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場春夢
"헉... 헉... 아흐... 어흑.. 헉헉...."
심장이 내 뜀박질 보다 앞서나간다. 주변을 두리번 할 겨를도 없다. 그저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찰흙이다. 그게 지금 내 앞의 현실이었고 그래서 그랬다.
잘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 줄. 나도 수만 번, 아니 그 곱절을 고민했다. 나라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이 위법의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를까 봐.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 없다. 말하면 그는 무관심하듯
'너 그럴 줄 알았다'하거나 아니면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혹은 '이건 네가 한 일이야. 이래서 나보고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뭐야?'
라고 선을 그을 것이다. 매정하게 대할 남편에 대해 서글프진 않다. 그도 나름 노력했다. 나의 노력과 비교하기에는 근본부터가 우린 다르므로 그런 건 서로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당신이 제일 힘든 거 알아. 나는 당신을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라. 당신이 포기하지 않으니 나도 옆에서 지켜봐 주는 거지. 이건 당신의 결정이 제일 중요해."
우리의 시작에 그는 그렇게 마음결을 마련해 주었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것도 안다. 츤데레 일 수도 있다. 공주님처럼 모시는 것도 누구 말대로 턱 하니 기분이다! 하며 명품 백 하나 사주는 것도 아니다. 일일이 쫓아다니며 보필하거나 팔 걷어 기꺼이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무던히 지내다가 불현듯 툭한 그런 위로가 더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내 주변사람들은 자신의 남편에 대해 좋게 말하는 편이 아니다. 아니, 일반적으로 주부들이 그런 것 같다. '동치*'나 '동*이몽' 같은 TV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내 주변이라 해서 '천생연분'만 찍고 사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애가 있으면 더 그렇다.
"애도 제대로 안 봐. 애 좀 보라니깐 진짜 보고만 있는 거 있지?"
"자기가 뭐 했다고 우울증인지 몰라. 애 며칠 보더니 자기가 주부 우울증 걸린 거 갔다잖니. 매일 애 보는 내가 툴툴대면 비웃더니."
"왜 양말은 그렇게 맨날 뒤집어 놓는지. 속옷도 벗어두고 그냥 돌아다녀. 집안일은 혼자 하는 거 아니잖아. 집에서 풀스만 잡고 늘어져 있는 것 보면 아주 꼴 사나워 죽겠어."
"나 보고 살 빼래. 후배의 여자친구 이야기 하지 않나, 연애 때 이야기 하지 않나. 지금은 내가 애가 몇 살인데~ 결혼하고 늘어난 자기 뱃살은 생각도 안 하나 봐. 너나 빼세요! 내가 그랬더니 삐졌지 뭐야."
누구나 한번쯤 모임에서 디저트거리 삼아 하는 '남의 편' 이야기를 생각 없이 들을 수 있지만, 돌아오는 내내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남편을 나도 돌려 깎기하고 있진 않았는지 반추하게 된다. 아니, 반성이다.
"그냥 우리 다 내려놓고 시골 어디 바닷가나 가서 살까? 인생 뭐 있냐. 그냥 우리 둘이 먹고 살 정도 벌고 오손도손 살면 되지. 걱정 마! 내가 너 하나 먹여 살릴 순 있어. 그러니까 자기야, 기운 내. 우리 여태 저 녀석(우리가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이랑 셋이서 잘 살았잖아."
이렇게 말하면 내 처지만 한탄하며 울던 내가 뭐가 되나... 그러니 그가 손절한다 해도 이해한다. 그만큼 나에게, 그도 반복되는 이 다독임이 무뎌졌을 테니.
모두들 지금이 낫다고 해도 나는 아니었다. 내 시작이 결심이 되고, 그 결심이 이제는 오기가 되는 순간, 누구의 말처럼 '본전 뽑으려 하는 것이냐'라는 말도 합리적인 논리가 되겠군 하며 도전과 실패라는 무한루프를 자진해서 타고 있다. 돈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의 투자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투자, 그리고 나와 남편의 노후를 생각하면 빠듯했다. 지원이 없어서는 아니다. 시부모님도 친정도 알게 모르게 마음과 금전적 도움을 주었다. 물론, 정부 지원도 그러했다. 반복 주사의 고통은 거짓말인 것처럼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고, 이제는 그 쯤은 이 고통에 비하면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노숙해졌다. 수많은 알고리즘 속 유튜브와 블로그, 카페의 이야기들은 내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를 애매하게 플러팅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은 '되면 끝난다, 언젠가는 된다, 포기하지 말아라'라는 조언 아닌 조언이나 '저는 됐어요!'라는 자랑질에 숨이 막히고 불면증이 몰려온다. 스스로가 주는 '너는 뭔데 안 되는 건데?'라는 뼈 때리는 말이 홈런을 치면, 결국 삼진 아웃으로 이 게임은 '이제 끝이다' 그건 곧 '나는 끝이다'라는 우울과 절망의 나락으로 간다. 좋다는 곳은 다 가보고 간절함에 긴 줄을 기다려 돈과 마음이 아깝지 않게 써 보았지만,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의 생각이 들면 다 포기할까라는 생각은 같은 선상에 서 버리고, 나는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한 채 다음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휴직도 해보고 며칠 없는 병가도 써보고 이런저런 휴가도 끌어 쓰다 보면 내 신혼과 내 커리어는 결국 없구나, 남편이고 가족이고 뭐고 나에게는 이게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절망한다. 주변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그 벼슬을 누리며 환대 속에 긴 휴가를 가면, 나는 그 뒤치닥 거리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업무를 떠 안아 우걱우걱 매운다. '돌아오면 육아에 일에 더 힘들걸?'이라는 선배들의 말은 이미 있는 자의 꼰대 소리에 가깝다. 난 그저 나라는 인간의 하찮음과 그 평범한 간절함을 들어주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 그럼 나의 하루하루가 더 고된 숨이 된다. 이대로 살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것을 나는 너무 간절하니깐 가져가는 것뿐이야.'
맞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서 그랬다. 베이비 박스의 문을 다시 열고 안고 있던 아이를 넣었다.
순간의 내가 그랬다. 난 그만큼 치밀하게 마음을 준비했지만 그만큼 책임감 있지 못했고 그만큼 당당하지 못했다. 아이를 안을 때 잠깐의 1초만 희열이 느껴졌다. 그 이후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절망이었다. 내가 가지려 했던 것은 그저 아이일까, 아이가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고 있는 이상이었을까, 온전한 내 안식이었을까.
"하아...."
심장을 다독이며 다시 돌아간다.
온전히 내 배 아파서 아이를 낳아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기르며 평범히 살고 싶은, 악덕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닌 그저 나는 여러분의 주변이 있는 N연차 난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