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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Oct 26. 2022

캐나다산 자신감과 한국산 겸손함 사이에서 '나'를 찾다

불확실함과 도전 속에서 찾은 자존에 대한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는 핑계


4년 전 가을, 나는 서울에 있었고, 친구와 동네 바 투어를 계획했다. 네이버로 뒤지고 뒤져 찾아낸, 간판도 없는 지하 1층의 어느 바로 들어갔다. 외관에 비해 내부는 훨씬 근사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칵테일이나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메뉴판을 내미는 바텐더의 친절에 이어, 나는 그가 불편해할 요청을 하나 건넸다.


"오이가 들어간 칵테일을 만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오이의 상쾌함을 좋아한다. 메뉴 안에서 오이가 들어간 칵테일을 찾다가 실패하자 나는 바텐더에게 메뉴에 없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잠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다시 나타났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읊조렸다.


"해본 적이 없어서요..."


나는 괜찮다고, 어떻게 만들든 맛있을 테니 걱정 말고 만들어달라고 끝까지 부탁했다. 그는 결국 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가 건넨 오이 칵테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슷했지만 아주 다른 밴쿠버에서의 또 다른 밤이 떠올랐다.







해보면 된다는 명분


밴쿠버 차이나타운과 레일타운 사이 즈음에 식당 겸 바가 있었다. 퓨전 중국 음식을 파는 그곳에 라스트 오더가 끝난 늦은 시간 도착했다.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젊은이들이 바에 가득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칵테일을 만들어내는 작고 분주한 바에 나는 부탁을 했다. 


"오이로 칵테일 한 잔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Could you make me a cocktail with cucumber?"


오이가 들어간 칵테일 한 잔이라는 요청에 바텐더는 0.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요 

Sure.”


이미 오이라는 주 재료를 언급했고, 이외의 다른 세부사항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바텐더는 자신만의 느낌과 방식대로 칵테일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의 당당함에 압도되어 칵테일을 만드는 그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과 밴쿠버, 두 곳에서 맛본 칵테일은 어느 곳이 더 나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둘 다 훌륭했다. 하지만, 밴쿠버의 당당함이 내게 각인되어 아직까지 기억하는 만큼, 서울의 쑥스러움이 오랜 시간 잊히지 않았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학기마다 매주 수요일 오전 특강을 하러 오시는 강사분들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는 교수가 아닌, 오랜 시간 학교 밖 현장에서 경력을 쌓아온 전문인들이었다.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특강 강사들은 꼭 이렇게 강의를 시작하셨다.


“저는 여기에 설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 그들은 자신이 특강 자리에 설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수백 명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자기 분야를 설명할 줄 아는, 본인이 이제껏 무엇을 해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더 해나갈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었다. 


교편을 잡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수년이든 오늘 하루이든, 당연하게 갖추어야 할 겸허한 자세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내가 겪었던 어느 바텐더의 이도 저도 아닌 미소가 함께 떠오르는 건 왜일까. 


여기에 설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 대신,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꾸밈없고 진실되게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 건 왜일까.







어중간한 태세의 문제점


나는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교육받았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것을 고향에서 배웠다. 그렇지만 또, 강한 긍정이 강한 부정일 수 있다는 것도 그곳이 가르쳐줬다. 그 결과로 나는 어디서든지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는 걸 선택했다. 아무래도 그게 강한 긍정이나 강한 부정보다 안전해 보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잘 쓰시네요, " 하면 미지근하게 부정했다. 

"아니, 그냥 취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라고. 


누군가가 "영어를 잘 가르치시네요, " 하면 미지근하게 긍정했다. 

"2002년부터 캐나다에서 살았는데 이 정도는 해야겠죠, " 라면서.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 어딘가에 머물면, 아무도 나를 흉보지 않고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창한 봄날의 실내 온도쯤 되는 뜨뜻함을 유지하면 튀지는 않아도 아주 지질하지는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정도 --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적당한 수준 -- 로, 나만의 강점과 경력과 색깔을 방치한 채 살아갔다. 이상했다. 나랑 취향이 비슷한 친구도 많아지고, 나랑 결이 맞는 동지도 생기고, 바쁘지만 분주하지 않고, 도전은 있지만 두려움은 없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점점 더 말과 맘이 잘 통하는 사람 찾기가 어렵고,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며, 어쩐지 겸손만 하기에도 억울하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스탠스(stance, 태세)가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결정 장애의 진짜 이유


요즘 내게 딱 맞는 취미를 찾는 여정 중이다. 올 초, 남편 친구 찬스로 콤부차 만들기에 빠졌다. '나한테 잘 맞는 취미가 있구나!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재밌기도 한데 보람차기까지 한 취미를 나도 가질 수 있구나!' 깨달았다. 스코비를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2주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1차 발효가 전혀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3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 2차 발효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림이 못 견디게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인내한 시간보다 훨씬 더 멋진 콤부차를 선사해주는 마법처럼 느껴질 뿐이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는 콤부차를 필두로 미니 가드닝도 시도했다. 홈디포 Home Depot, 캐네디언 타이어 Canadian Tire, 아이키아 IKEA, 홈센스 Home Sense, 가든 워크스 Gardenworks, 월마트 Walmart, 한남 슈퍼마켓 Hannam Supermarket을 다 뒤졌다. 어떤 플랜터에 어떤 허브나 채소를 키워볼지 끝까지 고민했다. 초보인 내가 쉽게 잘 키워볼 수 있는 식물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첫 식물 세 쌍을 모셨다. 로즈메리, 바질 그리고 고수. 나의 첫 가드닝의 건강한 열매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새로운 취미를 찾으면서 내 안에 있는 날 향한 깊은 의심을 발견했다. 스코비를 키우고, 발효할 때 필요한 유리 항아리를 구하면서도 이 사이즈가 나을지, 저 사이즈가 나을지 한참을 망설였다. 사람들이 바삐 쇼핑을 하는 가게 한가운데를 서성이고 또 서성이면서 말이다. 고르는 제품마다 잘못 고르는 것일까 봐 몇 번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샀다가 잘못 산 걸 알게 되면 다시 가게로 와서 환불을 하는 과정도 싫었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것은 내가 하는 선택을, 내가 하려는 도전을 나 자신이 믿어주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상추를 사볼까, 민트를 사볼까, 아루굴라를 사볼까... 이 플랜터가 좋으려나, 저 플랜터가 더 나으려나... 7군데의 가게를 돌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이리 결정을 하지 못하는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자신이 없었다. 시작한다고 이것저것 다 샀다가 돈만 낭비하는 거 아닌가, 조금 하다가 흥미를 잃고 안 한다고 마음이 변해버리면 남편에게는 뭐라 말하나,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맨날 마음이 변하는 사람으로 비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 뒤에는 나의 자존과 가치를 내면에서부터 공격하고 있는 의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확실함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나


'무엇이 나를 주눅 들게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마음은 바뀔 수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나 변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내거나 물질적, 심리적, 감정적 손해를 입힌다면 매우 안타깝지만, 우린 매일을 그렇게 살아간다. 사랑하던 마음이 떠나기도 하고, 이번엔 확실하다고 선택했던 전공에서 편입을 하기도 하면서.


절대 앞서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미리 겁내며 아무런 시도도 해보지 못하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이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내일을 이겨내기 위해 인생의 불확실함 -- 시간과 공간 그 안에 늘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변화와 예상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 -- 을 인정하기로 한다. 







잠시 쉬었다 다시 도전해도 충분한 나


'왜 이리도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가?'


새로운 도전은 모두가 함께 있기를 꺼려하는 어르신, 혹은 어려운 수학 문제 같다. 어떤 잔소리를 듣게 될지 모르고, 어떤 답이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도전이라고 한다. 돋울 도, 싸움 전. 싸움이 돋는 행위, 혹은 싸움을 거는 행위다. 어느 정도 비슷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일상에, 나 자신도 왜 인지 알 길이 없는 나 자신에게 거는 싸움. 그것이 도전이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에 언젠가 수업 시간에 어려운 시험 문제가 나올 거라는 걸 모르는 학생은 없는 것처럼, 어려운 걸 알지만 해나가는 게 결정이고 도전이다.


대신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 때는 시간이나 공간, 즉 Capacity (감내할 수 있는 능력과 양)가 더 필요하다는 증거니 잠시 뒤로 물러서도 된다. 어느 정도 다시 준비가 되었다 싶을 때 다시 싸움을 걸어도 되니까. 언제든 나만 준비되어 있다면 시작할 수 있는 게 도전이다.






한국, 그리고 캐나다. 나는 이 두 나라 사이에 낀 채로 자신감과 겸손함에 대해 생각한다. 두 나라를 오가는 와중에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적도 있고, 겸손함으로 무장했던 때도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감과 겸손함 사이가 제일 편했다. 거기에 머물고 싶었고, 실제로 그곳에 오래 머물렀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자신감도 잃었고, 겸손함도 놓아주었다. 나 자신도 함께 사라져 갔다. 


이제는 나의 자존감을 찾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홈메이드 콤부차를 통해서, 만질 때마다 자연의 향을 내뿜는 허브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다. 한 번도 안 해봤다는 핑계는 들이밀지 않기로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고, 남들이 뭐라 생각할까 겁나서 머뭇거리는 건 3초 이내로 끝내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나의 30대를 뒤돌아 보게 될 어느 날,  의심을 이겨내고 기어코 도전을 했던 사람으로 나를 추억하고 싶다. 그래서, 한 번도 안 해본 일일지라도 지금 당장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만이라고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콤부차를 홀짝이며 장 건강을 챙겼던 나. 직접 키운 허브로 파스타를 만들어 주던 언니. 못하겠다, 안될 것 같아, 그냥 안 하는 게 낫겠어, 라는 말보다 할 수 있어, 잘될 거야, 그래도 한번 더 해보자, 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던 아내. 기록을 통해 자신을 뒤돌아 보며 날이 갈수록 점점 성숙해져 갔던 딸. 넘치는 자신이나 극한 겸손 대신,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 그렇게 기억되기를. 그렇게 오늘을 살아가기를 다독여본다.





Sources:

Title image by Yoona Kim

Images by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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