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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툐툐 Dec 21. 2016

연애로 성숙해지기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지난 사랑을 곱씹다

8월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최악의 하루인 줄 알았는데, 최고의 하루 중 하루가 된 날. (영화 '최악의 하루'를 봤었다.) 그 이후로 오랜만에 혼자 '라라랜드'라는 영화를 봤다. 친구가 썩 괜찮다길래 볼까 말까 망설였던 영화다. 그러다가, 오늘 허지웅 님이 쓴 이 영화의 리뷰를 읽고, 한동안 바빴던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보기로 결정!

인내심 테스트…

난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뮤지컬은 손발이 오그라든다. 과장되게 느껴진달까.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레미제라블'이나 '맘마미아'도 봤지만, 사실.. 감동을 느낀 적은 없었다. 음.. '눈의여왕'은 재미있었는데.

'라라랜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차 안에 있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와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우왁. 맙소사. 난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 맥락 없는 구성에 당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 영화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영화를 봐야만 했다. (오랜만의 영화관 나들이잖아!) 먼저, 여자 주인공에 빙의해보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남자 주인공에게 사랑에 빠지는 그녀의 맘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써봤다.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남자친구와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나? 음.. 있을 순 있다. 한 달 밖에가 아니라, 한 달 이나 만난 거겠지. '기간보다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동감하니까. 남자친구보다 남자 주인공과 대화가 더 잘 통하는 장면이 이어지긴 했다. 남자 주인공과는 신나게 떠들던 여자 주인공이 남자친구와의 모임에선 마치 인형처럼 이쁘게 앉아있기만 했다. '아, 그래, 대화 코드와 성향이 잘 맞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뭐.'

사랑하는 사이에는 상처투성이의 싸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 영화는 사랑과 꿈이라는 큰 줄기를 갖고 있다. 딱히 줄거리가 특별하진 않다.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진 두 주인공도 결국엔 싸운다. 어긋나는 건 그렇게 사소한 찰나에 일어나곤 하는 건지, 언제 어긋났는지도 모른 채 지내다가 갑자기 터지곤 하는 건지.. 만나서 즐겁고 맛있게 밥을 먹다가, 열을 내고 싸우는 장면을 보니 맘이 아팠다.

얼마 전에 읽은 '자존감수업'이라는 책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많이 싸워야 한다는 의견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로를 더 잘 알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쉽게 입히고, 그건 결국 서로에게 안 좋은 흔적으로 남는다고 한다. 난 줄곧 조금 다투더라도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굳이 감정적으로 다투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최대한 싸우지는 않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오해를 푸는 게 더 중요하다. (아.. 어렵다)  

당시에 나는 '더 잘 지내고 싶어서 얘기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거운 사건이었던가. 게다가 타이밍도 꽝이었지. 어찌 보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고 멈춰준 그 사람이 고맙다. 그후에 관계를 이어 나가봤자, 우린 많이 싸웠을 거고, 마음만 상하고 서로를 미워한 채 사이가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판 싸우지는 않고 헤어졌던 게 잘된 일 같다. 감정을 쏟아버리면 그 순간에 시원할 지는 몰라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은 분명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내겐 그에 관한 나쁜 기억과 상처는 전혀 없다. 그가 훌쩍 떠나버렸다는 것 말곤.

'즐겁고 행복하려고 연애한다',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지'라는 말을 종종 했던 그 사람이 어떤 맘이었을 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겠다.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지'라는 태도보다 '안 좋은 모습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건 깊은 믿음과 사랑이 쌓이기 전에 갖기에는 섣부른 기대일 뿐이었다. 좋은 모습만 사랑하기에도 충분하고, 좋은 모습만 많이 보여줘도 관계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우린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랬으면 나았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이제 그만할 때도 됐는데, 나란 사람은 역시 여전히 가끔 이렇게 골똘히 분석하고 앉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도 '만약에'로 점철된다

"인생은 대개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별에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되돌리지 못해 있는 힘껏 자책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헤어지는 건 ‘그냥’ 헤어지는 거다. 만약에, 를 여러 번 곱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만약에, 라는 말은 슬프다.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될 리 없으며 되돌린다고 해서 잘될 리 없는 것을 모두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만약에, 는 슬픈 것이다. 당신이 <라라랜드>에 무너져내렸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허지웅 님의 영화 리뷰 중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5976)


헤어졌어도 아름다운 관계란...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끝내 헤어지지만,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꿈을 향한 길목에 함께 해줬고, 꿈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서로를 이끌어줬다. 그런 면에서는 이 둘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한 안타까운 관계가 아니라, 건강하고 소중한 관계이다.

어디 선가에서 봤던 좋아하는 말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상대방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면 그 둘은 잘 헤어진 거라는 말. 그 사람을 만나면서 변해가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면 잘 만난거라는 말. 경험이란 자신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는 말도. 정신 상담가의 역할은 그저 같은 경험을 다르게 편집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말도.

그래.. 이 말들이 맞다고 치자. (지금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엔 모르겠다) 그럼, 헤어진 후의 내 모습이 맘에 든다면, 이것 또한 우린 잘 만났었고 잘 헤어진 게 아닐까.

울 각오를 하고 영화를 봤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훨씬 발랄하고 낭만이 가득한 영화였다. 크리스마스에 연인과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영화. 그래서 사실 나는 쓸쓸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쓴 이 감상문이 생겼으니, 쓸쓸하지만은 않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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