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기도 詩 8. 하향원점(下向原點)

-도고산 내려오는 길,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길

by 푸른킴

어느 해 아이의 졸업식

도고(道高)산에 올랐다

초행


길은 정해져 있지 않아

산 바로 아래 ‘실개천이 흐르는 마을’만 보여

무작정 그 길로 들어서니

마을 한 복판으로 개울이 있고,

보호수가 있고, 가까운 거리에 교회가 두 개 있다


바람은 차고, 길은 고요해서

개들이 짖지 않는다면

이 마을엔 빛과 바람과 나무만 사는 듯하다

언제 다시 올까 싶어 마을 안쪽까지 들어서

사람 드문 마을을 휘돌고 나니

마을 끝에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어


무심코


정상 향해 몸을 밀어

내내

가벼운 내리막 몇 곳 빼곤

쉼 없는 가파른 오르막

30746보

멈춤


도고산

도가 높다 하여

돌과 바위마저 가파른가

평탄하다 다시 오르막

정상인 듯 낯선 길

마침내 갈 데 없어 막힌 몸

숨 돌리고 눈빛 하늘로 띄운다

걸어왔던 온 마을 눈에 찬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눈 같은 낙엽 뒤범벅된 길

가파른 오르막이

치닫는 내리막이라는 것

생각할 여유 없이

여릿한 가이드 줄에 몸 하나 의지에

긴장감에 두 발로 한 걸음씩 미끄러지면

중력이 이기는 하향

우연한

약수터가 나를 세운다


찬물 들이키고

낙엽 가볍게 밟는 소리에

숨어있던 꿩 몇 마리 소스라쳐 날아간 자리

저 멀리

산 아래 휘돌아 나가는 임도

안도하는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져

온몸 묶었던 긴장의 끈 순식간에 풀린다


낮은 정상에도 오르기 쉽지 않았고

하향길은 서너 배 힘들어도

그 정상에서 내려와야 다음 봉우리 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평지에 내려서니 비로소

다시 원점에 안착한다

제대로 된 걸음 없이도 오르고 내렸던

저 봉우리와 다시 올라설 꼭대기가 선명하다

다시 돌아온 마을 낯설지 않아

이 출구가 어디쯤인가 되돌아보니

오르는 길 시작했던,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친 첫 길

출구를 입구로 삼아

정상을 들렀다 다시 출구로 나왔으니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산길 따라 마을을 품은 듯,

어느새 밤


마을로 들어서 돌아 나오는 길

처음처럼

보호수가 반기고

개들이 낯선 이를 짖는 사이

얼어있는 실개천과 예배당들이 살갑게

다시 출발선에 선 방문객 환송하니

길 걷기는 그저 과정일 뿐

목적은 신기루


발길과 별빛 따라

기차역으로 되돌아오는 길,

해가 검은 이불을 덮고 잠들면

시골길엔 빛이 어둠을 초대한다

차가 지나지 않는 길 밤별빛만 오롯하다

암흑은 고요하고 정갈하다

별빛은 희미하고 흐리해도

걸음 앞을 비추기는 작지 않으니

오르고 내리며, 돌아 나온 모든 길이

별빛처럼 밝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도

예수의 기도 몇 구절

노래 몇 곡 소리껏 불렀던

어린 추억 되살아

땀에 젖은 겉옷마저

따뜻한 추억의 옷이 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지는

신비


출발은 내려서는 것이고,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

목적지 없어도

걸음은 걸음으로

하향하는 놀이


새로운 상승의

영성


기도란

땅에서 하늘의 삶

체현하는,


걷기

하향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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