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줄이야 <컨택트>
눈물이 주륵 흘렀다. 내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SF 영화를 보고서 눈물이라니. 나도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의미 있게 흔들어주어서 기뻤다. ‘어른이 되면 감정이 메말라서 눈물은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보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줄어들지만, 타고난 감수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미래와 불행을 미리 안다면 그 길을 택할 것인가. 나도 여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깊은 공감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곤 눈물이 흘렀다. 수많은 고통마저도 소중하다.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모든 아픔을 기꺼이 마주하겠다. 감동과 성취감을 위해서라면, 과거의 좌절과 슬픔도 기꺼이 삼켜 주겠다. 아픔과 눈물과 우울함이 절대 소용없지 않다고, 삶은 원래 그런 거라고. 나를 토닥이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영화에는 그런 대사가 없었는데도 내게는 그렇게 전해져 왔다.
아픔과 눈물과 우울함이 절대 소용없지 않다고
영화 속 주인공 언어학자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외계물체과 소통하는지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의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이 소통해 나가는 과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 뭉클했다. 언어의 힘을 경험으로 마음으로 깊이 느껴보았고, 소통에 절실하게 목 메달아본 적이 있었으니까.
뒤죽박죽 몰려오는 감정과 생각에 파묻혀 살았던 소녀인 나에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힘은 강렬했다. 사고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삶을 나아가게 하는 의지와 행동도 언어와 사고에서 시작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의식과 감정과 생각을 잡아둘 수 있는 수단은, 말도 아닌 글밖에 없었다. 말은 흘러가 없어져 버렸고, 곱씹고 또 곱씹으며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글이 더 유용했다.
스무살이 되던 즈음부터, 어떤 경험을 통해 받은 느낌과 기분과 생각을 가장 비슷하게 표현하는 형용사, 동사 등을 찾아 헤맸다. 그래서 10대에는 의무적으로 읽던 책을, 20살이 들어서 능동적으로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했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찬찬히 흡수했다. 글이 읽히면 읽었고, 읽히지 않으면 읽지 않았다. 글이 써지면 썼고, 써지지 않으면 쓰지 않았다. 언젠가 글을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서두르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한 후인 약 9년 후,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글을 쓰면서 얻은 성취감과 희열은 여전히 생생하다.
학교 숙제로 시작했던 일기, 그 후에는 무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붓던 일기. 그리고 수년간 표현력을 상승시킨 후, 언제부턴가 내 일기는 점차 남들도 알아볼 만한 형태로 변했다. 나조차도 모르는 내 안의 어떤 것을 표현해낸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겨웠다. 하지만, 남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또 그 다음에는 깊은 공감을 얻으면 더 큰 희열을 느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도 '살기 위해 썼다.'
이미지와 말을 중심으로 가득 찬 영상이니만큼, 구체적으로 어떤 학문적인 원리로 사람과 외계인이 소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반인 수준에서 받아들인 선에서 묘사하자면, 주인공이 청각인 말이 아니라, 시각을 활용한 문자, 그다음에는 촉각, 그리고 마음으로, 영혼으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우와~’라는 탄성이 나왔다. 시간과 기억을 순차적이 아닌, 몇 차원 이상으로 바라보는 가설도 인간의 판타지를 충족해주었다.
다른 듯 같은 두 인간의 사랑이란
인간과 외계물체 간의 교류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느끼고 소통하며, 마음이 끌리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점도 좋았다. 이는 내가 눈물을 흘린 두 번째 이유이다.
과학자와 언어학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두 사람.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매우 매력적이다. 혹은 상대방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벽을 두기도 한다. 그 와중에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세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끽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랑이기도 하다. 공통점이 너무나도 많거나, 정말 다른데 묘하게 비슷한 연결점이 있는, 그런 두 사람.
미래를 알 리가 없는 남자 주인공은 과학으로만 세상을 보다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그녀에게서 신선한 충격,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나와 마찬가지로 통기타 선율에서 감동받고, 나와는 다르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그에게 끌렸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복잡한 감정과 사고 회로로 세상을 겪어 내지만, 단순하지만 따뜻한 배려심으로 삶을 살아내는 그에게 많은 사랑과 위안을 받았던 것처럼.
그들을 통해 겪은 행복과 아픔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고, 앞으로는 희미해질지는 몰라도 말끔히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과거 경험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도 다른 의미에서 깊어지면 깊어졌지, 없던 일이 되진 않겠지.
그러면, 그 상실감과 좌절이 없는 대신에, 행복과 설렘을 포기하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프고 힘들더라도 기꺼이 겪어내리라고 대답하겠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도 내가 주인인 내 삶을 살아내리라고 다시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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