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오이 Jul 30. 2022

아들은 군입대, 딸은 유방암

엄마는 동생이 대학을 집 근처로 갔으면 했습니다. 괜히 멀리 가서 밥도 못 챙겨 먹는 자취생이 되지 말라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십여 년을 명문대 앞에 살고 있었지만 애초부터 동생은 명문대생이 될 계획이 없었고 그 입장은 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지방으로 대학을 갔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엄마는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며 이주에 한두 번씩, 왕복 세 시간의 아들 집에 내려갔습니다.(지금은 아닙니다만) 그러고도 엄마 마음의 대부분은 아들의 매 끼니에 가 있었습니다. 먹는 거며, 입는 거며, 자는 거며, 뭐 하나 마음 놓이는 것 없이 일 년을 보냈습니다. 일 년 후 동생은 병무청으로부터의 편지 한 통에 방을 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6월 25일, 뻥을 좀 보태 집 베란다 창문에서 고개를 내밀면 부대를 휘감은 산맥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훈련소에 입대했습니다. 이때는 내가 첫 번째 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자 암 환자로 확정된 때였습니다. 아직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동생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국방부 마크가 붙은 소포 상자가 온 날, 울컥하는 마음을 붙잡고 상자를 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이때 많이들 울지 않던가요.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로 시작하는 수동성 짙은 편지와 (아무리 그래도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는 너무 했습니다), 한쪽으로 쏠려 구겨진 옷 뭉치, 그리고 담긴 것에 비해 과한 크기의 택배 상자. 우리는 이런 것들에 드라마에서처럼 눈물은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웃었지요.


하지만 눈에 보이질 않으니 밥은 잘 먹는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는지, 군대 보낸 다른 집들이 하는 걱정을 우리 가족도 했습니다. 가끔 훈련소에서의 사진들이 올라왔는데 아직은 쭈뼛한 풋내기들 틈에서 어리바리하게 웃고 있는 동생을 찾아 확대해서 동생을 놀리기도 했습니다. 나와 엄마는 틈틈이 인터넷 편지를 보냈고 동생은 저녁마다 편지 쓰는 시간이 있다며 손편지를 자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엄마 아빠'는 사라지고 누가 갈궜다는 험담과 먹고 싶은 음식이 나열됐는데 그러면 엄마는 다음 면회 때 그것들을 가져갔습니다. 그냥 그때 잠깐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하는 아들에도, 여전히 엄마는 아들의 최애 음식이 칠리새우인 줄 알고 면회 때마다 칠리새우를 싸갔습니다. 다음 편지에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칠리 새우에 햄버거,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칠리새우에 햄버거에 초밥을 싸갔습니다.


하루는 엄마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울었습니다. 드라마 시작 전 광고 시간에 울 일이 뭐가 있을까 해서 갑자기 왜 우느냐 물으니 엄마는 그동안 못해준 것이 생각나서 운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이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넘치게 받았습니다.


부모의 걱정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각적이어서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자식은 기억도 못하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과거의 자신을 탓합니다. 그런 엄마는 딸의 암 앞에서도 과거의 자신을 탓했습니다. 의사는 암이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러운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입덧이 너무 심해 나를 포기하려 했던 날의 본인을, 무언가를 덜 먹였고 무언가는 많이 먹였던 날들의 본인을 탓했습니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것은 아닐까, 그런 환경을 만들어줬던 것은 아닐까, 그걸 왜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하면서요. 안 울었다면서 아침마다 이마까지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삼십 대 엄마의 기도는 자식들이 스무 살 때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였다고 합니다. 스무 살 정도면 부모가 필요 없는 나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엄마는 자식이 그것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는데도 여전히 외출하고 왔으면 손부터 씻으라 하며, 넘어지니 뛰지 말라 하며, 자정 넘어 귀가한 게 밉다가도 저녁밥은 먹었는지 묻습니다. 참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보는 엄마가 아직 할머니가 아니듯 엄마가 보는 우리는 아직 어른이 아닌 듯 싶습니다.


나는 부모의 노심초사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동생의 빈 방 문짝 아래 새어 나오는 빛이 엄마의 꺽꺽 우는 소리에 흔들리던 새벽은 알고 있습니다. 모래사장에 적힌 글씨 쓸어가듯, 이번 파도에 이번 걱정을 다음 파도에 다음 걱정을 깨끗이 쓸어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해변에 밀려 쌓이는 쓰레기처럼 첩첩이 쌓인 자식들의 시련에 얼마나 자신을 탓했을지요. 나는 매번 방문 손잡이만 쳐다보다 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전 10화 가슴을 잃는 것이 사과를 사는 일은 아니잖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