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역 전철 미끄러져 들어서면
걸어서 십 분 거리
언덕 위 붉은 벽돌 교회 밀려오고
그 길에 들어서면
다른 길 돌아갈 생각 밀려가는
어느 이른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진 길,
함께 걷던 사람 묻는다
“기도하기 위해 걷는 건가요?”
“아니요, 길을 걷는 게 곧 기도예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괜찮다
걷는 것은 스며드는 단어,
생각에 밀려가는 고행(孤行)
길 끝날 때까지 붙잡는 순례,
밀려오고 밀려가는
무의지의 순환
어느 해
청산도 바닷길 밀리듯 돌아온 다음 날
어머니 부고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머무시던 방 정리하니
썰물처럼 한 사람의 여운이 쓸려간다
사람 떠난 공간 순식간에 푸석푸석해지고
부재란, 낯섦이 자라는 자리라는
쓸쓸함이 온몸에 밀려 들어오면,
내 서재 들어서는 날
오래 비워두어 처음처럼 낯설었던 기억
되살아나는 가을 한 날,
날이 따뜻해지면,
사진기 하나 들고
길 위에 나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발길 가는 대로 걸어본다
걷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살며시
손짓하면, 모른 척 밀려든 그 길로
발을 들인다.
오랜만에 양수리 다리를 건너
출렁이는 다리 아래로
북한강 고요히 흘러갈 때,
어디서 여기까지 닿았을까.
지도 한 귀퉁이에야 선명하겠지만
그 물이 지나온 세계— 땅, 산 나무
사이
강 위로 앞산 잔영 선명하고
작은 인기척에도 힘없이
검은 하늘로 흩어지면
그 그림자 위로 오리 떼
수놓는 순간,
길가 장미 여전히 장미답고,
가을 낙엽 여름 밀어내고,
겨울 막아서는 저녁
계절은 그렇게
순환.
발아래 강은 어제처럼 흐르고
봄, 여름, 가을, 겨울—계절 바뀌어도
한결같은 흐름 따라
제 자리 떠나지 않는,
강의 강직함
앞서 흐르는 물 뒤의 물 떠밀어주고
앞선 물은 더 빨리 흐르지도 않고,
느려졌다, 다시 빨라지고, 그저 서로 맞물려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삶도 그렇다
밀려오고, 밀려가며,
서로의 어깨 잠시 밀어주는 동안,
삶도 강 따라 맴돈다
옆길로 내려서니 마재성당 표지,
김훈의 소설 「흑산」에도 등장한 이 마을
바람 불어 나를 이 길로 밀어 넣으면
모른 척하고
그 바람 따라 다시 걷는다
가는 길마다 사람은 없고,
강 건넛산에 가려 해는 바쁜 일 없는데도
서둘러 넘어간다
해도 밀려가는 것일까.
햇살이 사라지자 바람이 더 세지고
길은 기다렸다는 듯 서서히 어두워지면,
어느새 길 돌고 돌아 처음 자리로 향한다
캄캄한 길 끝 아침 성경 한 구절 스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말이 내 마음에 움트고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말에 밀려 길을 걷고,
길을 걷다 삶을 돌이키며,
그 삶 틈으로 떠오른 사람들을 그린다
끝내
처음 자리 돌아와,
마트에 들러 생수 두 병과 우유, 두부를 사 들고
일만이천 원,
오늘 걸음 일만 이천 보 남짓만큼
우연한 필연처럼
생존하기 위해 오늘만큼의 양식만 사든다
숫자가 무엇이든
하루 쌓아놓은 삶의 무게,
손에 들린 물의 온기,
발바닥의 피로,
모두가 어우러져
오늘의 기도를 식탁에 펼친다
그대 아는가?
바람 따라
삶은 밀려오고 밀려간다는 것,
그 오는 길
고통스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가을이 겨울에 밀려나는 것 아쉬워
어느새 가만히 봄을 기다린다
계절은 충돌하는 듯 보여도,
끝내 자연답게 맞물려 흐르는 길처럼,
내 삶에 덧입힌다
그렇게
하늘이 불어주는 바람 따라
밀려가고, 밀려오며
나도 조용히 제 길 걷고 있으면
한 치 오차 없이
겨울 너머 봄이 서서히 다가올 테니
다시
양수역까지 십 분
삶의 시간 십 분의 무한 적분
흔적 없이 흐르는
오늘의 기도
길 위에,
심는
나그네
*신약성경 마가복음 8장 34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