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단상(11)

밤눈, 그리고 당신의 대림절(Advent), 안녕하신가요?

by 푸른킴

1. 尋降夜 - 눈이 찾아온 밤

지난주 기습적인 눈에 놀란 마음들이, 이번에는 잘 대처해 보겠다고 애써 보는 밤이다. 눈이야 언제든 내릴 수 있지만, 눈이 오면 모두가 허둥지둥하는 것은 매번 낯설다. 어느 때나 눈이 내릴 때 길은 잠깐 화사해지지만, 녹기 시작한 눈길은 곧 진탕이 된다.


가장 힘겹다는 지난 1월에도 눈은 쏟아졌건만, 한 해 끝에 내리는 눈을 굳이 ‘첫눈’이라 이름 붙이면서 향수에 젖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파릇한, 지난한, 화려한 봄-여름-가을이 살갑게 쌓여야만 비로소 첫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간, 계절이 겹쳐야 첫눈이 오고, 첫눈이 떠나가야 마침내 새 눈이 세계를 덮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눈은 화사하게 덮었다가 뒤섞여버리는 진탕을 반복한다. 특히 이 대림절에 내리는 눈은 삶의 진고개를 뒤덮는 듯하다. ‘눈’은 세계의 검고 어둑한 생채기를 덮을 수 있지만, 녹는 순간 그 흔적은 다시 스며 나온다. 뒤이어 내리는 눈이 그 뒤엉킨 길을 다시 덮어주면 비로소 세계는 온화해진다. 비록 그 모든 삶의 흔적은 눈 아래 숨죽이고 있어 눈 녹으면 더 뒤엉킨 모습으로 나타나겠지만, 그래도 눈 내리는 그 찰나만큼은 언제나 하늘의 선물이다.


2. 飛雪夜 - 눈이 솟아오르는 밤

올해 초, 눈 내린 바깥 세계가 궁금해서 눈이 잠깐 잦아든 틈을 타 산책했다. 길은 이미 조금씩 덮이고 있었다. 더 들어가려다 돌아섰다. 산길을 뒤로하고, 동네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섰다. 조심스럽게 걸으며, 오늘 일기의 주제를 떠올렸다. 내 삶의 노래하나를 가만히 생각했다. 임재범의 ‘비상(1997년)’이었다.


평소 부르는 일은 드물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가사를 음미하기 좋은 노래다. 특히 ‘너무 많은 생각에 자신을 가둬두는’ 사람들에게 ‘고독은 꼭 나쁜 것은 아니며’,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것을 깨닫게 했다’라고 다독이는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비상’은 곧 고독 속으로 스스로 하강했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날갯짓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마치 하늘로 되돌아가는 듯한 역행(逆行) 같은 움직임이다.


3. 遠雪夜 - 멀리 가는 눈의 밤

눈이 내렸으니, 삶의 불편함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또 다른 노래도 기억한다. 송창식의 ‘밤눈’이다. 가사를 쓴 사람은 소설가 故 최인호(1945~2013) 님이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 이 가사를 쓰고 송창식 씨는 군에 입대하기 전, 이 가사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불안한 앞날에 이 노래를 바친 것이다. 삶이 추락할지, 날아오를지 알 수 없어 흔들리는 자신을 한밤중에 내리는 눈에 은유하여 따스하게 토닥토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사보다 곡조에 더 마음이 기울지만, 노래 끝에 이 가사만큼은 여전히 마음을 토닥이는 좋은 구절이다.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이 가사에는 눈 덮인 밤길을 겁내지 않고 한 발씩 전진해 삶의 깊은 곳까지 들어간 ‘나’가 있다. ‘너’도, ‘우리’도 거기 있을까?


4. 犧雪夜 - 너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눈의 밤

‘밤눈’이라 하면, 시인 김광규의 시도 있다.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수록. 『좀팽이처럼』, (문학과지성사, 2001)-

겨울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노천 역에 서 있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추위 속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시인은 ‘따스한 방’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그뿐 아니다. ‘눈’, ‘바람’이 밤새 쏟아져 불어도, ‘서로의 바깥’이 되어 밤을 지새우고 싶은 사랑은 여전하다. ‘나’는 ‘너’를 위해 기꺼이 ‘바깥’이 될 수 있다. 시인의 간절한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까. 되었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 나는 아침까지 내릴 저 밤눈 속에서 이 늙은 시인의 시선이 ‘너’를 위해 ‘나’를 내던지는 ‘사랑’을 따뜻하게 응시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5. 溫雪夜 - 삶을 따뜻하게 하는 눈의 밤

밤새 내린 눈을 따뜻하게 그려낸 시인은 또 있다. 시인 故 윤동주(1917~1945)다. 그날도 눈이 ‘밤’에 내렸던 모양이다.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눈」, 1936.

아침에 별천지처럼 ‘소오복’ 쌓인 눈을 시인은 ‘세계를 덮어 준 이불’로 그려냈다. 추운 세계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하늘의 이불 말이다. 그의 동시가 눈 덮인 오늘 내 삶을 스치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시인은 모름지기 차가운 세계 아래서 따스한 세계를 캐내야 할 운명을 스스로 짊어진 사람처럼 보인다.

6. 夜雪晝 - 밤새 내리는 눈, 이제 아침으로

세계는 여전히 밤이다. 이 밤에 ‘눈이 내렸다’고 해서 세계가 낮이 되진 않는다. 눈 덮인 밤은 낮이 아니다. 그저 밤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밤은 ‘영원’ 하지 않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도 끝은 온다. 밤 같은 세계는 동틀 때 균열한다. 새벽은 첫눈처럼 임재하는 균열의 시간이다. 그러니 나의 일은 명확하다. 이 불안한 세계의 밤에서 그 새벽을 고요히 ‘기다린다.’ 밤눈 내리는 날, 나는 하늘을 향해 한 통의 편지를 날려 보낸다.

“당신의 대림절은 안녕하신가요? 이 밤 내리는 눈을 보며 하늘의 ‘성육신’을 이 땅에서 기다립니다. 이 눈은 당신이 보내는 위로의 편지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땅의 사람들이 서로의 바깥이 되기를 기꺼이 감당하고 서로에게 따스한 이불이 되었던 작은 몸짓을 당신이 크게 격려하시는 선물입니다.”


그 틈에 시나브로, 한밤중의 눈은—비록 진흙길이 될지언정—오늘의 선물이다. 따스한 대림절이 그 끝에 달려, 저만치 와 있다. 밤눈이 새벽 전에 조용히 녹아 길이 아무 일 없던 듯 매끈해지면 좋겠다.


*대림절 단상(2)의 재진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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