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4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두 달 전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나는 졸업을 하고도 일 년 넘게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시기는 마지막 기말고사 때의 그 포부와 에너지가 거의 사라진 시기로, 마음은 급한데 실행은 없는, 그런 시기입니다.
그러다가 한참 전에 지원했던 회사에서 면접을 보겠느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는데 예상에 없던 면접이라 결국 잠을 설쳤습니다.
이리 뒤척에는 의욕이 샘솟다가, 저리 뒤척에는 의욕이 푹 죽는 그런 밤을 보내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그럼에도 전환점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습니다.
언젠가 '자기 암시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저명한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거울 속 나와 대화하기’는 자신감을 끌어올려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나는 거울을 잘 보지 않습니다. 내 모습이 어색하다기보다는 딱히 볼 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백화점 화장실 단장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무엇을 단장해야 할지 몰라 눈꼽 정도만 떼고 손을 열심히 닦고 나옵니다. 집에서도 입 주변에 치약이 묻었는지 혹은 이가 잘 닦였는지 확인할 때, 머리를 말릴 때 머리 가르마가 잘 타졌는지 뒤통수가 너무 납작하지 않은 지 확인할 때 빼고는 거울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치를 할 때는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져 베란다에 나가 양치를 하거나, 다 썼지만 치우지 않아 며칠 째 그 자리에 있는 치실 통, 어제 찾아 헤맸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끈, 염색머리가 엉켜있는 안 쓰는 오래된 빗, 다 쓴 휴지심, 이런 것들을 구경하며 양치를 합니다.
하지만 이 날은 면접 날이었고, 면접 날에는 자신감이 한 꼬집이라도 아쉽기 때문에 나는 양치를 마치고 거울을 뚫어져라 들여다봤습니다. 거울을 보며 윙크를 날리고 눈썹도 들썩거렸습니다. 얼굴 근육이 조금 굳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개구리 뒷다리, 숲 속의 수사슴'도 입을 크게 벌리며 발음해보고, 눈이며 콧구멍이며 입이며 모두 오므랗드렸다가 활짝 펴기도 했습니다. 이만하면 최선을 다 했다 싶어, 마지막으로 한 발 물러나 전신을 확인하고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이질감이 드는 검붉은 얼룩이 눈에 띄었습니다.
윙크를 날릴 때만 해도 없었던 그 얼룩은 오른쪽 가슴팍께에 묻어 있었습니다. 거울의 시선을 따라 오른쪽 가슴을 만지자, 순식간에 뜨겁고 축축한 것이 흘러내려 흰 반팔티를 적셨습니다.
그 순간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쭉 났다가 단숨에 식어 오싹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덜덜거리는 목소리로 베란다로 가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는 다 돌아간 세탁물을 꺼내고 있었는데 싸늘한 부름을 눈치챘는지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말했습니다.
“엄마를 왜 이렇게 비장하게 불러?”
엄마는 굳은 얼굴로 당신 앞에 들이밀어진 흰 반팔티와 내 얼굴을 몇 차례 번갈아가며 봤습니다.
“이게 뭔데.“
“모르겠어. 피 같은데.“
고백건대, 2주 전부터 간간히 속옷에 완두콩 크기만 한 검붉은 자국이 묻은 걸 봤습니다. 당시 등에 여드름이 나 있었고 또 평소에도 실수로 옷을 잘 뒤집어 입기도 했기 때문에, 단순히 등의 여드름 상처가 묻어 생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울로 등을 확인해봐도 피 나는 여드름은 없어서, 등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 등이기로 했습니다. 어쩜 그리 둔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였더라도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유방 질환을 의심할 25세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