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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람 Oct 11. 2023

나의 서점일기

오늘의 마음 (16)

서점을 좋아한다.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단정한 풍경이 좋고, 높고 낮은 책장을 살피며 뜻밖의 책들을 발견하는 것도 좋아한다. 대형서점도 좋지만, 골목 곳곳에 숨은 작은 서점들을 더 좋아한다. 요즘은 작은 서점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졌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마다 서점들이 참 많았다. 서점에서의 기억을 곱씹어 보면 나는 혼자서 서점에 자주 갔었다. 대부분은 혼자, 몇 번은 동생과 함께 갔던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내 인생의 첫 서점은 ‘알뜨리서점’이었다. 사실 이름은 정확하지 않다. 아마 저 이름이 맞는 것 같다... 정도다. 같은 반 친구네 집이었고, 나는 다른 서점은 안 가고 친구네 서점만 줄곧 갔었다. 독후감 숙제 때문에 책을 사러 가고,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로 가고, 용돈이 생기면 평소 눈여겨보던 재미난 책을 사기도 했다. 또렷이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는 학교에서 내준 과학 독후감 숙제 때문에 서점에 갔던 날이다. 그날도 나는 혼자서 서점에 갔고, 과학책 코너를 몇 번이나 돌며 고민 고민하면서 책을 골랐다. 그런데 정말이지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숙제는 해야 하는데, 맘에 드는 과학책은 없고... 꽤 오랫동안 서점을 서성이다 나는 결국 그냥 나왔다. 집에 돌아와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과학책을 사러 가는 길에 만났던 풍경, 서점에서 고민하던 내 모습, 결국은 그냥 나와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을 독후감으로 써서 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쓴 ‘책 없는 독후감’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좀 기발했던 것 같은데, 선생님 눈에는 책 읽기 싫어서 꾸역꾸역 지어낸 이야기 같았는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고, 그렇게 책 없는 독후감은 내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내 기억 속 두 번째 서점은 좀 많다. 현대서점, 서울서점 그리고 로터리서점. 세 군데 서점은 큰 길가에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바로 옆집은 아니고 의상실, 슈퍼마켓, 이불집, 병원 등을 지나서 10여 분 거리에 붙어있었다. 서점을 가려면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나가야 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애용하던 서점들이었는데, 명절에 용돈을 받으면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나는 꼭 서점에 갔다. 서점 책장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맘에 드는 책을 고르곤 했다. 가끔은 서점 주인아저씨가 내 옆에 서서 이런저런 책을 권하기도 했는데, 나는 “읽었어요” “그것도 읽었어요” 조곤조곤 말하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주인아저씨는 내 옆에 서서 어떤 책을 고르나 지켜봐 주셨다. 아마도 키가 작은 내가 높은 곳에 있는 책을 맘에 들어하면 바로 꺼내주시려고 그러셨던 것 같다. 현대서점, 서울서점, 로터리서점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내 단골서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길목에 있던 양지서점에 주로 들렀다. 문제집, 잡지 이런 것들을 사곤 했다. 그때부터는 책을 덜 읽었다. 그렇다고 교과서나 문제집을 열심히 보던 것도 아니었는데, 책보다는 라디오와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큰 서점에 갔다. 대학이 있는 큰 도시에는 작은 서점말고 큰 서점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다정하게 책을 골라주던 주인아저씨도 없고, 쪼그리고 앉아 책을 봐도 너그럽게 공간을 내주던 따뜻함도 없고, 친구네 아빠가 덤으로 주던 사은품도 없는 큰 서점이었다.      


나는 지금도 작은 서점이 좋다. 동네를 둘러봐도 서점이라고는 없지만, 그래서 검색을 해서 맘에 드는 곳을 골라뒀다 가야 하지만 작은 서점에 갈 때면 꼭 책을 사서 나온다. 맘에 들지 않아도, 꼭 읽을 것 같지 않아도 한두 권의 책을 사서 나온다. 작은 서점이 있다는 게 고마워서, 그리고 작은 서점을 계속 지켜달라는 작은 응원인 셈이다.      


기억 속에 단단히 남아있는 나의 서점들은 늘 따뜻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고르고 골라 샀던 책들은 지금도 본가의 작은 책장에 그대로 꽂혀있다. 유치하고 웃음이 피식 나는 제목들의 책이 대부분이지만,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한 권의 추억들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애틋함이 됐다. 그 책들을 보며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내 꿈은 서점 주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언젠가 나도 작은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다. 언젠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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