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살, 시험관을 기록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살면서 눈이 질끈 감길 만큼 긴장되던 순간들이 있었다. 혼잡한 도로에서 처음으로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을 때 그랬고, 내가 쓴 원고로 첫 방송이 나가던 순간이 그랬으며, 아찔한 산 위에서 흔들흔들 구름다리를 건널 때, 그리고 주사를 맞기 전이 그랬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주사는 여전히 두렵고, 주삿바늘이 살을 뚫는 그 순간이 나는 너무 무섭다.
시험관을 시작하고, 서너 개의 주사약이 내 손에 들려졌다. 간호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며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격려해줬지만 집에 와 주사기를 앞에 두고 보니 엄두가 안 났다.
"이걸 매일, 그것도 서너 대씩, 게다가 내가! 스스로! 혼자! 셀프로 맞으라고?
그럴 수 있는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는 잔뜩 긴장을 한 채 주사기와 대치하고 있었다. 제시간에 정확한 용량을 정확하게 투여하는 게 매우 중요했으므로 마냥 지체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남편을 옆에 세워두고 주삿바늘을 배 위에 올렸다. 얼마나 세게 눌러야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건지, 지금 주삿바늘이 내 살을 뚫기는 한 건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눈 질끈 감고 손에 힘을 줬더니 따끔한 느낌이 들었고 주사기를 꾹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몸속으로 들어가야 할 주사액이 배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주삿바늘이 내 살을 뚫지도 않았는데 나는 주사기를 눌러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맞아야 할 오늘의 주사가 아직 2개 더 남았다는 것. 그다음부터는 뭘 어떻게 한 지도 모르게 주사를 맞았다. 3일 분량의 주사 중 한 가지를 그대로 흘려보냈으니, 산부인과에 급하게 전화를 했고 병원에서는 하루 일찍 내원해 달라고 했다. 산부인과에서 간호사 선생님께 의지해 다시 주사를 맞았다. 간호사 선생님 손에선 이렇게 쉽고 간단한 걸 나는 왜 그렇게 부들부들 떨었는지, 그 순간엔 세상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가장 위대해 보였다.
과배란 주사는 2~3일 간 2~3번에 걸쳐 맞는다. 중간중간 난포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면서 주사의 종류와 양을 조절한다. 주사 하나 맞자고 집에서 2시간 걸리는 병원을 매일 오갈 수도 없고 결국 주사는 셀프, 내 몫이다. 난 차마 내 살에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걸 못 보겠으니 남편에게 봐달라고 하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배에 주사기를 꽂았다. 그때마다 아팠고 다시는 못 하겠다 싶었지만, 다음 날 주사 맞을 시간이 되면 이를 악 물고 또 해냈다. 자꾸 맞다 보니 어느 순간, 따끔하고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그 느낌을 알게 됐고, 그 후부터는 조금 수월해졌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간절히 원하는구나... 간절한 마음이구나 할 텐데 이상하게 ‘간절하다’는 단어와 나의 지금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해야 하니까, 해내야 하니까 한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어쩌면 간절하다는 말을 인정하면 내 마음이 약해질까 봐 스스로 방어막을 친 건지도 모르겠다.
주사를 맞는 기간 내내 알 수 없는 마음과 감정들이 뒤섞였다. 주사 바늘이 들어간 자리엔 멍이 들고,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했고, 호르몬이 왕성해져 기분은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는 순간들도 많았다. 가끔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도 더러 있었고, 주사액과 바늘이 어지럽혀진 순간을 보면 나는 이 상황을 몇 번이나 더 마주해야 할까라는 아득한 마음도 들었다. 그럴 때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차근차근 최선을 다하자...라는 혼잣말로 나를 다독였다. 생각만큼 절망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희망적이지도 않은 날들을 나는 차근차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