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단어 58-365
얕은 물이나 진창 흙을 자꾸 거칠게 밟거나 발로 차는 소리
1.
낙엽 가득 쌓인 산길 거칠게 걷는 즐거움 못지않게
비 온 뒤 얕은 물 웅덩이 찰박거리는 기쁨도 적지 않다.
가끔 섬을 걷다 보면
이런 산길, 물길을 함께 누린다.
두 길이 뒤바뀔 때도 있다.
어느 여름,
산길을 걷다 가끔 물 잘 흐르는 계곡을 만나면 발을 담그고 찰박찰박,
바닷물길 걷다 찰랑이는 파도 모래 길을 거칠게 찰박찰박 내달리기도 한다.
2.
‘찰박찰박’
이런 말은 눈으로만 보기보다
가만히 소리 내서 읽는 것도 좋다.
밀리고, 쓸리면서 어딘가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출렁거리는 물처럼,
소리말은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그 소리에 어울리는 무엇인가를
상상하도록 이끈다.
“찰박찰박, 찰바닥찰바닥”
무엇이 떠오르는가?
발바닥으로 무엇인가를 가볍게 차는 모습,
어릴 적 장난하던 나의 모습.
3.
‘찰박찰박’
가만히 들어보면 이 말은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
물을 밟는 사람이 내는 소리다.
계곡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발로 가볍게 차거나
바다 모래길에 쓸려오는 물을 툭툭 치며 걷는 누군가가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마당 한복판에서 물 담아 두고
발로 물장구치며 걷는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언젠가 ‘찰박찰박, 찰바닥찰바닥’
파도를 가볍게 밟으며 걷던 그때
살포시 떠오른다.
4.
말이란, 결국
그 말을 쓰는 사람과
그 말을 받아주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일어나는 법,
서로 가볍게 찰박찰박하는 관계일 때
더욱 살가운 소리가 살아나는 법,
그렇게
소리는
추억이 발아한 산물.
이 어린 겨울 불쑥 커버리기 전에
찰박찰박 소리 만들러
그 섬을 한번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