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술주정이야

최강 끝장 서울살이 생존일지

by intojeong

사람 몰골이 아니었지만 집을 나서야 했다. 극심한 숙취로 몸져누워있는 손님을 빈속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해장 메뉴는 콩나물 국밥이었다. 날계란에 김을 부셔 넣고 호로록 단숨에 들이켰다. 뚝배기를 가득 채운 콩나물과 대파 밑으로 숨은 밥알들을 풀어헤치고 골고루 섞었다. 크게 한술 떠서 깍두기와 함께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몸속에 퍼지며 어젯밤 뇌정지 상태로 잠들기까지의 행태들이 슬금슬금 떠올랐다.


우린 여전히 취해 있었으므로 어젯밤에 끝난 줄 알았던 대화를 다시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난 말이야, 인생 지론이 있어."

"뭔데?"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거 없다라든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잖아."

"어제 말했던 거 같은데.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나네."

"필연적인 것들 말이야."

"맞아. 필연성이 어쩌고 하면서 효블이 한참 떠들었는데 기억은 안 나네." (*효블은 나다)


"우주의 질서를 너나 나나 벗어나기 힘들다고. 그러니 자유는 이러한 필연성을 인식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거든. 이 말이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돌더라고. 불과 얼마 전까지는 관심도 없었을 얘긴데 지금의 나한테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몇 번이고 되뇌었어."

"그래 좋은 말이네. 그럼 효블이 알아낸 필연성이 구체화 된 게 인생 지론이야?"

"역시 인텔리. 이러니 내가 계속 떠들고 싶어 진다니까."

"어차피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은 이 국밥을 먹는 동안이야. 말해봐."


"그렇지. 데드라인은 힘이 있어. 사람을 움직이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소중하게 되뇔 정도는 아닌 거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영향을 주는 메시지가 지론이 되는 거지."

"효블한테 중요한 결정은 뭐였어?"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있잖아. 예를 들면 진학, 입사, 퇴사 같은 결정들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번복할 수 없으니까. 분기점이라고 해야 하나.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갈라지면 U턴하기 힘들잖아."

"나 운전면허는 없지만 이해했어. 계속해봐."


"난 잘 될 거야 그런 낙관성 있잖아. 그게 점점 꺾이는데 몇 살이 되면 완전히 사라질까?"

"글쎄. 효블은 사라졌어?"

"난 마흔 살일 거 같아. 나에게 마흔은 가능성을 펼쳐볼 수 있는 데드라인이야. 마흔까지는 자기계발에 계속 투자해 보려고. 그 이후에는 살아온 대로, 몸에 베인 습관대로 살아지겠지 싶어."

"식겠다. 좀 먹으면서 말해."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마흔까지 안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또 다른 기회를 놓친 셈이 되겠지. 근데 그건 감수하겠다는 게 나의 선택이야."

"그래.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


"너무 멀리 생각하면 괴롭고 또 막상 그때 가서 보면 뭐 맞지도 않아."

"그래 이제 지론 얘긴 끝난 거야?"

"하나가 더 있는데."

"뭔데. 나 거의 다 먹었으니까 빨리 말해."

"확률. 내가 속한 카테고리 안에서 나에게 발생할 일들의 확률. 생각해봐. 어떤 직장을 계속 다니면 그 안에 있는 상사 중에 한 명이 나의 미래 모습이 될 거잖아. 나는 아닐 거라는 자만은 떨지 않아. 뭐 그런 현실적인 가능성, 확률을 염두해야 한다는 거야."

"이제 가자. 오늘 다 기억 못 해. 알지?"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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