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극히 ‘세속적’ 고백
1.
가을이 늙는다. 은은하게, 아주 천천히.
계절의 걸음이 느려진 덕분에 단풍도 치장할 시간을 벌었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더 곱게 물이 든다. 멋있다.
나는 단풍이 얼른 시들지 않아 좋다.
툭,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매일 기대했던 택배를 열어보는 재미가 있다.
길을 가다
어느 가로수 단풍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 오래 바라보았다.
파스텔화 같았다. 선명하지 않아서 좋았고, 경계가 흐려서 좋았다.
금세, 시샘하듯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은 떨어져 바람 따라 흩날린다.
낮은 곳으로 떠밀려간다. 불려 가는 중에도 말없이, 주어진 길 춥지 않게 소복하게 덮어준다.
늦가을의 진갈색은 늘 낯설다. 그러나 따듯하다. 그래서 좋다.
낙엽이 앞선 길을 나도 따라 그저 걸었다.
바스락, 바스락. 파르릇, 우두두욱
잎의 ‘밀어(密語)’ 같다.
나무도 사람 같아서 겨울이 오기 전, 마음에 담아둔 말을 쏟아내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몸을 가까이 기울인다.
나란히 걷고 있으니, 나무와 나—서로 마음의 말을 숨기지 않는다.
나무는 낙엽의 색깔로, 나는 나이의 색으로 물들며 우리는 함께 겨울로 간다.
‘함께’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눈빛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보기에 좋았다.
2.
매해 11월은 한 해의 끝을 앞둔 감사의 달로 기억한다.
올해는 아쉬움 없이 이 절기를 잘 지나는 중이다.
사실, 작년 이즈음, 실패한 감사가 있었다.
그때, 나는 ‘감사’의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보려 했다.
스스로 세 가지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감사의 마음을 ‘손편지’로 전해보기,
또 하나는 ‘높이 오래 걷기.’ 좋은 산을 오르는 등산이다.
마지막으로 ‘낮게 멀리 걷기.’ 즉 풍광 좋은 호숫길을 선물하듯 함께 걷는 트레킹이다.
편지는 잘 썼지만, 결국 ‘등산’은 하지 못했다. 멀리 걷기도 어려웠었다.
사실, 높이 걷는 등산 장소를 작년 초부터 무주 구천동, 덕유산으로 정해두었다.
이곳을 정한 것은 산의 이름 때문이었다. ‘德裕, 덕이 넉넉히 넘친다.’
조금 우격다짐 같았지만, 감사란 결국 ‘덕이 차오르는 단순한 행동’이라는 해석이
마음을 훅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한 날 전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나는 함께 걸을 이들을 생각해 하루 먼저 내려가 길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돌길은 이미 젖어 미끄러웠다.
계곡을 오를수록 나뭇잎은 모두 겨울 준비를 끝내고 스산한 가지만 남긴 채
고요했다. 휑한 계곡엔 물소리만 구슬펐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평소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보다 길이 훨씬 멀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사실 먼 거리였다.
평소 산을 오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여정이 무리였다. 나의 착오였다.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결국, 미련 없이 취소했다.
취지와 달리 예정된 일이 진행되지 못하니 속상했고,
누구보다 함께하려 했던 이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포기는 빠를수록 좋을 때가 있다. ‘다음에 또 걸으면 된다.’
그 작은 기대 하나가 실패의 아쉬움을 그나마 덜어주었다.
3.
덕유산 경험처럼, 살다 보면, 예정은 자주 어긋난다.
그 빗나간 예정은 꿈꾸었던 결실과도 멀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럭키(lucky)’라는 말이 회자했다.
생각해 보니 꼭 필요했다.
작년 상황도 사실 럭키한 일정이 이어졌다.
산행 일정이 틀어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 잘 쉬고 난 다음 날,
전혀 뜻밖의 길을 선물처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이면서도 옆으로 난 길이 이어졌다. 그래서 더 좋았다.
고즈넉한 호숫가의 가을 길, 그 옆으로 해발 119m의 산이 이어 붙어있었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다. 그 산을 먼저 천천히 올랐다.
곧 내려와서는 13km의 호수 둘레길을 반나절 동안 걸었다.
낮은 산이었지만, 정상에 서니 그 웅장함은 다른 높은 산 못지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몸과 숨이 함께 탁 트였다.
‘럭키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둘레길을 걸을 땐 날씨와 풍경이 기대 이상이었다.
아침엔 비가 내리고, 오전엔 햇살이 들고, 점심 즈음엔 바람이 불고,
해 질 무렵엔 새소리가 스며들었다.
흐려도 좋고, 맑아도 좋고, 바람이 불어도 좋았다.
날씨는 그저 하루의 표정일 뿐—나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호수의 윤슬은 빗방울을 비추다가 이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검갈색 물 위에는 파랗고 하얀 구름이 단풍처럼 얹혀 있었다.
하롱 떨어지는 잎에 놀란 물새가 불쑥 날아올라 숲으로 스며드는 순간,
퍼덕임마저도 거룩하게 느껴졌다.
걷던 길을 멈춰 성소에 들어서듯 몸을 낮춰 잠시 침묵했다.
그날의 숲길은, 맑음도 흐림도 바람도 새소리도 모두 어울려,
세속의 풍경이 어떻게 거룩함을 깨우는지 은근하게 보여주었다.
숲길은 늘 어느 성소보다 경건하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소곤거림조차 낮은 기도 소리로 들린다.
카이로스처럼 주어진 이 길은
세속을 억누르며 ‘거룩해야 한다’라고 채근만 하던 나를 되레 깨웠다.
세속의 어느 장소든 상상을 넘어서는 현실 속 기도의 토포스라는 것을 은근히 짚어주었다.
거룩한 걷. 기는 오히려 세속의 자리에서 더 깊이 성취되는 의식이었다.
4.
돌이켜보면, 작년 가을, 나의 감사 실행 계획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실패였다.
그러나 나는 예상치 못하게 낯선 가을 길을 거룩한 의식처럼 삶에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단번에 ‘럭키’였다.
‘럭키’는 나를 성찰하게 돕는다.
감사의 절기가 오면, 나는 늘 결실만을 찾고
그 결실을 ‘거룩’이라는 포장지로 감싸려 애쓴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헛살았다는 듯 안절부절못한다.
실패는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 삶은 이미 빗나간 계획과 실패들로 이뤄진 ‘실패의 조각보’다.
그래서 언제나 나를 되돌아보는 고백이 필요하다.
“실패, 그 자체가 이미 ‘럭키’였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그뿐만 아니다.
수도 없이 많은 실패 속에서도
내 말을 들어주고 응원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다행이다.
우연히 만난 커피 한 잔은 늘 맛있으며,
미미한 결실에도 핀잔 주는 이는 없다. 이것도 큰 행운이다.
단풍을 함께 즐겨 줄 사람도 있고,
낙엽 밟는 소리에 ‘꿈의 대화’를 떠올리게 하는 도반도 늘 함께 있다.
얽히고 뭉개진 과정까지도 기적처럼 풀어 이해해 주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가족도 언제나 그대로다.
손에 잡히는 결실만으로 나를 단정 짓지 않으려는
야훼의 은총은 한결같다. 그 항구여일(恒久如一)한 모습이 늘 감사하다.
5.
그렇다면 올해 가을 나의 결실은 무엇일까?
나는 ‘무결실에 굴복하지 않는 기다림’을 다시 생각한다.
결실을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작은 결실을 향해 분투해 왔으니
잊지 않아야 한다.
결실보다 중요한 것, 씨앗을 뿌리며 기다리는 인내.
그 인내는 혼자만의 결실이 아니다.
나를 토닥이는 야훼의 손, 타인의 손길 덕분이다.
그래서 나 역시, 결실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사람을 응원한다.
나 자신도 아직 미숙하지만,
나보다 더욱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위로한다.
나의 위로는 그림 동화책 주인공 ‘프레데릭’을 뒤따르는 일이다.
‘결실에 궁핍해진 겨울을 견뎌야 하는 친구들을 위해,
계절의 색이 사라지기 전 그 아름다운 색을 저장해 두는 색과 이야기의 수집가.’
무결실의 방랑자는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결실을 만들고 있다.
그러니 무엇이 되어도 좋다고 자신을 스스로 토닥인다.
그 틈에, 내가 마지막에 조용히 읊조릴 나의 유일한 감사를 적어둔다.
“나에게 아직, 나의 삶의 지난한 고독을 버텨낼 힘이 남아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야훼는 나의 실패를 방치하지 않는다.
이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일 하늘의 물감으로 사용하신다.
가을이 오면, 나는 '전어를 따라 되돌아오는 어느 며느리처럼'
오랜 수첩에 남겨둔 하늘의 메시지를
옛 히브리인들의 말로 다시 읽는다.
아트 리, 아타 리-“네가 나에게 좋다.”
야훼의 이기적인 추임새, 그것을 자기 삶으로 건네주는
사람들의 손 덕분에
올해 나의 11월도 붉은 까치밥처럼 끝까지 멋지게 익어간다.
그래서 한결같이 감사하다.
나는 올해도,
나의 감사 의식을
‘멀리 오래 걷는 일’로 진행하려 한다.
그리고 그 끝에 나의 가을을 다시 기억하려 한다.
이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 아니라,
보존해 온 씨앗을 내 안에서
꺼내 마음에 뿌리는 계절이다.
결실은 설익었다.
끝까지 잘 익으려면,
기다리고, 인내하며, 희망에 몸을 기울여
전진해야 한다. 길은 멀지만, 한 걸음씩 걸어야 한다.
기억해 두자.
‘가을—하늘로부터 쉼 없이 씨앗이 공급되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