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만큼, 그림보다 솔직한 고백이 맘을 움직이다
공연을, 더 정확히는 뮤지컬/연극 등 공연에서 전달되는 메시지와 창의력과 살아있음을 좋아한다.
예술 장르 중 공연은 상대적으로 관람 전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이해와 감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미술(현대미술은 더욱?)은 사전정보 없이 관람하면 작품의 의미 그리고 그에 기반한 능동적 해석이 쉽지 않고 생각한다.
‘그림으로 화해하기’는 마치 도슨트가 옆에서 설명해주듯, 주요한 화가와 작품이 탄생한 시대상과 특성에 대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설명은 전문가가 무지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방적이고 위압적인 느낌은 아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지금의 시대 그리고 저자의 경험과 연계하여, 그림을 통해 독자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게 내가 단단해지며 나와, 타인과, 세상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 속에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그 끝에 이루어 낸 화해의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 작품을 보며 스스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화해의 기억을 하나씩 쌓아 올리다 보면 언젠가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리라 믿습니다 (10p)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더욱 친근하게 (현대미술이 그 작품의 기법만으로 평가할 수 없음을 이해하면서도, 가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이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 마치 옆에서 친구가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설명하여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기반으로, 그리고 어쩌면 다들 비슷한 삶의 감정들을 기반으로 작가와 그림을 바라본다. 그 가운데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작품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키워진다.
아른하임의 말처럼, 결국 저는 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에 제 마음의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오해나 미숙한 해석일지라도, 조금이나마 화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11p)
소개된 화가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우리가 미디어와 삶의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러하듯이, 저자 역시 부족한 부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자신의 이야기를 대담한 솔직함으로 터 놓아서( ‘갈 곳 잃은 구슬픈 눈빛과 취업 준비생이었던 과거’, ‘웃음과 눈물과 애증의 조각보를 이어 붙인 것이 우리 가족의 적나라한 현실’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약간 민망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어려움을 겪은 작가들의 (그래서 때로는 작가에 대한 존경이, 때로는 안타까움이 전달된다) 그림 등 작품을 통해 인생의 위기나 흔들리는 경험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어쩌면 수많은 인생이 경험하고 있음을 깨닫고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좀 더 단단해졌기에, 그 경험을 독자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한다.
“ 묵묵히 그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해낼 뿐이다.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 대처한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22p)
가끔은 앞의 설명 (저자의 가족과 친구 이야기 뿐만 아니라 브리튼스 갓 탤런트, 윤동주 시인, 옥주현, 코로나, 프란치스코 교황 등 다양한 인물 및 사건과 연계한다)과 작품의 해석이 스무스하게 이어지지 않는 느낌도 들었으나(^^), 그 역시 작가의 관점이니 존중하며 읽었다. 무엇보다 나 역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고, 여러 종류의 불화를 경험하였기에 작가가 건네는 대화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으나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작가와 작품이 좀 더 나에게 와 닿았다.
빛의 화가로만 알고 있었던 렘브란트가 비극적 사건을 겪은 후 얼마나 성숙하였는지 알 수 있었고,
“ 예기치 못했던 비극적인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버텨내는 인간상. 그것은 어쩌면 바로 렘브란트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말년의 그가 작품 속에서 붙들었던 빛은 역사상 어느 화가도 화폭에 담지 못했던, 아름다운 ‘영혼의 빛’이었다 ( p154)”
가까이 있으면 싸우고 멀리 있으면 그리운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내 마음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모두가 그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의 어머니는 이렇듯 한 마리의 거미처럼 꼭 필요하며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는 존재였다 ( p165) "
코로나 이후에도 공연장에는 종종 가지만, 전시장은 찾은지 오래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림을 바라보는 시야를 키웠으니, 작가와 작품이 내 삶에 건네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나와/타인과/사회와 맺은 화해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불화를 없애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대신에, 그것으로부터 잠깐 거리를 두는 것에서 답을 찾았다.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수록 타인과 함께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기쁨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혼자 있는 시간에는 최대한 나와 잘 지내려 한다. (p196 )
세상의 부조리에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것들에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하는 정반대의 모습 또한 가지고 있었던 키스 해링과 미야자키 하야오. 그들을 보면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은 마땅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어둠을 이해하고 바꾸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p3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