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향기

-카레를 만들어 나눠 먹던 날

by 푸른킴

짙은 향기에 잠이 깼다. 새벽 어스름한 시간, 어제 끓여둔 카레를 다시 데운다. 오늘 서른 명과 함께할 식사다. 뽀글뽀글 끓어오르는 카레를 보니 아주 오래전 기억이 스친다. 평촌에서 인덕원으로 차를 오갈 때, 온몸을 자극하던 향기가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거리를 지날 때면 내 몸은 여전히 그 향기를 기억한다. 음식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 음식만큼은 향기가 제격이다. 어떤 향기는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기억을 실어다 준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나만의 카레다.

그날, 모두가 나를 말렸다. 누군가는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의지를 굳혔다. 때가 되어 다섯 살, 세 살 아이들과 우리 네 식구는 그렇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를 잘 지냈다. 아이들은 잘 커 주었고, 나도 새로운 일터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에게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 끼 식사가 우리 사이에 따뜻하고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나는 카레를 만들어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에는 문외한인 내가 이 음식만큼은 머뭇거림 없이 달려들 수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메뉴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요리를 나눌 기회가 있어 어제저녁부터 준비했다. 마음이 흥분됐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진 않지만, 그 맛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식사를 나누고 한 수저 뜰 때마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도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어릴 적 실수로 가득한 수다가 여기저기서 살아났다. 그때는 슬펐지만, 지금은 분명 행복한 과거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이야기 속에서 함께 여행한다. 그렇게 한 그릇에 담긴 향기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기분 좋게 만나고 살갑게 어우러진다.


식사가 끝났다. 그러나 이 음식은 이제부터다. 이 음식을 앞에 두면 나는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우리 사이를 감싸고 스며든 따뜻한 향기 덕분이다. 부드럽게 갈고, 큼직하게 썰고, 두 번 푹 끓여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향기를 울음보다 웃음으로 먹었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이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은 향기를 맡자마자 "아, 카레 냄새!" 하며 먼저 웃음을 터뜨린다. 그 순간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마주한다. 부모님이 차려주시던 밥상 앞에서 나 또한 그렇게 웃곤 했다. 향기는 세대를 뛰어넘어 흐른다. 내가 기억하는 추억이 아이들의 웃음 속에 이어지고, 언젠가 그들도 이 냄새를 맡으며 나를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음식도 늙을지 모른다. 하지만 향기로 기억되는 요리만큼은 언제나 젊다. 먹을 때마다 나를 그날의 추억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그 틈에 나는 향기처럼 벌써 하늘로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 나의 어른들의 그리운 얼굴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밥상 차려두고 한없이 기다려주시던 그분들이 내려와 내 앞에 앉아 계신다. 그 밥상에 노란 향기가 환하게 피어난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게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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