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기억
그날의 국가적 책임
그날, 그 대통령께옵서 하늘로 나르셨다. ‘국익’이라는 업적을 위한 불가피한 외교·안보 업무수행이라 했다. 늘 그랬듯 탑승하는 순간 보여준 손짓은 마치 삶의 고별사 같은 모호한 표정이었다. 반복적인 정치적 수사(修辭)인 듯해서 바로 공감할 수는 없었으며, 오히려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촉도 느껴졌다.
나는 그 시절, 그 집권 통치자가 뜨고 드는 장면을 보면서 아직 암흑의 땅을 떠나지 못한 죽음들이 겹쳐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대가 변혁된 지금, 아직 이 땅엔 진심으로 다독여주길 바라는 죽음의 슬픔이 가을 끝을 맴돌며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의 애도는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죽음은 필연적으로 애가를 창발 한다. 불가역적 사건인 죽음에 대한 애가는 고대로부터 죽음 자체를 향한 정제된 분노를 그대로 허용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에 대한 산 자의 극렬한 탄식을 영원히 허락한 것이다. 오늘날 애도는 이 애가의 현대적 변형이다. 애가처럼 애도 역시 뭇 죽음에 대한 삶의 처연한 예의로 작동한다. 노래나 곡은 아니라 해도 몸을 겨우 움직여서라도 죽음을 정성껏 환송하려는 인간 본성의 행동이 막힘없이 작동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죽음이든 그것을 자기와 유관하다고 인식하는 이에게 애도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극히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저항일 수밖에 없다. 그 애도의 끝을 장담할 수 없다 해도 그 지난한 여정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누구도 애도를 제어하거나 억압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애도는 죽음으로써 강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생명의 토포스(topos)이기 때문이다. 애도는 죽음이 남긴 공간을 기억의 언어로 채우는 생명의 자리, 곧 인간이 다시 인간됨을 회복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애도가 어디서나 자유로운 시대는 되었다.
이처럼 내가 어떤 죽음에 대해 애가/애도하는 것은 그 죽음의 이유를 묻기 위함이다. 그 답을 들음으로써 나는 그 죽음을 기꺼이 수용할 용기를 얻고, 죽은 자에게 그 죽음으로써 획득한 자유를 내가 허하기 위함이다. 또한, 나는 애도야말로 죽음에 대한 자유로운 인간의 대응이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불가항력 같은 죽음을 억지로라도 수용하는 가장 인간다운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10.29 참사에 대한 애도를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죽음에 대한 정중한 예식은 둘째치고 그 이유 또는 책임이 아직 내 귀에 명확하게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이 자유로운 시대, 부고는 왔고 죽음은 일어났는데 누구의, 무슨 이유로 일어난 부고인지를 알지 못하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이미 어떤 사람들은 10.29 참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학적 견해를 서둘러 제시함으로써 사건의 종결을 채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었다. 그들의 자료들을 찾고자 한다면 지금도 클릭 몇 번으로 단번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이들은 그 죽음의 이유를 스스로 묻고, 책임을 촉구하며, 죽은 이들을 마음에 품고 위로하려 분투한다.
이런 뒤얽힌 상황에서 내가 다시 이 글을 남겨두고 싶은 이유가 있다. 첫째, 나의 애도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에게 명백히 밝혀두려는 것이다. 나의 기억 저항을 위한 것이다. 둘째, 이 참사의 책임이 그날 그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에게 절대 있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말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날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은 자신의 여린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것이지 결코 문화를 추종함으로 죽음의 이유를 자초한 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셋째, 그 죽음의 책임이 명백한 재난에 대해서, 지난 세월, 국가가 서둘러 종결시킨 것들이 다시 사과와 책임 감당으로 끝맺음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 일러두기 위함이다.
폭력의 시대를 남용하는 권력
내 생각은 20세기를 ‘폭력’의 시대로 검토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것에서 어느 정도 착안한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한 주장은 폭력의 대립물로 권력이라는 관점에 집약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반되는 도구로서 폭력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양상이 선험적 인식이다. 그러니 아렌트의 대립구조는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아렌트의 저서(On Violence, 1970)를 번역한 김정한(『폭력의 세기』, 이후, 1999)은 아렌트의 이런 견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테제를 대응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모든 것이 권력 이면에 있는 권력에 좌우된다.’라는 주장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 테제 속에는 권력이 군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기에 군중이 흩어지면 권력도 사라진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권력이 사라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누군가 폭력을 행사하여 그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면 그때부터 그 권력은 더는 올바른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권력과 폭력을 상호 대립 항으로 구성한 아렌트의 주장은 권력 이면에 숨어 작동시키는 그릇된 권력 유지력, 즉 폭력이라는 힘을 냉철하게 직시하라는 권면인 것이다.
이처럼 모든 권력은 군중에게서만 발현되고 소멸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정당하다. 그 군중은 자연스럽게 밀집되고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 산회로 인해 권력도 자연스럽게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력은 군중에 의해서만 생멸을 반복해야 건강하다.
나는 아렌트의 주장을 나의 방식으로 복기하며 이것이 2023년 10월 29일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10.29 참사에 대한 기억 저항을 조금이나마 실현하려 한다. 그의 사유는 이 참사에 작동한, 보이지 않는 힘을 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중의 권력 뒤에서 자기의 무법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힘을 시도한 ‘폭력’의 실체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골목에 갇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이들의 토포스는 저 감추어진 권력이 폭력으로 발현된 시간이며 공간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렌트가 천착한 폭력 이해는 내가 국가폭력을 직시함으로써 나의 애도 또한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사회적 기억 장치가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것은 내가 독립적 자아이면서, 사회 속에서 저항의 군중으로 이입될 수 있는 사상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앨리아스 카네티의 군중 이론을 탐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자연스럽다. 열린 군중의 등장이 권력의 시작점이면서도 또 해체점이라는 카네티의 사유는, 나의 애도를 다시 군중의 입장에서 사회적 기억의 형식으로 되살리게 한다.
숨은 권력 유지와 폭력의 방치
10.29 참사는 정당하게 파생한 군중 권력을 큰 울타리 안에서 보호하기보다 그 뒤에 바로 숨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시킨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 폭력은 가시적인 무력은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폭력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무장한 ‘정치적 방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1960/2010)에 따르면 군중은 밀집을 통해 ‘방전(放電)’함으로써 평등의 자유를 만끽한다.
나는 카네티의 군중 이론에 근거한 인간 조건을 숙고한다. 그것은 인간이 군중 속에서도 자기 개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자기 노력이다. 다시 말해 군중 속에서 한 개인은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하는 자신을 경험하면서 그 밀집된 군중에서 자신이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군중 안에서 형성된 권력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권력의 순전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중의 권력은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평등은 곧 깨진다. 그리하여 군중 속에서 개인은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이제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니라 군중이 떠미는 방향으로 피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런 상황에서도 개인은 자기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침내 상호 무력이 발생하고 어느 순간 평등에는 균열이 생긴다. 결국, 군중은 자기 방향과 타인의 방향이 충돌되는 것을 불사한다. 이제부터는 나의 생존이 타인의 생존보다 우선한다. 충돌은 곧 힘의 논리에 따라 약한 쪽이 쓰러지고, 그 위로 덮이는 힘의 중첩은 극복할 수 없는 무력이 된다.
국가는 바로 이 군중 권력이 붕괴하는 순간을 보호하기 위한 예비력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군중이 뒤엉키는 순간을 예측하고 보호하기 위해 거기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순간을 내버려 뒀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 사건이 될 것이다. 만약 국가가 의도적으로 버려둔 것이라면 당연히 정치적 편견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10.29 참사 당시 국가의 대응태세를 보도하는 여러 매체의 자료만으로도 이 일에 국가가 방관 책임을 비껴갈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10.29 참사는 국가가 거기 없었던 것이 아니다. 국가는 숨어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군중을 처음부터 정치적 방관으로 대응하려는 자기 의도를 감춘 채 감춰둔 권력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말이다. 무엇보다 그날 그 군중은 열린 군중으로 자신과 타인의 밀착을 거부하지 않은 밀집이었다. 다만, 그들 앞에 열려야 길이 ‘어떤 힘’에 의해 막혔을 뿐이다.
국가의 권력 실현 방식
개인적으로, 나는 국가가 정치적으로 중립일 때 가장 국가다운 것 같다. 이념과 종교,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해 어느 한쪽을 옹호할 때 국가는 자기 균형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그 어느 하나를 지지하기 위해 국가는 부여된 것 이상의 자기 권력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실체일 뿐, 권력의 담지자는 처음부터 아니었다. 그 위임된 권력이 전부다. 자기 권력을 쉽게 남용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나는 살아오는 동안 이런 정치적 방관으로 인한 참사를 몇 번 겪었다. 물론 그때마다 사고, 사건으로 가볍게 지나갔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와 상관없을 것 같던 그 아픔은 새롭게 반복된다. 하나의 사건이 다 아물지도 않은 채, 새로운 사건이 짓누르듯 몸을 압박한다.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이 이 거대한 사건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불예측성과 불가항력성 사이에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켜낼 수 없는 불안한 여정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그러니 왜 그들이 거기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나는 알아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예측하지 않은 죽음으로 이끌었는지 나는 기억해야 한다. 군중 속에서 가장 평등하다고 느꼈을 그들이 왜 그 군중들로부터 순식간에 무력으로 삶을 침탈당하는 순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는지 나는 잊지 않아야 한다. 자유로움, 평등, 공정한 삶의 자리가 어느 순간 삶의 위협하는 폭력이 되는지 나는 곰곰이 되짚어야 한다. 내가 아직 애도의 시간을 끊지 못하는 이유다. 나의 일상은 그 죽음에 무심한 듯 흐르지만, 그 죽음들은 나와 깊이 관련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살아있는 것 무엇이든 죽음이란 슬픈 일이다.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인지상정이니 나의 시간을 들여 그 죽음의 길을 환송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 죽음의 이유와 책임을 명확히 듣고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비극적 현실로 권력이 새로 창출되고, 법을 공포하고, 생활지원금을 제공한다 해도, 여전히 문제의 본질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 이유와 최초 책임자들이 끝내 해결하지 않으려 했던 것에 대해서 누가 답할 수 있을까.
야훼의 웃음과 눈물
세월이 흘러도, 피조물이 피조물을 경시하는 일들은 무한 반복된다.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기뻐하던 야훼의 웃음은 악한 자들에게만 유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보다 더 이 현실을 슬퍼하실 야훼를 신뢰하며 이런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다시 기대한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이 빠르게 선언되어야 한다. 오래전 창조의 기쁨으로 웃었던 야훼가 이제 인간의 죽음과 재창조를 위한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마음을 찌른다. 그래도 야훼의 저 슬퍼하는 눈물이 낙엽처럼 쓰러져 도움의 손을 내뻗었던 이들을 향한 생명과 부활의 신호이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