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가 함께하길

서울살이 생존일지

by intojeong

모든 일에 열정이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다.

25살의 인턴이던 시절, 열심히 일해서 정직원이 되리라 다짐했다. 인턴 급여로 월세, 교통비, 휴대폰 요금을 내고 나면 점심 사 먹을 돈도 간당간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월말이 다가오면 수중에는 정말 한 푼도 없었고, 길을 걷다가 동전으로 착각해서 병뚜껑을 줍기도 했다.


- 아침에 늦어서 탔던 택시 3,700원

- 전자파를 차단하는 선인장 5,000원

- 결혼식에서 냈던 축의금 30,000원...


지난 한 달 동안의 사치스러웠던 나의 행적들을 파헤치며 참회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휴대폰 통화는 왜 이리 많았는지, 문자로 대체할 수 없었는지 통화 목록도 체크했다. 가계부를 쓰기도 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달라지는 것 없이 죄책감만 추가될 뿐이었다.


인턴 4개월 차가 되었을 때 동기였던 인턴 분이 퇴사했다. 그는 퇴사하기 며칠 전 자신의 교통카드에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내게 고백했었기에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사실 퇴사 시그널은 더 일찍이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말없이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었는지 물었더니 근처 공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공원에는 왜 갔었냐고 물으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와우산 공원에 있는 수돗가에 다녀왔어요."


더 물어보면 슬퍼질 거 같아서 웃고 넘겼다. 그랬던 그가 떠난 것이다.


홍대에 위치한 와우산은 사무실과 가까웠다. 와우산으로 올라가는 길 양쪽에는 수제 햄버거집과 예쁜 카페들이 있었다. 브런치에 맥주를 곁들이고 싶게 만드는 그 길목. 이름처럼 신나는 초입을 가진 와우산...


나는 인턴 때 그룹웨어를 도입하는 일을 맡아했다. 신생 조직이라 결재 체계와 업무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상황이었다. 이게 갓 들어온 인턴이 해도 되는 일인지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지만, 그룹웨어의 메뉴들을 설정하고 문서 양식들을 만들면서 나름 재밌다 느껴며 최선을 다했다.


어느 정도 그룹웨어 세팅이 되고 나서,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사용자 교육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매뉴얼북을 만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기약없는 인턴 생활은 정리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여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닌거 같으니 이번 일만 끝내고 나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육날이 되었다. 사무실 중앙에 있는 벽걸이 TV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그룹웨어 로그인 화면을 띄웠다. 순서대로 하나하나 클릭하며 사용법을 설명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갑자기 말했다.


"표준어로 말해줄래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평소 내 말을 잘 알아듣던 분의 말이었다. 갑자기 나의 사투리가 제주도 방언 수준으로 변했을 리는 없을 거고, 그분의 청각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안타깝지만 못 들은 척 넘기고, 교육을 끝까지 마무리했다.

교육이 끝나니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여기서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목표 말이다. 예상치 못한 표준어 공격은 나에게 열정(+오기)을 뿜뿜 샘솟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개편 얘기가 솔솔 나왔고, 나는 희망하던 부서에 정직원이 되었다.


이 넓디넓은 은하계에서 지구인으로 태어나 직장인으로 살아가려면 포스가 필요하다. 무례, 막말, 병맛 토크를 들은 뒤에 귀를 씻어 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선택받은 제다이 기사가 아니더라도, 광선검이 없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들도 우주의 기운과 질서를 이해하는 포스를 키워야 하는 시대다.



균형, 인내, 힘의

포스가 함께하길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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