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오이 Aug 01. 2022

아빠는 여전히 나를 우리 아가라고 부릅니다

단둘의 아빠와 나는, 버스가 왜 안 오지라는 옆 사람의 혼잣말에, 버스가 왜 안 오는지 알면서도 못 들은 체하는 버스 정류장의 어떤 기다림 같은 관계였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뒤틀린 채 끝이 났습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현실적이라는 말을 꽤 많이 들었습니다만 아빠는 그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엄마와 꿈이 어쩌고, 삶이 어쩌고 하면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다 꿈이 어쩌고 가 뭐가 있어 돈을 벌어야 먹고살지라고 하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닦달을 했다거나 내 행동에 불만을 비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지하거나 응원하는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막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닌데 좋은 것도 아닌, 나만 불편한 느낌이랄까요. 아빠는 내가 공부 좀 시켜놨더니 기고만장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나는 아빠가 꽉 막혀 본인 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와 아빠의 관계는 몇 년째 첫 문장에 멈춰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할 때도 있었는데 하게 된다면 식사 시간에 뉴스를 보며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특히 엄마가 갑자기 전화 통화를 한다던가 하는 이유로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거대한 음식 덮개가 아빠와 나를 덮어버린 것 같은 비좁은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주에 태풍이 온대, 금리가 또 올랐네 정도의. 대답도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만 그러네, 문제네가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꼬여버린 나는 아빠의 문자를 보고도 마음이 꼬였었습니다. 아빠는 가끔 문자를 보내기도 했는데 비 온다 우산 챙겨, 차 막힌다 조금 일찍 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럼 나는 알겠어, 응 알겠어 정도의 답장을 보내고 속으로는 왜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문자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퇴근한 아빠를 불러 앉혀 식탁 등 아래에서 지난 한 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난 일찍 자는 척을 했습니다만 예상했다시피 온 신경은 주방을 향해 있었습니다. 웅얼웅얼 작은 소리로 몇 마디가 오갔습니다. 한참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었습니다. 역시 아빠는 그냥 무덤덤하게 베란다 창문 열리는 소리와 베란다 수도 여는 소리가 끼릭거렸습니다. 호스를 타고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와 함께 빨랫감을 비벼 빠는 소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빨래를 했습니다. 아빠 가요. 그리고 아빠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는 엉엉 울었습니다. 느닷없는 빨래에 엄마도 베란다 곁에 서서 엉엉 울었습니다. 난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우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참 뒤 베란다 수도가 잠기고 아빠가 내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침대 곁에 걸터앉았습니다. 나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등을 돌려 자고 있었는데 이빠는 이불은 걷어내지도 않고 그저 스물다섯 다 큰 자식을 우리 아가라 부르며 토닥였습니다. 어이구 우리 아가 그랬구나라고요. 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등을 돌린 채로 계속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 후로 아빠는 가끔씩 본인이 그동안 내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었는지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갓난쟁이 나를 침대 옆 바닥에 눕혀 놓고 깜빡 잠을 자다가 내 쪽 침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팔다리로 지탱해 나를 살렸다는 이야기, 전쟁 기념관 탱크 위에서 놀다가 미끄러진 나를 본 순간 냉큼 달려와 받았다는 이야기 등 한 팔에 안겨 다니거나 배 위에 올려놓고 키운 순간의 이야기들을 했습니다.마음이 꼬여있던 나는, 아빠가 세상에 불만이 많고 다양한 이유를 붙여 세상을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매듭 앞에서도, 잠꼬대로도 욕을 하는 사람이요. 하지만 아빠라고 처음부터 세상을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할머니 서랍에서 찾은 십 대의 아빠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었고, 서울대공원 튤립밭 앞에선 아빠는 그 옆의 엄마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고작 수박 만한 나를 들고 있는 아빠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욕이 입버릇이 된 것은 세상에 몇 번의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점차 세상을 미워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냥 사는 것에 치여 사랑 표현을 잊었던 것이겠죠. 여전히 나를 우리 아가라고 부르는 사람이니까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엉엉 울음을 보여주는 사람이니까요.





















이전 11화 아들은 군입대, 딸은 유방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