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병원과 의사.
한 병원에도 교수가 여러 명이기 때문에 어떤 이를 내 담당으로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 만나보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유방암 환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교수님 어떤가요 저 교수님 어떤가요를 묻는 게시글이 많습니다. <각 분야별 명의>라며 목록도 올라와 있습니다. 모두들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알아준다 하는 병원은 예약이 기본으로 한 달까지 차있습니다. 교수님이 추천해 준 병원 역시 한 달을 기다려야 했는데 나는 불완전한 마음으로 있고 싶지 않아 그 사이 한 곳을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의자며 복도며, 심지어 진료실 문 앞에도 유명세만큼이나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진료실 앞은 도떼기시장처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유명세라면 실력이 검증된 의사겠다 하는 기대감으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됐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많은 의사를 만나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를 보자마자 하품을 하는 의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의사는 내가 진료실을 들어서면서부터 하품을 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의자에 앉았습니다.
의사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습니다.
“뭐 때문에 오셨어요.”
나는 짧게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엄마는 내 설명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했는지 덧붙여 설명했는데 의사가 설명을 끊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런 거까지 일일이 말씀 안 하셔도 되고요. 이건 암도 맞고 전절제밖에 방법이 없고요. 그냥 하던 곳에서 하시지......“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계속 마우스 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거기서 하시겠어요 아니면 여기 수술 잡아드려요? 저는 예약이 많이 잡혀있어서 조금 오래 기다려야 됩니다. 여기서 하실 거면 밖에서 따로 수술 날짜 잡으세요.”
아무 말 않고 진료실을 나오는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의사는 한 번 더 하암 소리 내는 하품을 했습니다.
의사의 하품에 내가 몇 달 동안 뒤척였던 고민들을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아니면 정말 하찮은 거였는데 혼자 난리를 쳤던 걸까요? 하지만 내가 가슴을 잃은 것은 시장에서 사과를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기나 거기나 사과값은 거기서 거기예요.’ 라며 팔리는 사과가 아니란 말입니다.
수술 날짜를 잡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이름을 다시 검색했습니다. 그는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명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자상하고 따스한 분이십니다. 정말 친절하십니다. 가족 같은 느낌입니다.’ 온통 좋은 말들뿐이었는데 내 가슴은 왜 그런 취급을 당해야만 했을까요. 다른 의사에게서 넘어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생존율 98%의 암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내과가 있습니다.
이사 와서부터 쭉 20년 동안, 우리 가족은 그 내과에 다녔습니다. 감기와 복통은 물론, 자전거 타다 넘어졌을 때도 갔습니다. 김 원장님은 혼자 진료를 보십니다. 내가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진료실 안 어르신의 한탄이 들립니다. "내가 허리가 아파서... 아들이..." 그러면 김 원장님은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말로 어르신의 길어지는 한탄을 끊습니다. 그리고는 진료실 밖까지 배웅을 하며 “어머니 조심히 가세요.” 하십니다. 김 원장님은 우습게 부은 내 목에도 '아이고, 목이 많이 부었구나.' 하며 걱정의 미간주름을 보여주십니다. 하루는 엄마가 김 원장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매일 이렇게 웃고 계세요?” “환자분들이 아파서 오셨는데 저도 같이 울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내게 의사는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와의 모든 순간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의사의 시선과 한숨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의사가 의도치 않게 혼자 흘려보낸 말은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라셔’라는 반장의 말만큼이나 지난날의 과오를 되짚어 보게 만듭니다. 진료실을 나와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의사가 했던 말을 곱씹습니다. 의사는 기억을 못 할지라도요. 어순을 파악하며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수식하는지 분석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암이라는 단어가 나를 수식하기 시작하자, 나는 한 순간에 불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의사를 만나 모든 말을 쏟아 놓았던 것도 이런 불안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생존율과 상관 없이 이 상황에서 잘 벗어나게 도와주십사하는 애원이었을 겁니다. 마음은 나약한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설고 무거운 현실을 이고 간 의사에게, 내 나약한 마음도 무거운 현실도 모두 하찮은 취급을 당했을 때의 좌절. 명의란 어떤 의사를 말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