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병이죠?

최강 끝장 서울살이 생존일지

by intojeong

서울로 상경한 지 반년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비염인가?'


감기에 걸렸을 때 시달렸던 코막힘과 콧물을 매일 달고 살게 되었다. 코를 뚫기 위해 소금물 코세척과 가글을 해보기도 하고, 3초 만에 코를 뻥 뚫어준다는 스프레이를 마구 분사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밤이 되면 코 막힌 쪽을 위로 향하게 비스듬히 누워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세어야 했고, 입으로 숨 쉬는 습관이 생겨 아침마다 축축한 베개가 나를 깨웠다.


"앗 차거, 이게 뭐야!"

내 침이지만 매번 놀랍고 적응이 안됐다. 그렇게 시간이 가도 차도가 없자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


지인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한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을 소개받았다. 신림동에 위치한 그 병원은 친구가 불치병이라고 체념했던 만성 비염을 단시간에 완치시켰다고 했다.


들뜬 마음으로 예약 전화를 걸었다. 병원은 오전 9시부터 오픈이지만,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고 안내했다. 신기해서 매일 이렇게 브레이크 타임이 긴 것인지 물었더니, 병원 원장님은 꼭 낮잠을 주무셔야 오후 진료를 보실 수 있다고 했다.


한참을 앞서간 신개념 워라밸이었다. 병원을 취미로 운영하는 듯한 그 멋진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다음날 아침 병원을 찾아갔다.


안내데스크에서 접수를 마치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가까이 앉으라 말씀하셨는데 나는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다.


의사 선생님은 돋보기를 코에 걸쳐 쓰고 등이 조금 굽은 채로 천천히 내쪽을 쳐다보셨다. 얼핏 봐도 80세는 족히 넘어 보였다. 왜 그렇게 긴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한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흡사 내 믿음에 대한 시험 같았다. 믿음을 가지고 진료에 응할 때 믿음의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했고, 아니면 아예 내 코를 못 쓰게 할 거 같았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 옆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집게를 들어 나의 소중한 코를 한껏 벌렸으나 코 안이 잘 안 보이는지 집게에 더 힘을 주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침착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의사 선생님이 집게를 내려놓자 옆에 서있던 간호사가 길이 20cm 정도의 디퓨저 스틱같이 생긴 이름 모를 것을 의사 선생님 손에 건넸다. 의사 선생님은 돋보기를 고쳐 쓰고 그 긴 무언가로 내 코를 노크했다. 불길했다.


뉴스에 내가 나오는 일이 없길 기도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그 긴 스틱이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이제 스틱이 충분히 들어갔다고 느낄 때쯤 멈추길 바라는 내 마음과 달리 그 스틱은 계속 나아갔다.

'이러다 뇌가 뚫리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의사 선생님은 그 이름 모를 스틱을 계속 집어넣으셨고, 나는 움직이면 다칠까봐 숨도 못 쉬고 그 스틱이 콧구멍을 통과해서 알 수 없는 어딘가에 도착하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콧속은 생각보다 상당히 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몇 번 더 같은 치료를 받았다. 갈 때마다 무사하게 병원을 걸어 나오길 기도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염은 드라마틱하게 사라졌다.

It's gone.


코 상태가 좋아지고 나서 병원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는 덕분에 비염이 나았다며 명의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 얘길 듣더니 자기는 엄마 따라서 오래전에 갔던 병원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의사 선생님 연세가 너무 많으실 거 같다며 괜찮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기였으면 그냥 돌아왔을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비염을 떠나보낸 것도 잠시.. 나에게 새로운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이, 이건 무슨 병이죠??

New arr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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