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편지

累卵之勢

by 반달

안녕,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이제야 해. 그건 그간 나의 옹졸할 수밖에 없는 마음 때문이란 걸 마지막인 지금도 이해해 달라고 하면 무리 일려나. 이기적인 것은 나나 너나 사람들이나 다 같으니 이제는 모든 것을 따지려들지 말아줘.

지금이 아니면 너에게 편지를 쓸 이유도, 시간도, 마음도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건 나의 진심이 사그라지기 전에 그래도 너에게만큼은 남들에게 그러했던 것보다 더 정성스럽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려 해.

내가 너에게 한 번도 편지를 쓴 적이 없지. 그도 그럴 것이 일기 하나 작심삼일로 끝났던 나였으니까. 몇 번이고 힘들고 지칠 때 너에게 편지를 써야지 했지만 그것 조차 힘들어서 잘 안되었던 적이 수없이 많아. 어쩌면 그 미룸이 삶의 미련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오늘까지 물러져 지내왔나 보다.

그러니 충동적인 결심은 아니란 걸 알아줘. 모든 것은 오래전부터 천천히 나도 모르게 계획되어 왔던 것이라 생각해. 이런 새드앤딩을 나조차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도 해피앤딩을 원했지만 뭐든 드라마는 새드앤딩이 더 여운이 남잖아. 나도 모르게 그냥 그런 작은 바람이 있었나 봐.

너무 힘들었어. 원하는 건 나를 모두 보기 좋게 비껴갔지. 별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신은 왜 이렇게 마음이 후한지. 나 같이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가족도 있고 이제 꿈 많은 대학생이 무슨 소리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 하지만 뭐든 마음은 상대적인 거야. 좋은 환경은 더 좋은 환경과 비교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고. 난 그 사이에서 주저앉고 말았지.

가족은 나에게 마지막 기댈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치도록 외롭게 하는 존재였어. 너도 알잖아, 아빠의 그 지독한 자기주장 패턴과 은근히 돈 밝히는 거. 그리고 본인이 술 마시는 건 되고 내가 늦게 친구들과 술 마시는 건 안됬던 내로남불. 엄마는 가장이랍시고 쥐꼬리만 한 월급 벌어온다고 어릴 때부터 나와 동생에게 아빠 호박씨를 깠지. 그게 부부인 거구나 생각할 만큼 엄마의 험담은 단골멘트였어. 누가 보면 평범한 가정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있으면 숨이 막혀와. 어릴 땐 그게 너무 공포였어. 우리 엄마 아빠가 저렇게 싸우다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나. 나 대학 가는 거 지원 못해주면 어떡하나, 친구들이 놀리면 어떡하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공부에 집중하며 지내기도 힘든데 남들은 내가 예민하다고 하고 학교 선생님도 나에게 큰 관심도 없고. 그냥 친구들이 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때로는 친구가 나의 공부시간을 갉아먹거나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할 수 있지만 없으면 외롭고 허전한 게 친구이기도 하니까.

인생에 제대로 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잘 살았다고 한다더라. 근데 난 나를 안 괴롭히는 친구 1명만 있어도 살 것 같아. 가족 만으로도 내가 서 있기 힘든데 학교에 가면 더 죽을 것 같았어. 김**, 박**, 서** 이 세 명이 나를 제일 힘들게 했지. 너에게 이름을 남기는 건 정말 그놈들을 죽이고 싶을 만큼이어서 그래. 증거라도 해두자. 하지만 그 무엇보다 누군가 내 마음에 공감해 주길 바랄 뿐이야. 친구들에게 나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리고, 재가 아이*을 훔쳐갔다고 담임 선생님에게 거짓말하여 교무실에 불려 가게 하거나, 내 폰 비번을 마음대로 바꿔서 내가 내 핸드폰을 못쓰게 하기도 하고, 정말 미칠 것 같은 건 내가 좋아하던 윤** 앞에서 내 성적인 취향이라며 내가 책 사이에 그린 그 아이의 얼굴에 자기네들이 가슴을 그려 놓고 그 아이 앞에 떠벌린 거야. 미친*들...

서로의 치열한 전투에 그리고 삶에 나 같은 조용해 보이는 아들에게 관심 하나 없는 부모에게 짐을 줄 순 없어서 말도 못 했지. 쪽팔리기도 하고. 담임선생님? 글쎄... 말한다고 정말 도움을 줬을까? 우리 담임이 나쁘거나 매정한 사람이라는 것보다 그녀도 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었을 거라는 거지.

wee센터 선생님에게도 말할 수 없어. 거기도 다를 바 없거든. 그냥 거긴 잠깐 벗어나는 쉼터일 뿐이야. 자꾸 그 쉼터에 갔던 게 그 녀석들에게 더 약점을 노출한 건지도 모르지.

빨리 대학에 가고 싶었어. 커서 이 학교를 그리고 부모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피터팬이 돼라 하면 비트코인 다발을 준다 해도 거절할 판이야. 공부 집중도 안되고 죽을 것 같은 1년을 보냈어. 이도 저도 안된다는 것이 얼마나 죽을 것 같은 기분인지 알잖아. 자해를 안 해본 건 아니야. 자해가 보여주기 행동이라는 어쭙잖은 많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 어쩌면 그 말도 맞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땐 그래도 대학을 가면 달라질 것이란 희망이 있었거든. 그래서 완벽한 시행을 못했는지도 몰라. 바보 같은 선택이었지.

대학 갔다고 나아질 줄 알았어. 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는 좌절이 그 이상을 버티지 못하게 했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보면 지금이라고 말할 거야. 얼마나 힘드냐고 한다면 죽음을 진짜 결심할 만큼이라고 할 수 있어. 나에게 일말의 희망도 없어진 거잖아.

부모도 친구도 그리고 선생님도 속으로 비웃겠지.

‘그렇게 공부한다고 유세 떨더니 꼴좋다’

그래서 꼴좋게 된 거야.

너 미칠 만큼 울어 봤니? 요즘 나는 그렇게 울었어. 울면 좀 내 생각이 달라질 까봐. 일부러 바다도 가보려고 아침에 훌쩍 지하철을 타고 동인천으로 가기도 했고. 갯벌의 황량한 바다는 오히려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하더라.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어. 괜한 발악과 돈 낭비만 했으니깐.

중요한 건 결심인데 별거 없어. 그냥 오늘날인 거 같아서. 어제, 오늘, 내일이 다 똑같아서. 이제 미련이란 것을 가지기에도 힘이 들어서 말이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상담사에게 위로받기에도 나는 너무 중증 아닐까. 그냥 서투른 소리 듣다 올 것 같아서, 약 먹어도 그냥 그랬어서 그래서 이제 더는 미안하게 의지하지 않기로 했어.

TV에서 오늘 겨울 치고는 따뜻하대. 그럼 다행이지 않나. 이런 날씨에 한강 가기 딱 좋잖아.

내가 대학생이 되면 배낭여행으로 가고 싶던 곳이 뉴질랜드야. 예전에 TV 여행프로에서 퀸즈타운의 번지점프를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짜릿해 보인다기보다 뭔가 해방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그거 해보고 싶어서 그래서 가고 싶던 곳인데 결국은 못 가보네. 괜찮아. 오늘 그냥 한강을 퀸즈타운이라 상상하지 뭐.

준비랄게 있나. 그냥 가면 되지. 집은 괜찮아. 이쯤은 정리할 자산도 별로 없어. 이걸 발견한 누군가가 할 거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난 지금 한강까지 갈 교통비만 있으면 돼.

있잖아. 내가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이 편지를 읽거든 지금 당장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라 말해줘. 그리고 지금 아니면 다시금 비루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해줘.

그래도 20 평생 아주 간간히 너로 인해 살만했고 행복했다고 할게. 내가 너라서 그것만큼은 고마웠어.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그리고 잘 버텨줘서.... 근데 이제는 더는 힘들어... 희망이 없어서.

나도 희망이 있었으면... 내일이 궁금했으면, 기대되었으면 지금 쯤 다른 선택을 했을까?

괜찮아... 지금 와서 무슨... 그냥 한 사람쯤이라도 나에게 마음 눈물이 쏟아지게 해 줬으면 좋았을 걸....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해. 그리고 우리 서로 더 울지 말자. 미련 없이 갈 수 있을 때 가자.

이제 너에게 진짜 고백할게. 진심으로 고생했어, 그러니... 이제 진짜 안녕.


- 나에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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