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그안에 가족 캠프 리뷰
*이 글은 제가 속한 신앙공동체가 2박 3일 동안 보낸 캠프의 후기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혹시라도 기독교 신앙을 불편하게 여기시는 분들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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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의 주제:'고요한 중에 안식과 만남
그안에가족 캠핑을 잘 마쳤습니다. 여느 해보다 늦은 10월 마지막 주일(24~26일), 가평 승동기도원에서 여느 해처럼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세 번째여서 그런지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시공간에 돌아온 듯한 기분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올해, 장소 결정에 작은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일정이 뒤로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어느 분의 말처럼, "오히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 좋았"습니다. 이로써 거의 스무 번째 캠프를 우리 정원 같은 기도원 산자락에서 가족 너머 가족들과 가을맞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원이라는 공간은 추억의 장소입니다. 그래서인지 1년에 한 번, 오랜만에 들러도 마음속 추억이 살아나 따뜻해지곤 합니다. 이 기도원은 산과 계곡을 끼고 10만 평에 이르는 큰 공간입니다. 그래서 30명 정도가 아무리 복잡하게 움직여도 사방은 소리를 삼킨 듯 고요합니다. 그저 산 아래 작은 공간에 타오르는 불꽃만이 어둠 속에서도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올해 캠프 주제는 ‘고요한 중에 안식과 만남'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개인적으론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돌아와 캠핑 후, 후기를 부탁했는데 네 분이 답을 주셨습니다. 아랫글은 이분들의 소감을 토대로 캠프의 의의를 다시 정리한 저의 리뷰입니다.
캠프의 정신:광야에서 자유와 샬롬을 경험하다
우리 캠핑은 광야의 장막을 체현하려는 오래된 교회 생활 방식 중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무엇이든 하는 자유, 그것이 우리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건물에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절을 따라 건물 밖, 창조 세계로 ‘산책’하는 즐거움을 자주 누렸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보낸 몇 년 동안은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야외에서 함께 머물러 밤과 아침을 같이 맞이하는 시간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활동이 자유로워져서 캠프를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안에 캠프는 자유와 샬롬을 동시에 경험하는 축제입니다. 기도원 식당에 앉아 감자탕으로 이른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서로 마주하며 오붓하게 먹는 모습은 모든 행복함을 압축한 풍경입니다. 식사하다 가을 햇살 내리다 저물어가는 뜰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를’ 함께 찬송했던 우리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옵니다. 그 노래가 향기처럼 나와 이 공간을 채웁니다.
캠프의 생활주제:미생의 관찰
캠핑의 큰 주제는 언제나 ‘미생(微生)은 미생(美生)이다.’입니다. 이 말은 작고 미미한 존재들 속에서 발견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이런 태도는 '관찰과 성찰'이 핵심적인 태도입니다. 높은 하늘을 보다가도 발아래 길을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산책하고, 불꽃을 보고, 밥을 먹으며 내 주변의 살아있는 작은 것들과 눈길을 마주칩니다. 크고 높은 창조 세계를 조망하는 일이 행복하듯 작고 미미한 것들이 살아있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 역시 즐겁습니다. 그 끝에 나를 성찰하는 프락시스가 있습니다.
이렇게 캠핑은 미미한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로 공동체성을 함양하는 예배의 사회화입니다. 겨우 삼 일이지만 아주 많은 일을 같이 경험한 것 같다는 한 아이의 과거 소감이 있었습니다. 그 말처럼 올해도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웠습니다. 산 아래, 산 위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만나고 함께 누렸던 추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누군가의 삶에 많은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느 분이 남긴 후기가 그것을 대변합니다. "교회라는 물리적 공간 밖에서, 안에서와는 또 다른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며 진정한 교회적 관계를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소감은 이번 가족 캠프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올해 캠프의 특징:센싱 아기 놀이터-귀여운 순례
이번 캠프의 특징으로 꼽을만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 센싱(sensing) 놀이터입니다. '선한 목자와 양'이라는 주제로 교회에서 한 번(18일), 그리고 이어서 캠프에서 다시 진행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걷는 양의 '안전한 즐거움'을 경험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한 어른이 예수 분장과 극적인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그 뒤를 네 명의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따라 걸었습니다. 바위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뒤따라 걷는 아이들이 쑥쑥 컸습니다. 몸도 크고 마음도 성장했고, 지혜의 말도 더 늘어났습니다. 얼굴이 행복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성경(모빌=Morning Bible)에 기도원에서 찍었던 한 장의 사진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덧붙여 시 한 편을 쓰고 '귀여운 순례'라 이름 붙였습니다. 캠프는 늘 어린아이들의 어록으로 빛납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작년 캠프에서는 거미줄에 걸린 낙엽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저 가을 낙엽은 죽은 것일까요? 살아있는 것일까요?” “땅을 향해 떨어지던 낙엽이 우연히 만난 거미줄 덕분에 좀 더 공간에 머물게 된 것인가요?”
그 질문에 한 아이의 과학적 답과 어른들의 문학적 답이 어우러졌습니다. 문답 끝에 “저 낙엽은 죽었으나 살아있다”라는 명제가 가슴에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감사하게 올해는 "순례는 귀여운 순종이다."라는 문장을 새겼습니다. 올망졸망한 작은 발걸음 속에서도 커다란 순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캠프의 총평:모두의 샬롬
이번 캠프를 한 마디로 하면, "모두에게 샬롬을 주는 캠프였습니다!" 일 것입니다. 해마다 캠프는 그안에 공동체성의 건강상태를 돌아볼 기회입니다. 올 한 해 교회의 속살, 근육, 뿌리가 건강한지, 썩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영성의 시간입니다. 물론 허약한 것은 많지만, 그래도 기본 체력은 여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홀로 있으면서 함께 있고, 앞에 나서면서 뒤를 떠받치는 일들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초심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샬롬’을 실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캠프의 진행 주체가 능동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젠 누가 하더라도 안식이라는 큰 틀은 잘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늘어났지만, 틀이 있되, 구속은 없는 특유의 진행이 더욱 돋보였습니다. 식사, 바비큐 시간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모든 진행을 위해 아낌없는 헌신과 또 한 끼 식사를 위해 애써 주신 모든 분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둘째, 이야기가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불문하고, 주제가 있고, 질문과 답이 있는 자리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편지 쓰기는 숨은 이야기였다면, 올해는 대면하면서 드러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첫째 날 저녁, 텐트 안에서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 압권이었습니다. 이날 밤의 대화에서 기억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서전의 첫 문장에 쓰고 싶은 말은?'입니다. 이 질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라는 답이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진지하고 세밀한 이야기의 여파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습니다. 전날 여운은 다음 날 차 마시는 시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어른의 성장을 일깨워 준 특강과 그룹 나눔도 더 성숙하여야 할 책임을 상기시켜 준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올해 캠프 내내 촌철 같은 이야기, 대화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이 뜻깊은 시공간을 만들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셋째, 레크리에이션, 찬양이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작년 캠프처럼 다시 나를 더 젊은 세계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경쟁도 놀이일 수 있다는 것, 고독한 혼자만의 노래도, 함께 들어주면 하늘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기억 속에 살아있는 찬양이 여전히 나를 지탱한다는 것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의외로 여러 사람이 참여한 개인 찬양 나눔은 우리의 시간에 함께 한 거룩한 바람의 인도하심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은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기뻐하며 승리의 노래’ 부르는 한 집사님의 간절한 뒷모습이 아직 선합니다. 캠프에서 돌아온 다음 날 감사하다는 제 말에 "매일 기뻐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없겠지만, 그 상황이 자주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이 고백이 늘 현실이길 기도합니다.
다만, 한 가지 작은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 캠프 미션은 ‘디카시(Dica 詩, 사진에 짧은 시를 덧붙이는 것)’를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생각 속에서만 완성된 듯합니다. 다른 시간이 너무 좋아서 훌쩍 잊혔을 것입니다. 다음 캠프의 미션을 새롭게 기대합니다.
캠프의 의의: 사회관계적 교회 실험
캠프의 의의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캠프는 처음부터 사회관계적 교회를 연습하는 장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함께 살면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내려놓고 함께 산다는 것을 경험하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우리의 캠핑이 우리 시대 교회가 무엇인지 늘 고민하도록 안내하는 장치입니다. 그를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이유를 다시 남겨둡니다.
첫째,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습관처럼 묻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이 세계에, 인간과 더불어 세계 모든 사물이 공존해야 하는지를 물으며 그 답을 캠프라는 공동생활에서 듣기 위함입니다.
둘째, 교회가 이 세계 속에 건강하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건강함의 유지는 화려한 비전이 아니라, 작은 생명(微生)을 아름다운 삶(美生)으로 이끄는 일입니다.
셋째, 교회 자체가 미생으로서 미생을 누리는 살아있는 증거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캠핑 마지막 시간 전, 기도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마다 떨어지던 낙엽과 드러나지 않은 채 그것을 떠받쳐주는 실 같은 거미줄이 여전했습니다. 햇살도 좋았습니다. 마치 교회가 이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 삶의 방식을 은유하는 그림 같았습니다. 우리는 미생에 불과하겠지만, 우리가 누린 삶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캠프를 계속 훈련하는 것은 그것이 평생 유지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끝으로, 이번 캠프를 한마디로 요약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캠프가 점점 빡세^^지는 듯합니다. 하하. 짧은 시간이었지만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절적으로는 가을 캠프로 정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청년의 퀴즈 실력 칭찬하고,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 맛난 카레의 향연, 샤악~센싱 스토리도 눈에 선합니다.“
이런 평가를 보면, 이번에도 교회 가족들과 또 한 번 계절 캠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좋습니다. 가을이 흘러오고 이 캠프를 통해 제 삶에 아이들 웃음으로 수놓은 검붉은 듯한 갈색 옷을 다시 입힙니다.
캠프의 철학: ‘쉼’이라는 멍에를 자각하는 것
캠프는 쉼의 철학을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자신을 짓누르며 다가오는 ’ 밤 같은 시간을 늘 자신이 누릴 가벼운 안식’으로 여기는 법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밤’을 없애지 않은 채, 즐거운 낮으로 그려가는 것입니다.
캠프를 지탱하는 정신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위로와 평화로운 안식으로 초청하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잠시 생각할 거리를 남겨둡니다. 제자들에게 남긴 이 말씀에는 예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이들이 짊어진 짐을 아예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짐을, 자신이 대신 지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짐으로 바꿔줍니다. 그것은 쉽고, 가볍습니다. 하지만, 우리에는 여전히 멍에이며, 짐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우리가 넘겨준 그 짐을 새롭게 지고 길을 걷습니다. 그의 제자들도 자기 짐을 지고 자신을 따라 함께 걷도록 권면합니다. 쉼은 새로운 짐이며, 곧 일상입니다. 그래서 캠프는 이 쉼을 함께 배우는 시간입니다.
쉼은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 보는 일입니다. 물론 자기 짐을 지고 갑니다. 차를 타거나 길을 걸어 낯선 곳으로 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쉼은 장소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스스로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잠시 쉬다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떠나는 반복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에 ’쉼‘이 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쉼 속에 ’일‘로 점을 찍는 것입니다. ‘쉼’은 새로운 짐이며, 곧 일상입니다. 그러니 어쩌다 한번 쉬는 것보다는 그 주기를 짧게, 평범하게, 자기 일상으로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캠프를 함께 보낼 때마다 이 초대 속에 담긴 몇 가지 의미를 새롭게 조정합니다.
올해는,
첫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우리입니다.
둘째, 쉼은 멍에와 짐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그 멍에와 짐은 여전히 쉽고 가볍습니다.
넷째, 예수 안에서 지고 가는 멍에와 짐은 곧 우리의 쉼입니다.
결국, 예수가 남긴 이 말씀은 쉼이 ‘멍에와 짐’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멍에와 짐’을 새로운 방식으로 짊어지도록 안내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 속에는 ‘쉼’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습니다. ‘쉼’은 의미 있는 낭비입니다. 쉼이나 안식은 힘들게 일하다 잠시 쉬는 과정이기보다 그 자체로 새로운 일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잠시 쉬고, 다시 힘들게 일하고 쉬는 반복이 아니라 열심히 ‘쉼’이 곧 ‘새로운 짐을 지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예수와 함께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들은 삶의 무거운 짐을 예수에게로 가져와 파쇄시키거나 말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짐을 예수에게 맡기고 자신은 예수의 짐을 나눠서 져줍니다.
“너희의 멍에와 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의 멍에와 짐을 지고 나를 따라보라,
그 멍에와 짐은 쉽고 가볍다.”
새로운 캠프를 기대하며
올해 캠프는 한 해. 끝과 맞물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곧 감사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시간을 잘 달려왔습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매주 예배로, 매일 성경 한 구절로, 매 순간 사람들의 덕담으로 힘을 얻으며 잘 쉬었습니다. 무엇보다 숨을 쉬는 동안 ‘예수 안에 머물러 있었다’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안식이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짐은 멍에입니다’ 그 짐은 쉽고 가벼워졌어도 여전히 멍에입니다. 그런데도 그 짐은 예수와 함께 나눠서 진 것이기에 다행입니다.
어느새 올해도 막히고 답답했던 시간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감사하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돌아보고, 내다보면서 저는 ‘어떤 순간에도 감사할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밤 같은 세계에도 계절은 막힘없이 가을 단풍을 담아 우리 곁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임했던 평화를 기억합니다. 또 새로운 시간을 여전히 기대합니다.
이제 나는 가을이 가기 전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그 여행은 바로 일상에 익숙해진 자신을 좀 더 다독이며, 격려해 주고, 성찰하면서 새로운 옷을 입혀주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워지는 자신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캠프를 마치고 난, 11월, 감사의 계절이 다 지나가기 전, 여러분을 위한 여행을 스스로 찾아 누리십시오.
끝으로, 언제나 예수는 깊은 연민을 담아 그들에게 자기 멍에와 짐을 부탁합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함께 걷자고 초대합니다. 따라서 예수가 건네주는 짐을 지는 것이 우리의 쉼입니다. 그것은 다행히 쉽고 가볍습니다. 그 짐은 어깨를 짓누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루한 길을 걸어가는 데 적당하도록 내 무거운 발걸음을 경쾌하게 떠받치는 힘입니다. ‘선한 목자와 양’의 놀이에서 예수를 뒤따라 걷는 아이들에게서 저는 이 가벼운 짐을 지고 뒤따르는 우리를 보았습니다. 그 귀여운 순례가 내가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며, 당연히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생명의 숨 같은 멍에입니다. 이번 캠프에서 여러분들은 그런 예수의 말을 눈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초대에 의지하여 나의 여행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것은 짐을 버리기 위한 쉼이 아니라, 짐을 다시 짊어지기 위한 수고입니다.
지치고 짐에 눌린 여러분! 다 나한테 오세요. 바로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해 드릴게요. 나의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우세요.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낮으니까요. 그러면 여러분이 쉴 곳을 찾아낼 겁니다. 나의 멍에는 지기 쉽고 나의 짐은 가벼우니까요.
-《신약성경 마태복음》 11:28-30, 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