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6. 꽃의 일기

by 푸른킴

나는 한 번 피지 않아

내가 지면

내 곁에

너, 너 뒤에 우리―

따로 또

같이



배경

나는 가을이 되면 장항선 기차를 타고 서해안 어느 작은 도시로 내려가 호수 둘레길을 하루 종일 걷는다. 올해도 그 시간을 잘 보냈다. 머무는 숙소에서 호수까지 가는 길은 넓은 도로와 나란히 있다. 길 왼쪽의 8차선 도로와, 어른 여섯 명이 늘어서도 충분한 인도는 우리 삶이 하나의 선형(線形)으로 이어진다는 도시의 은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차가 내달리는 그 길을 따라 나의 걸음으로 걷다가, 화단에 피고 지는 꽃들을 만났다. 그 순간, 나는 삶이 단지 홀로 내달리는 도로와 같은 선형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며 순환하듯 움직이는 나선형의 전진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직감을 따라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날, 주변의 모든 풀과 나무가 가을을 맞아 진갈색으로 변색하는 중에 유난히 진분홍 코스모스 세 송이가 선명했다. 군락이 아니라 딱 세 송이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두 송이는 붙어 있고 하나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모두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이 키 낮은 코스모스 뭉치는 주변의 갈색 강아지풀 숲에 서서 어린 초록 풀을 옆에 세우고 오롯이 핀 모습이어서, 어느 모로 보나 당당하게 도드라진 풍경이었다. 늦은 오후, 길 걷기를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열어보자, 배경과 잘 어우러진 장면 속에 몇 글자를 덧붙여 쓰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꽃 자신의 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사진

꽃 사진은 꽃을 꽃답게 부각하는 것이 관건이며, 나에게 그것은 클로즈업이다. 이 사진은 코스모스가 풀숲 아래 어린 풀의 키만큼만 자라 땅바닥에 내려앉은 모습을 포착했다. 나는 이 사진을 통해 세 가지 대비와 조화에 집중했다.

첫째, 색의 대비와 조화: 늦가을의 갈색 풀잎(소멸)과 그 속의 진분홍 코스모스(생성)가 선명하게 대비된다. 특히 노란색 꽃심과 옆의 초록색 풀로 인해 사진 속 여러 색이 안정적으로 조화되며 소멸, 생성, 보존의 의미를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둘째, 이미지의 대비와 보완: 갈색 강아지풀의 보드라움, 코스모스 꽃잎의 뭉특한 갈라짐, 초록 풀의 여릿한 곡선이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며 자리한다.


셋째, 관계성의 시각화: 세 송이 코스모스가 이룬 삼각형 구도는 개체의 독립성과 동시에 어울려있는 ‘관계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강아지풀의 저묾과 코스모스의 피어남, 그 사이 초록 풀의 존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보여준다.


시어

디카시의 문학적 성취는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사물들의 개별 존재감과 관계를 포착하는 시어의 배열로 드러난다. 이 시어는 은유와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섯 행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한 번 피지 않아”: 코스모스는 자신의 생을 이 가을의 단발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작년, 올해, 내년으로 이어지는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꽃의 자기 고백이다. 이는 곧 완전히 지지 않고 지속되리라는 관찰자(나)의 기대를 담고 있다.


“내가 지면 / 내 곁에 / 너, 너 뒤에 우리”: ‘너, 너’의 반복은 동일화된 너가 아닌 차이와 구별을 유지한 개별적 ‘너’를 상징한다. 차이를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개별자들이 코스모스(질서)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공동체성은 획일적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한 존재들의 연대에서 유지된다.


‘따로 또 같이’: 코스모스는 고유한 색과 모양을 간직한 채(따로) 함께 한 계절을 산다. 시들어가는 강아지풀과 어린싹까지 포함하는 ‘우리’라는 개념은, 꽃이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존재들(배경)과 함께함으로써 완성되는 관계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내가 읽은 것과 대비되는 맥락이다. 그의 시에서 ‘저만치’가 ‘고독 속의 고즈넉한 공동체성’을 말한다면, 나의 “따로 또 같이”는 ‘개체의 시공간을 넘어 함께 피어 있는 연대와 사회관계성을 성취하는 윤리적 아름다움’을 노래하려는 것이다. 이 시어의 제목이 ‘꽃의 일기’인 것은 나의 말이 아닌 꽃의 자기 성찰을 빌려오려는 시적 장치이다.

의도

이 디카시에 담고자 한 가장 큰 의도는 ‘공동체성’이다. 이는 조직화된 공동체가 아닌, 거리와 상관없이 고립되어 보이는 개인들이 상호 연대감을 떠올리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공감하는 비가시적, 무형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다음 세 가지 점을 정리해 본다.

첫째, 이 디카시에 시간과 존재의 역설을 담았다. 사진 속 대비와 조화는 직선적 흐름을 거스르며, 소멸과 생성이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병치되는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시각화하려 했다. 꽃이 지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삶의 자리를 이양하는 ‘건너감, 넘어감’의 계승이다.

둘째, 이 시에는 관계적 실존의 의미를 담았다. 세 송이 꽃의 삼각형 구도(‘따로 또 같이’)가 핵심이지만, 이 꽃들이 주변의 강아지풀, 어린 새싹 등 시들어가거나 겨우 피어있는 존재들(배경)에 의해 그 화려한 자태를 유지한다. 이 점에서 이들의 관계적 구조가 최종 완성된다. 모든 사물은 배경으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다.


셋째, 개인의 정체성은 공동체 정체성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마이클 헥트 이론을 빌려와 심화한 것이다. 오늘 내가 사는 세계는 ‘고립된 자아’가 증폭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주의적 존재론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홀로 있되 홀로 있지 않다는 사회적 연대감을 고양하는 것이 더 큰 의미다. 이는 헥트가 말한 대로 인간의 정체성 층위가 개인적 레이어에서 공동체적 레이어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클 헥트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홀로-있음’은 ‘함께-있음’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은 세계 유지에 꼭 필요하다.


이처럼 개체의 소멸인 꽃이 지는 행위는 뒤따르는 '너'에게 삶의 자리를 이양하는 계승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한 개체의 끝은 곧 공동체성에 근거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이는 헥트의 정체성 레이어를 소통적 차원을 넘어 생명적/존재론적 숙명으로 심화하는 나의 사유이다. 개인의 존재는 소멸하되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성으로 다시 새로운 이야기 꽃으로 생성되며, 관계성을 통해 우주(코스모스) 속에서 빛난다.

정리

내가 추구하는 디카시는 서정시의 토대에서 철학시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 시철학은 사진 속 사물의 존재를 통해 개별적이고 관계론적 존재 가치를 일깨우는 데 있다. <꽃의 일기>라는 제목은 꽃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담았다. 나의 의식이 꽃의 의식이 되는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세계의 사물과 인간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쓸려 사라질 것이다.

사진은 시어에 의해 해석되고, 시어는 사진으로 그 의미가 완성되는 상호 작용이 디카시를 구성한다. 이 디카시의 타자(꽃/사물)들은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비폭력적 관계성으로 회복하며, 곧 샬롬의 세계로 함께 전진하는 것이다. ‘샬롬’은 단순히 평화로운 상태를 넘어 ‘코스모스의 회복, 즉 질서의 정위’이다.

이 글은 자연을 응시하는 나의 눈의 관찰 기록이면서, 동시에 꽃이 자기 존재의의를 사유하듯 나도 나의 존재 의미를 기억하려는 일기이다.

“나는 한 번 피지 않아”


이 꽃의 고백이 자연의 섭리이자, 죽음 너머 영원의 삶을 인식해야 하는 인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학적, 철학적 선언으로 우리 삶에도 반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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