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ㅡ 탄원, 그 생존의 소리

나의 한 단어 57-365

by 푸른킴

‘범이 내는 소리, 호랑이가 우는 소리’


1.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지만,

동네 가까운 시장에

맛있는 짜장떡볶이 집에 있었다.

맛이 솔깃했는데도

워낙 한적한 곳에 있어서 운영이 어려웠던 곳이다.

그러다 한 방송의 조언을 듣고 변신에 성공

한 때 드나드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철 지난 꽃처럼

가볍게 피었다 졌다 하는 정도였다.

그때 이 집이 유명해진 것은

작은 소스 때문이었다.

그 이름이 어흥이었다.

‘아주 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2.

‘어흥’

소리만 들어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실제로 이 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나 두려워할 것이다.

위협적이고, 불안하게 될 것이다.

경고와 구애, 자기 과시라고 말하기 쉽지만

숲 속에서 한적하게 있다가 듣는다면 공포이고,

동물원에서 느긋하게 있다면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사전에 따르면

‘호랑이가 우는 소리’라고 표현하니

아무 생각 없이 이 소리를 생각하면

바로 눈앞에서

숲 속의 지배자가

흐느끼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


3.

‘어흥’

재밌는 것은 이 소리가

호랑이가 웃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존재를 알리는 상황에서

왜 웃는 소리가 아닌

우는 것일까?

어느 누구 호랑이가

우는 장면을 볼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보면,

자기 앞에 먹잇감을 앞두고

왜 우는 소리를 내지를까?

사냥해 온 짐승을 앞에 두고

박장대소하는 인간과 달리

왜 동물은 ‘우는’ 소리를 낼까?

혹시 ‘운다’라는 말의

인간과 동물 사이에 다른 뉘앙스일까?

어쩌면 인간의 ‘울음’은 정서적 표현이자

타인에게 자기 신호를 보내는 행위라면,

동물의 ‘울음’은

생존의 리듬, 즉 자기 생존과 세계의 관계를

인식하는 반응이라 할 수 있다.


4.

‘어흥’

거대한 짐승이 내는 우는 소리라고 한다면

어쩌면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자신의 승리감에 대한 자기 부심의 발로라 해야 할 것 같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죽음을 걸고

상대와 싸우고 난 뒤

그 승리의 감격을

자기 울음으로 포효하는 소리,

이 소리라면

인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5.

‘어흥’

온갖 굴곡을 다 지난 후

얻고자 하는 목적을 이룬 뒤

마음으로부터 끓어오르는

탄성

그것을 발현하는 인간의 얼굴에는

자주 눈물이 흐른다.

그러니

‘어흥’을 인간의 말로 바꾼다면

‘악’이나 ‘와’라는 함성이다.


6.

어떤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가?

어쩌다 자기 소리를 듣게 되면

평소 자신과 꿈꾸던 일,

그것을 마침내 얻어낸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다독이는 웅장하고, 강력한 소리

아마도 그것은

저 범 한 마리가 내 마음에

남겨준 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어흥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가게는 멀리 떠났고

한 마리 호랑이도

자기 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7.

밀림은 사라졌지만

마음의 숲 어딘가에서

여전히 울리는

생존의 시그널

도시의 빌딩숲에서

지금도 재생하는

구호의 호출부호


어흥―


묵음의

탄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걷는 기도 詩 11. 낙엽 환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