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석,『때로는 보는 이가 눈 먼 이를 위로했다』. 나눔사, 1989.
사랑초 피어있기
딱 좋은 햇살바람―
산들산들
역까지 걷는 골목길
어느 오래된 집 앞
사랑초 두 송이
하늘하-늘
여럿이 한 데 어울리면
더 화려한 데
오늘따라 햇살 따라
나들이 갔는지
오롯이 둘 만 남아
무심하다
그마저도 나란하지 않고
하나가 다른 것 뒤에
숨은 듯 고개 감추고
앞선 꽃잎마저
힘없이 스러질 듯 바람에 쓸려,
가던 길 멈춰
가만히 몸 숙여 슬쩍 들여다보니
두 꽃잎 겨우 닿을 듯 서로
지탱하며 버틴다
다행이다
지나칠 수 없어 꽃 찍으려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
카메라 다가가는
순간,
난데없이 골목 저 끝에서
바람 휙 불어
꽃을 뒤흔들고
초점 사라진 채 흔들리는
하얀 꽃들 바라보며
나도 멈칫
바람이 잠시 멈추거나
그 바람 품에 안고
꽃이 잠시 버텨주는 순간
겨우 한 장 담고
돌아서는 내 몸
사랑초 은근히 말을 건다
그 몸짓 소리 들으며
은근히
서덕석의 ‘사랑법’
건넨다
“그대 진실로 나를 사랑하려거든
높고 고상한 이름뿐인 나를 사랑하지 말”고,
“다만 낮고 낮은 곳에서 머리 풀고
속으로 흐느끼는 너의 슬픔을 껴 안을 것”
사이
바람이 내려와 햇살 거둬가고
다시 몸 굽혀 말 더하려는 나에게
몸 접힌 사랑초 낮은 소리로,
그렇다면
“그대
진실로 나를 사랑하려거든
거짓과 속임수와 위선으로 가득찬
그대 병든 가슴을 죽도록 미워할 것”
물끄러미 그 소리
들여다보다,
사랑이란
너를 껴안고
나를 미워하는 것이란 평범한 사실,
바람 불어 갈피 없는 몸이라도
‘함께 있겠다’라는 저 꽃말답게,
태초에 창조주
소리 없이 심어놓은,
햇살 아래서만 피고
저녁 노을, 어둠 아래
몸을 접어주며
빛을 환영하고
어둠도 환대하는
가장 여린 자의―
강한 삶의 방식
사랑초 저물어준 길
다시
잊혀진 그 사랑법,
거친 바람에도
몸 닿을 듯 함께 한
저 두 꽃잎,
속삭여준 마음
강물처럼 내 몸에
출렁이는
도시바다,
횟집 골목,
아침에
다시 핀
어제의 사랑초 거리
이미지 출처. http.//www.emiji.net/bbs/sub3_1/8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