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오면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싶다. 내세울만큼은 아니다. 읽은 책은 아낌없이 다른 이에게 주기도 하고, 필요하면 다시 사들였다. 읽고 남을 주고, 다시 사고, 꽂아두는 일을 반복해왔다. 이런 저런 주제 가리지 않고 열심히 관심을 넓혀가며 읽었다. 여러 주제 중에, 한 때 나는 단편소설을 즐겨 읽었다. 딱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것이 좋았다. 단편소설집에 실린 정갈한 글보다는 문학계간잡지에 성글성글한 소설들을 더 좋아했다. 소설가 윤대녕의「말발굽소리를 듣다」, 이제는 삶을 달리한 소설가 이청준의「잔인한 도시」는 두고두고 되새김질허는 글들이다. 그 소설가들의 치밀한 글구성과 수사적 표현에 늘 경이로움마저 갖는다. 소설말고도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여러 책들도 제법 인상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이야 당연히 글들로 가득하겠지만 아예 그렇지 얺은 책도 있다.
2.
나의 서재, 월서각에는 특별한 책이 하나 있다. 내 책장에 남아있는 책들의 사연을 들자면 그럴듯한 이야기 하나 정도는 떠오를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새겨둘만한 사연이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긴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특별한 책은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애써서 발품을 팔아 사들인 책도 아니다. 감사하게도 몇 해 전에 선물을 받은 책이다. 사실 선물받은 책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 읽지않으면 다시 꺼내 꼼꼼히 읽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재밌게도 이 책은 해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잘 읽히는 책이다. 한 두 장 정도 읽으면 충분하다. 다 읽을 이유도 전혀 없는 책이다. 한 장 정도 읽으면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별한 책이다.
3.
이 책엔 글이 없다. 붉은 외양과 황금도장으로도 참 멋진 책이다. 노란색 안종이도 세련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종이만 제본되어 있다. 꼭 경전처럼 보이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 때, 성경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 장을 열어본 순간,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책이 순간 낯설었다. 아마도 책을 받아든 사람에게 아무 내용이나 자유롭게 써보라고 권하는 것 같았다. 하여 한 두번 이 빈 종이에 무엇을 써볼까 은근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혹시 글씨를 잘못 쓰거나, 제대로 된 내용이 아니라면 낭패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빈 채로 두고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는 이 생각이 다소 어색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책이니 뭐라도 써서 채워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알았다.
4.
서재 월서각에 와서 머물 때마다 아침이나 저녁에 이 책을 꼭 한번은 열어보고 읽는다. 책을 펼치면 아무거나 상상하게 된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생각은 자유롭게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야기가 이어지지도 않는다. 앞선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금방 까먹기도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셈이다. 아무 곳에서나 덮으면 된다. 다 읽을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이 책을 처음부터 다 읽었다고 자랑할만한 것도 없다. 독서후기를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어쩌면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빈 책은 책을 넘어서는 책읽기를 자극한다. 글씨에 함몰된 독서로부터 자유를 준다. 글과 글 사이에 저자가 새겨둔 사고 흐름을 추적하듯 따라가 찾아낼 책임도 없다. 독자반응비평, 저자비평과 같은 분석적 방식도 필요하지 않다.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서 넘기고 덮으면 된다. 그 속에 이야기가 있다. 물론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내가 상상한 결과들이다. 떠오르다가 이내 사라져버리는 것도 묘미다. 책을 지식을 채우는 도구로만 읽던 나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책으로써 인격을 갈고 닦아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배웠던 나의 시대도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져가고 있다. 서재 월서각에 남겨진 얼마되지 않은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시에 저 책들을 뛰어넘는 빈 책을 펼쳐서 멋들어지게 읽는 시간을 상상해 본다.
오래만에 서재에 와서 이 빈 책을 다시 꺼내본다.
여러모로 좋은 책선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한마디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