緩步緩心
이것은 나의 완벽할 수 없었던 날들에 대한 메모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xx년 2월 11일
이번에도 떨어졌다. 진짜 열심히 이력서를 썼는데 떨어졌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슬프다. 왜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알아주지 않지? 내가 뭘 잘못 썼는지 뭘 안 썼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했다. 잘 알지만 대학 졸업 후 이렇게 첫 사회생활이 안 풀려서 힘들다.
20xx년 2월 25일
정말 돈을 벌고 싶다. 돈 벌어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다. 엄마 아빠에게도 선물을 사주고 싶다. 사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알바*이나 알바**을 뒤졌었다.
대학 다닐 때 길거리에서 붙어 있는 전단을 보고 알바를 구한다고 해서 무작정 가본 적이 있다. 근데 나를 쓱 한번 보더니 ‘이 알바 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을 내야 돼. 너 성과급이 생기면 다시 돌려주고 웃돈 붙여서 주는 시스템이야.’라고 해서 하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집에 와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고 자랑했더니 엄마가 거기 가면 다시 너 안 본다고 했다. 다른 한 번은 빵집에서 일하고 싶어서 알바*을 보고 연락한 뒤 갔는데 하루 일을 시켜보시고는 나를 그냥 잘랐다.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나는 열심히 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근데 사실 조금 길게 알바를 1번 했었다. 엄마가 소개해 준 편의점이다. 주택가에 있어서 여러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었는데 정신이 없었다. 계산도 해야 하고 물건 디피도 해야 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건 바로 빼내야 했다. 물론 청소도 해야 했고, 거기는 택배업무도 해서 혼자서 할 것이 많았다. 진짜 바빴는데 한 일주일이 넘어서자 사장님이 슬슬 내게 짜증과 훈계를 하셨다. 이거 알려준 게 언제인데 아직도 못하고 전화해서 물어보냐고 말이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맞지 않나? 엄마도 모르면 물어보는 게 제일 현명하다고 했다. 손님들도 나에게 슬슬 짜증을 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직원이 이거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요? 아휴 짜증 나.’
‘쿠폰이 있는데 왜 못써요? 그런 편의점이 어딨 어요? 여기가 공항 편의점도 아니고. 당신이 못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손님들은 나가면서도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게 화가 안 풀렸었나 보다. 다들 너무 기다려줄 줄 모르는 거 같은데... 우울했다. 알바를 그만두고 싶지만 나는 돈을 벌어서 엄마와 주말에 치킨을 사 먹고 싶었다. 사장님께도 죄송하다고 했다. 사장님은 한숨 쉬면서
‘너 너무 일머리가 없다. 이래 가지고 사회생활 어떻게 할래? 내가 이런 말 안 하고 싶었는데... 너희 엄마 부탁으로 뽑긴 했지만 좀 그렇다 얘.’
라고 하셨다.
난 그날 집에 가서 울면서 엄마에게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다른 일을 알아보자고 했다. 아니 나는 돈을 벌고 싶은데 엄마는 왜 이렇게 몰라주지?
20xx년 3월 14일
집에서 놀고 있다. 릴스를 보면 사람들이 다 돈도 잘 벌고 멋지다. 나도 저런 차를 타고 저렇게 돈 벌고 살고 싶다. 거울을 봤는데 나 쫌 잘생기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 근데 나는 왜 여자친구가 안 생기지?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이 여자 친구가 있었다. 나도 사귀고 싶었는데 나 좋다는 애가 없었다. 고백했지만 단번에 차였다. 반 친구들 중 몇몇은 나를 비웃었다.
‘야 씨*, 졸* 머리 빈 녀석도 여자는 끼고 싶나 보지?’
말들이 심하다.
나도 안다. 성적도 맨날 꼴찌이고 동성친구도 학년에 1명 있을까 말까 하다. 내가 성적 깔아준다고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솔직히 나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다만 성적이 안 나올 뿐인 것이다. 엄마는 중학교 때까지 나를 많이 다그쳤다.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고. 나도 솔직히 할 말은 있었다. 책상에 하루종일(거짓말 좀 보태서) 앉아있었다. 나도 공부 잘하고 싶은데 머리에 남아있지 않다고. 내가 고등학교에 가고 엄마는 포기했는지 성적에 대해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그건 담임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나 포기한 놈인가?’ 싶었다.
고 3 때 담임이 내 진로에 대해 걱정하며 ‘꼭 대학 가고 싶니?’라고 계속 물었었다. 친구들도 가는데 나는 못 갈게 뭐지? 나는 가겠다고 했는데 담임이 성적이 안돼서 간다면 전문대가 최선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상훈이는 내게 ‘야 군대나 가라 ㅋㅋ’이라는 톡답만 했다.
아... 오늘 화이트데이이지? 나한테 사탕 줄 사람은 이번에도 없겠지... 졸* 우울하다.
20xx년 7월 10일
졸* 짜증 난다. 진짜다. 오늘 병원에 갔다 왔다. 정신과. 아... 정신건강.. 뭐지? 암튼 거기. 나 병신 아닌데 졸* 짜증 났다. 엄마가 솔직히 몇 달을 졸라서 내가 가 준거다. 무슨 어려운 질문과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물어봤다. 솔직히 좀 많이 어려운 것도 있었다. 솔직히 이해하고 싶어도 잘 이해가 안됐다. 수능도 아니고.... 임상심리사 쌤도 의사쌤도 간호사도 친절했지만 솔직히 거기는 또 가기 싫다.
난 정신건강... 암튼 거기가 처음 가본 건 아니다. 신검 때 한번 갔었다. 그때도 오늘 한 것 같은 비슷한 검사와 질문을 받았다. 나는 검사 결과를 자세히 모르긴 하는데, 어쨌든 덕분에 군대를 가는 대신 대체복무를 유치원에서 했다. 좀 나랑 안 맞는 곳이긴 한데 선생님들도 친절했고 아이들도 귀여웠다. 상훈이는 내게 ‘쪽팔리게 유치원이 뭐냐, 걍 면제해달라 하지. 아니면 야, 이참에 전과해. 유아교육과로’라는 조언 아닌 핀잔을 주었다. 근데 그때 난 솔직히 흔들렸다. ‘지금 과에서 어차피 낙오자인데 차라리 그럴까?’
어쨌든 검사결과가 난 궁금하지 않다. 엄마가 궁금해서 했으니까 엄마만 알면 되지.
20xx년 10월 10일
엄마는 검사결과를 들어야 한다고 나를 기어코 병원에 다시 데리고 갔다. 잊고 있었는데 씨x.오늘은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닌 병원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이분을 왜 만나야 하는지 의사쌤에게 물어볼 새도 없었다. 이분 역시 친절했지만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랑은 간단한 인사정도와 일상생활, 친구, 취미, 알바는 하는지 같은 이야기만 하고 엄마랑 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며 15분을 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근데 엄마도 복지사 쌤의 의견에 동의하듯 나보고 좀 기다리라고 해서 상담실 밖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엄마가 무슨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 종일 말 수가 적으셨다. 뭔 소리를 했지?
20xx년 12월 4일
눈이 왔다. 펑펑. 어제 나도 펑펑 울었다. 몇 번 만난 의사 선생님과 사회복지사 쌤은 나에게 ‘장애등록’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내가 장애자라고... 난 그냥 머리가 나쁘고 성적이 안 좋았을 뿐이고, 일머리가 없을 뿐이며, 친구가 많지는 않고, 다소 소심한 성격일 뿐이다. 나도 그런 것 때문에 누구보다 힘들었다. 여전히 내가 취업도 계속 못하고 있고 알바 하나 길게 못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20대이다. 사회복지사 쌤도 의사도 전적으로 나의 의견이 우선이라고 했다. 장애등록이 다 도움이 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사회에서 보는 시선도 있고 해서 본인에게 장애등록이 필요한지 충분히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근데 지금은 그냥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나도 세상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정도는 안다. 그리고 내가 사회생활을 잘 못한다고 해서 그게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난 그냥 여러 면에서 미완성일 뿐이다. 그냥 느리지만 천천히, 나 나름의 방식과 페이스대로 살아가고 싶다. 그걸 사람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면 사치인가.
이것은 나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에 대한 메모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xx년 2월 11일
아이에게 전공을 살려 카페에 이력서를 내보라고 했다. 근데 아마... 아니 당연히도 잘 안된 모양이다. 이럴 때 엄마로서 나도 위로 밖에 해줄 것이 없다. 이 위로가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이럴 때 남편이 있었다면... 아니다. 그래봐야 도움도 안 되는 인간이다. 아이가 글 늦게 배운다고 말이 느리다고 다그치기만 하고 교육에 교 자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이가 부모가 완벽히 있지 않아서 이리된 건가 자책하게 된다. 내가 너무 바빠서 사는 거에 지쳐서 못 봐준 게 미안하다.
20xx년 2월 25일
아이가 부쩍 돈 이야기를 한다. 취업도 안되고 알바도 그렇게 관두게 되었으니 더 그런 듯 하다. 원래 용돈도 충분히 주고 부족하지 않게 키우려 애써서 그런지 돈 이야기로 속 안 썩이는 효자였는데... 마음 같아서는 내가 대신 취업자리에서 일해줄 테니 제발 우리 아들 좀 뽑아달라고 하고 싶다.
나도 신세 지는 것이 싫다. 자식 자랑은 못할망정 자식의 부족한 면을 내세워 말하게 되는 것도 마음 시린 일이다. 그래도 아이가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칭찬해줘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얼마 전 동료의 사촌이 운영한다는 편의점에 학기 중 시즌에 주말 알바가 잘 안 구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탁을 해서 일을 했었다. 붙었다고 좋아하던 아이에게 성공의 경험을 심어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렇게 이제 사회에 한 발씩 나아가고 제발 적응해라라고 빌었다. 근데 아이가 결국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만두었을 때 표정은 잊을 수 없다.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아이의 표정에서 내 웃음도 무너져 내렸다.
나도 고민했었다. 왜 이렇게 말 귀도 못 알아먹고 느린지. 아기 때부터 그랬다. 남자아이는 으레 좀 늦는다고 하여 그런 줄 알았다. 누구나 첫 양육은 어려우니까 주변의 말만 들었다. 그때 병원에 가봤어야 하는데 후회는 된다. 아이도 자라오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다. 스스로 스트레스도 받아했다. 그래서 사전 연습을 하고 알바를 가자는 말에 아이도 수긍하며 같이 집연습도 해봤다. 집에서는 곧잘 했다. 근데 뭔가 어려워지거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려주면 힘들어했다. 그래서 첫 알바 때 밖에서 얼마나 아들의 일하는 모습을 사시나무 떨 듯이 봤는지 모르겠다. 나만 초조하고 불안한 것 같았다. 내가 초조해하면 더 힘들어할 것 같아서... 보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는데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방목해야지 하면서도 퇴근하면 아이가 일하는 편의점을 서성거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동료를 통해 미안하지만 아들 자리를 다른 알바생으로 메꿀 수 있게 되었다는 에두른 이야기와 감사함의 표현을 받았다. 이런 게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아들을 써 주었으면... 아들을 위로하는 나도 지친다.
20xx년 3월 14일
아이가 집에서 휴대폰만 쳐다보고 산다. 알바도 그만두고 일자리도 없고... 요즘은 구인하는 노력도 뜸하다. 친구를 만나거나 나가서 운동 좀 하라고 했더니 그냥 방에 틀어박혀 대꾸도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사회생활에 벌써 마음이 다친 건 아닌지... 이렇게 그냥 도태되게 두어도 되는지... 내가 없을 때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지... 별의별 생각에 일이 손에 안 잡혔다.
20xx년 7월 10일
얼마 전 밤늦게 잠이 오지 않아 킨 tv 재방에서 ‘느린 학습자’ 이야기를 보았다. 내 아이 이야기 같았다. 불현듯 아들의 신검 때가 떠올랐다.
“지능이 애매해요. 이걸 저희는 경계성이라고 하거든요. 지적장애는 아닌데 아마 여러 사회, 인지, 학습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이래서 아마 병무청에서도 민간병원에서 재검해 보라고 했던 것 같네요. 어머니 혹시 학생 때는 지능검사 관련해서 학교에서 들으신 거나 아니면 따로 병원이나 심리센터에서 해보시거나 하셨던 적 없으세요?”
물론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이가 느린 게 일반적인 느림은 아닌 것을. 그러나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남편과 이혼하고 중학교 초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나는 아이를 충분히 지켜보고 도와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핑계겠지. 나도 안다. 그냥 아이의 느림을 외면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냥 환경적 이유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위태로웠으니까. 그렇게 아이가 군대를 공익으로 가면서 나는 내가 여태 나의 기분대로 아이에게 화내고 아이를 뒷전으로 키웠던 과거에 반성했다. 절대 화내지 말아야지. 여태 내 감정과 상황을 아이가 이해해 준거라면, 이제는 내가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고민을 나눌 곳이 없어서 홈페이지를 두드리던 중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알게 되었고 반차를 내서 상담을 다녀왔다. 거기서는 정식적으로 다시 현재 상태에 대한 심리검사를 제안했다. 관건은 아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왜 가냐고, 자긴 그냥 요즘 우울한 거라고 그래서 집에 늘어져 있는 것뿐이라고 짜증을 내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참았다.
“네가 걱정돼서 그래. 이대로 살 순 없잖아.”
생각보다 설득의 이유는 심플하다. 이대로 살 순 없는 것. 그건 아들과 나 모두가 원하는 바다. 결국 검사를 했다. 제발 우러 했던 그 결과가 아니길...
20xx년 10월 10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경계성 지적장애라고 진단했다. 왜 슬픈 예감을 비껴가지 않는지. 최대한 담담하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미 아이가 성인이다 보니 쉽지 않겠지만 사회적응과 긍정적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정신건강사회복지사와 상의해 보도록 제안하셨다. 그리고 현 지능상 지적장애 등록이 쉽진 않지만, 가능하다면 재검을 통해 지적장애 등록도 고려해 볼 수 있는지 고민해 보자고 하시며 미리 장애 혜택 등에 대해 복지사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장애... 우리 애가...
나는 정신건강사회복지사에게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쉬운 건 장애등록도 보장하기 어렵고 장애등록이 아이의 취업을 정말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취업에 유리할까요? 장애등록이?”
“장애인고용복지공단 통해서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고 관련된 직업재활기관을 통해 취업도 할 수는 있어요 어머니. 물론,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일정 부분 의무고용을 해야 하다 보니 그런데 원서를 낼 수도 있는데, 어떤 취업이던 무조건 넣는다고 뽑아주지 않으니까요.”
당연한 말이다. 장애인 속에서도 무한 경쟁... 나는 이제는 다 필요 없고 그 경쟁의 문턱을 줄여주고 싶다.
관건은 아이에게 이 냉혹한 현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이다.
20xx년 12월 4일
나는 결국 장애등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의사 선생님과 재검 날짜를 잡았다. 물론 지적장애에 들 만큼의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나쁜 지능을 바라야 할 처지이다. 법도 사회도 현실도 그리고 나 자신도 원망스럽다. 하지만 나는 엄마니깐... 아이가 어떻게든 느리지만 천천히라도 괜찮으니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원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과정을 엄마로서 충분히 함께 해주고 싶다. 아이의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그렇게 펑펑 울어서라도 응어리가 속상함이 씻겨갔으면. 그리고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기운을 냈으면. 나도 이제야 엄마 노릇하는 느린 엄마이니까, 나라도 힘을 내야 한다! 같이 느린 우리가 함께 이 길을 헤쳐나갈 수 있었으면.
아가야... 우린 완벽하지 않지만 괜찮아. 앞으로도 그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