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재해석하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하는 4편의 다큐멘터리
한 학년당 10명 남짓한 학생들, 전교생이 8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통학해야 하는 시내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을 때, 도시 친구들이 시골 친구들과 다르게 느껴졌었다. 같은 이름의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주소지가 읍이냐 리이냐, 에 따라서 생각이나 행동, 말투마저 달랐다고나 할까.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더 큰 도시, 광주로 다시 한번 전학을 했을 때에는 멘탈 (곧) 붕괴에 이르렀다. 모두와 친근하게 지냈지만 늘 나 자신이 이방인이라 생각해왔다. 시골 촌뜨기. 그게 나였으니까.
밴쿠버에 도착하고 보니 나는 영어라곤 한마디 못하고 부끄러움에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최강 시골 촌뜨기였다. 어디에나 있는 못돼 먹은 아이들이 뒤에서 나를 밀치면 나는 순도 100% 한국 욕으로 대꾸해줬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맞는 친구 몇을 사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문장을 하나 둘 쓰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늘 나는 이방인이었다.
대학을 뉴욕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유명한 맨해튼이 집이 되려나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마치고 일을 하면서도 내가 원하던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휴학도 하고, 휴가도 받아서 한국과 캐나다를 오갔지만 어느 곳도 집이라고 불러지지 않았다.
난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을 때에도, 잠시 외갓집에서 지낼 때에도,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으로 여행을 떠날 때에도, 잠시 정거장에 머물다 가는 기분이었다.
한 장소에 속하지 못한 내 상태에 내가 혼자 실망하고 우울해했던 건 내가 생각하는 삶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이 지구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집이 있어야지, 소속이 있어야지, 든든한 뿌리가 있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거다. 세 곳 다 정거장이면 어떤가. 집이 아니고 소속이 아니고 뿌리가 아니면 어떤가. 내 발이 닿는 곳이 다 나의 공간이고, 추억이고, 놀이터이면 어떤가.
생각이 바뀐 데에는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공이 크다. 아무리 밴쿠버가 다문화 커뮤니티라고 해도, 내가 활동하는 범위의 제한성은 무시할 수 없다. 주로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주로 가는 곳만 가기 때문에, 도시가 다문화라고 해도 내 일상은 다문화적이라 말할 수 없었다. 여행이 의미는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견문’을 통해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게 경험에 있다. 이처럼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는,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견문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다양성에 마음을 열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더라
캐나다의 공영 방송국 CBC는 멋진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많이 제작한다. 다큐멘터리 트루 노쓰 콜링 True North Calling은 캐나다 유콘 Yukon 주와 누나부트 Nunavut 북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캐내디언들의 삶을 다룬다. 젊은 캐내디언들이 자비란 없는 지형의 특성과 예측 불가능한 기상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가는지, 전통과 새로운 방식의 발란스를 어떻게 맞추어가는지 보여준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몽골 사람들의 전통 주거방식인 유르트에서 어린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케이트 Kate와 바트 Bart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부부는 농장에서 아티초크와 토마토, 다양한 야채들을 키우고 판매한다. 그들은 공공설비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주의 삶을 지향한다.
세상 어느 나라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비슷한 갈등이 존재한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선택한 딸 케이트를 그녀의 엄마 캐씨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행히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 모녀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디서나 쉽게 인터넷에 연결되고, 버스와 지하철로 도시 대부분을 찾아갈 수 있으며, 필요한 것은 바로 주문, 결제 및 구매가 가능한 편리함 속에서 주어진 삶의 요소들을 너무 당연시한 것은 아니었던가. 불편해야 가치가 있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양성에 마음을 열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없는 삶의 여유가 생긴다. 선택지가 주어지고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 감사의 기회도 온다. 이해와 공감과 수락이 만들어내는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편견은 하나의 기준일 뿐, 절대적인 진실은 아니다
유명 코미디언 크리스 락 Chris Rock의 딸이 던진 질문 하나가 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이었다.
“아빠, 어째서 난 굿 헤어를 가지지 않은 거죠?” 3살밖에 되지 않은 딸의 머릿속엔 벌써 미국 흑인 문화가 외치는 ‘곱슬머리는 별로’라는 생각이 심어진 것이었다.
90억 달러의 흑인 헤어 산업을 파헤치는 이 영화는 미용실, 이발소, 헤어제품 컨퍼런스를 지나며 사회가 만든 좋은 머리카락에 대한 소리 없는 편견을 다룬다. 태생적인 조건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미지로 굳혀져 있는 반듯하고 윤기 흐르는 생머리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여성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사회의 억압을 머리통 위에 올려놓고 산다"라고 말하는 미국 인권 운동가 알 샬프튼 Al Sharpton의 말이 인상 깊다.
처음엔 보이고 만져지는 머리칼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굿 헤어는 머리카락 아래 숨겨져 있는 그 깊고 깊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떤 가치와 기준이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내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거린 과거를 떠올려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의심 한번 없이 받아들인 나의 순진함이 보인다. 배드 헤어라서 배드 헤어가 아니라, 배드 헤어라고 믿기 때문에 배드 헤어인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때문에 편견과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되어 장렬하게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진 않았다. 대신, 집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에게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나의 불편함이 어느새 나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를 전체적으로 둘러보면 미래가 보이더라
난민 문제가 중요 이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 같았던 난민들의 이주가 한국의 뉴스에서 다루어지고, 누구는 정착하고 누구는 떠난다 등의 소식이 신문의 한편을 차지했다. 나는 2년 전, 더 화이트 헬멧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시리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복잡한 이유로 다양한 조직이 대립을 일으켜온 시리아 전쟁은 5십만 명의 시리안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안전을 위해 시리아를 떠났지만 몇몇은 고향에 남아 혹시나 폭탄 속에 남아있을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봉사단을 꾸렸다. 시민들로 구성된 화이트 헬멧들은 10만 명의 사람들을 구했고, 이들의 이야기가 더 화이트 헬멧이라는 다큐멘터리로 탄생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의 가문과 가정, 성장과정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 특별한 사건들, 취미와 특기, 장점과 단점, 생김새와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간은 지, 정, 의를 가진 복잡한 생명체라서 특정 인물을 100% 완전히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정보가 많을수록 폭넓은 이해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난민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한 분야에 소속된 사람은 그 분야의 전체 의견을 수렴하고, 개인이 가진 의견을 합하여 문제를 해석할 것이다. 옳다, 그르다,라고 단정 짓기 전에, 난민 문제의 시작과 그 배경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많은 정보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 것처럼 나 자신의 살아온 모든 디테일을 자세히 살펴본다고 한 들 내가 문제 삼았던 ‘나의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라는 사람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전체를 보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소속’이 없다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미래의 나는 머무는 ‘집’보다 앞으로 가게 될 새로운 ‘지역’들로 정의 내려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나의 취향과 나의 선택이 나 자신이 아닐 때도 많더라
영국의 BBC에서 만든 힙스터 핸드북은 힙스터 컬처가 어떻게 모던 라이프를 뒤흔들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이다. 힙스터리즘이 소비지상주의와 패션 스타일에 미친 영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950년대의 오버롤이나 가죽 바머 Bomber 재킷 같은 아이템들은 일부러 60년 전에 입던 것 그대로 만들어져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힙스터리즘을 대표하는 턱수염과 맨 번(남자가 한 똥머리)은 사실 알고 보니 전문가에 의해 스타일 되고 관리를 받는다. 커피나 음식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을 선호하고, 아티스트가 만든 제품을 소비하는 데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커뮤니티’에 ‘소속’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힙스터리즘이 소비를 일으키는 패턴이 생기다 보니 대중 지향의 매스 마켓 브랜드들이 힙스터리즘에 합세했다. 힙스터 리즘의 디테일-무심하게 드러난 벽돌 인테리어, 올드스쿨 한 조명들, 제품보다 더 비싼 포장 디자인과 같은 것들- 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의 호스트 York는 힙스터란 창조하는 자들이 아닌 ‘curate’하는 자들이라고 결론 맺는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특정 제품을 구매하고, 특정 음식을 섭취하고, 특정 맥주를 마신다. 힙스터들의 움직임에 죽었던 상권이 살아나기도 하고, 관심 밖이었던 아이템이 재조명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드는 곳에 화자 될만한 역사나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이게 좋대, 이게 맛있대, 이게 예쁘대,라고 하는 사람들의 속삭임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유행과 비슷하다. 이 사람이 입은 빈티지 리바이스는 알고 보니 빈티지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하고 공격당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나의 취향과 나의 선택이 나 자신은 아닌 것처럼, 타인의 취향과 선택도 그 사람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고작 삼십년이라는 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한적도 있고, 환경 때문에 선택을 강요받았던 적도 있었다. 이 곳 저곳을 옮겨 다닌 나의 지난 움직임들은 나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나라는 사람의 절대적 정의는 아니다. ‘소속’보다는 나 자신의 내면과 나의 인생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들을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 이를 깨닫고 나니 힙스터 핸드북이라는 작품이 되려 유나킴 핸드북을 건네준 것만 같은 안도감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살아보지 않은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보면서 인생의 레슨을 얻는 위인전처럼, 가보지 못한 곳을 화면을 통해 갈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세계. 마음이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받아들임’의 경험을 앞서 소개한 네 편의 작품들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다양성에 마음을 열 줄 아는 유연성,
편견은 진실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믿음,
과거를 전체적으로 볼 줄 아는 시선,
그리고 취향과 선택을 나라는 존재와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선물해준 작품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누군가의 정답은 그 사람만의 정답이고,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절대적인 삶이다.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서 자신을 비판하고 답답해하지 말고, 당신만의 여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소중함과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경험의 유일성을 마음에 담는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Cover image by Jeremy Galliani
Caption images by CBC, Jezebel, OS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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