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끝장 서울살이 생존일지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위해 주말마다 구로구, 관악구 일대를 돌아다녔다. 보증금 300만 원으로 들어갈 만한 원룸을 찾는 이번 미션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직방, 다방 이런 앱들이 있기 전이니 발품을 팔아 부동산에 나와 있는 집들을 샅샅이 훑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보증금 300만 원에 갑자기 동그라미 하나가 더 생겨 3000만 원이 된 것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은행의 전산 착오인가 통장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아도 3000만 원이 분명했다. 알 수 없는 횡재에 기뻐하며 어리둥절해하는데 알람 소리가 울렸다.
'요즘 계속 집 생각만 하다 보니 이젠 꿈도 이런 걸 꾸는구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자리에 않았다. 잠시지만 너무나 달콤했던 꿈속에서 깨어나 서울로 진입하기 위한 긴급 작전회의를 열었다. 나는 나에게 서울 지도를 가져오라 명했다. 나는 몇 주째 진척 없는 행군에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물자도 바닥나 이대로 간다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 아뢰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경기도 회군을 제안했다. 그 말에 화가 난 나는 지휘관인 내가 어찌 그리 나약한 소리를 하냐며 꾸짖었다. 그러고는 지도를 펼쳐 서울 외곽을 따라 높게 세워진 장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격할 방안을 가져오라."
자아분열적 1인 2역을 마치며 생각했다. 21세기형 장벽은 부동산 가격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이건 뭐 어찌나 높고 견고한지 무너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진격할 방법은 총알을 두둑이 챙겨서 한 곳을 집중 사격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멍이 생길 것이고 내 몸 하나는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지금 내가 가진 총알 300개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경기도가 최선인가? 나는 홍대로 출퇴근 하고 있었는데 사무실에는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있었다. 수원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었고, 인천에서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해봤다. 남다른 체력과 의지로 매일 서울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정말 리스펙 한다! 똑같이 술을 마시고 새벽에 헤어져도 나보다 먼저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사를 더 미룰 수 없으니 하나마나한 잡념을 떨치고 다시 집을 찾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신림역으로 향했다. 열심히 일해서 보증금 1000만 원만 모으면 회사 근처로 이사할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몇 달이 걸릴지 계산해보았다. 지금은 잠시 머무를 임시 거처를 찾는 것이라고 마인드 컨트롤 했다.
신림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더 들어가서 부동산 몇 곳을 노크했다. 그렇게 찾아간 한 곳에서 나는 기이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소개로 어떤 집주인을 만나 단독주택의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집주인은 현관문을 열어 내부를 보여주며 말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집 중에서 우리 집이 가장 넓을 거예요."
나는 아직도 그 아주머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그랬다. 내가 여태 본 집 중에 가장 넓은 방이었다. 가장 넓었던 그 집의 지붕에는 맨홀 뚜껑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스카이뷰를 자랑하던 그 집에서 나는 생전 처음 머리 뚜껑이 열린다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아줌마! 지붕이 없잖아요!!!"
나는 잔뜩 화난 얼굴로 집주인에게 항의했으나 집주인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아가씨, 지붕만 있으면 완벽한 집이에요. 이 가격에 이런 집 없어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황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쏟아질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후 나는 천신만고 끝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했고 무사히(?) 이사도 마쳤지만, 그 지붕 없는 집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