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끝장 서울살이 생존일지
시골쥐와 서울쥐는 고향 친구다.
도시 생활에 지친 서울쥐는 시골쥐가 보고 싶었다. 떠나온 고향이 이렇게 빨리 그리워질 줄은 생각도 못했던 서울쥐다.
"잘 지내?"
"말투가 그게 뭐꼬. 이제 니 서울쥐 다됐네."
"무슨. 서울에서는 내가 한마디만 해도 경상도 쥐인지 다 알아."
"아 맞나! 내가 듣기엔 간질간질한 서울말 맞는데 그라노. 희한네. 근데 무슨 일이고? 뭔 일 있나?"
"일이 있는 건 아니구. 그냥 생각나서."
"그라믄 한번 놀러온나. 여긴 뭐 다 그대로다. 얼굴이나 보제이."
고향으로 가는 길은 서울쥐가 떠나올 때 모습 그대로였다. 비탈지고 구불구불해서 직선일 때보다 몇 곱절의 시간을 잡아먹는 길이었다.
고향 어귀부터는 소똥 냄새가 폴폴 났다. 서울쥐는 미간을 찡그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새로 산 신발이 진흙탕에 빠지지 않도록 움푹 들어간 곳을 피해서 조심조심 걸었다.
시골쥐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서울쥐는 옷매무새를 만지다 하얀 운동화 여기저기에 튄 흙탕물을 발견하고는 짜증이 났다. 몇 년만의 고향 방문인데 여기까지 와서 고작 신발 때문에 기분을 망치기 싫었다. 심호흡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안에 있니?"
"왔나! 이야 서울쥐 멋져졌데이. 언능 들어온나. 온다 그래서 밥 해놨다. 배고프제?"
"길이 그대로더라. 오래 걸리긴 했어."
"맞제. 온다고 진짜 고생했다. 그래도 와보이 좋제. 이리 와서 앉아라."
서울쥐는 시골쥐가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 집안을 둘러봤다. 벽에는 뜯긴 벽지가 보였고, 주방 가스레인지 옆에는 마트에서 나눠주는 할인 전단지가 붙어져 있었다.
"근데 저 마트 전단지는 왜 붙여놓은 거야?"
"아 저거는 요리할 때 기름 튄다 아이가. 그래서 붙여놨지."
"요즘 서울은 저런 레트로 감성이 유행이라 너도 그런 줄 알았다야."
"크크크 레트로 그런 거 나는 모른다. 밥 묵자. 네 올 때 맞춰서 찌개 끓여놨다."
찌개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덩달아 서울쥐의 기분도 올라왔다. 잠시 뒤 김이 사라지자 서울쥐의 미소도 사라졌다. 찌개 안에는 해묵은 배추 두 장과 감자 한 알, 그리고 두부 반 모가 있었다.
"너 혹시 크림치즈 마카롱 먹어 봤니?"
"말만 들었지 못 봤다. 엄청 달다카던데 맞나?"
"달콤하지.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해. 서울 한 번 올래? 말 나온 김에 같이 올라가서 며칠 놀자."
"아이고 됐다 마. 요새 농번기라 한참 바쁠 때다."
"뭐 하루 이틀이면 되는 건데 가자. 서울 가면 실컷 맛보게 해 줄게."
"아이다 개안타. 한가해지면 그때 가께."
식사를 마치니 창밖은 어둑어둑했고, 주변은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서울쥐는 이런 무소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가능한 것만 기대하던 서울쥐였다. 무소음은 서울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떨어뜨렸다. 고요할 뿐인데 왜 눈물이 흘렀을까..
그 사이 시골쥐는 담금주와 잔 두 개를 테이블로 가져와 말없이 따르고 있었다. 붉은 빛깔의 맑은 액체가 두 잔에 가득 채워졌다. 서울쥐는 재빨리 눈가를 소매로 훔쳤다.
"이거 석류 맞지?"
"맞다. 이번에 딴 거다. 마셔봐라."
"색깔 이쁘다. 음 진짜 새콤달콤 해."
"이렇게 술 한잔 하는 게 얼마만이고?"
"그러게. 이룬 거 없이 시간만 훌쩍 가버렸어."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다 아이가. 그럼 됐지."
장거리 이동으로 피곤했던 서울쥐는 석류주 한 잔에 취기가 올랐다. 자신의 서울살이와 친구의 시골살이를 비교하며 자신을 비관하기도 하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박장대소하며 바닥을 구르기도 했고, 눈망울이 촉촉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술과 음식을 해치우고나서 두 쥐는 이불을 펴고 나란히 누웠다.
"사실 난 도시 부적응자야. 내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살 수 있을지 오늘 확인하고 싶은 맘도 있었어."
"어디서 살지는 나중 문제 아니겠나. 일단은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지.."
새벽부터 농사일을 나갔던 시골쥐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생각이 많아진 서울쥐는 잠이 오질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고, 습관처럼 티브이를 켰다.
<어라.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서울쥐는 리모컨을 황급히 돌렸다. 오늘은 서울쥐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 드라마가 하는 요일이었던 것이다. 지난 회차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콩 쾅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뭐지! 오늘 결방인가?>
아니었다. 지역 방송이 전파를 타고 나올 뿐이었다.
<아이 C. 내일 빨리 서울 가서 찾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