간다운 사랑의 바람을 꿈꾸었다
6.
그을린 산머리를 지나 산 아래로 내려오면 한 묶음의 ‘별꽃’을 만난다. 이들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 낮은 자리에 머물러 별처럼 빛난다. 이 꽃에 ‘바람’은 생존의 동력이다. 이 말은, 바람에 몸을 싣는 별꽃에게서 마지막 단어가 ‘생명’ 임을 뜻한다. 나는 산책의 끝에서 만나는 이 꽃을 보면, 이 땅의 모든 사물이 ‘살아있다’라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가 ‘바람’의 영역 아래 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숨이 그렇듯 나무와 꽃 사이를 부는 ‘바람’이 그렇다는 말이다. 바람이 불면 꽃이 핀다. 바람이 불면 잎이 떨어지고, 이어 나무에 싹이 돋고 줄기가 나온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 그의 키는 한 뼘 더 자라 있다.
해마다 4월의 바람은 매섭다. 그러나 5월의 바람은 정답다. 하여 5월의 바람은 감싸 안 듯 다독여준다. 10월의 바람은 정겹다. 11월의 바람은 차갑다. 계절은 언제나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다 벗어나지 못한 채 따스한 바람이 겹친다. 그런데 이렇게 계절이 중첩되는 어느 한 날,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한 번쯤 서 본다면, 신기하게 온몸에 생기가 돈다.
계절의 경계를 따라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슬픔과 희망, 자유와 사랑, 그리고 생명의 씨앗을 품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삶의 의지를 실어 나른다. ‘바람이 분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길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다. 그 바람이 오늘도 나를, 나로 ‘되어가게’ 한다. 살을 찌는 듯한 바람이 불어오기 전, 나와 당신에게 이 인간다운 바람이 더 생생하게 보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