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뜨린다는 것에 대하여

牽強附會

by 반달

안녕하세요 여러분, 예 반가워요. 어이고 또 오셨네요, 좋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떨어뜨린다는 것’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잘 떨어뜨리시나요? 아 네, 그러실 수 있습니다. 잘 떨어뜨리냐는 저의 질문은 빈도일 수도 있고 방법의 의미도 있습니다. 물론 본질적으로 ‘뭘 떨어뜨리는 것을 말하는 가’도 중요한 전제 질문일 것입니다. 철학 강의를 들으시면 한 번씩 느끼시는 거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하하, 맞습니다. 근데 그게 또 철학과 사유의 광활할 스팩트럼을 상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오늘 주제로 삼은 ‘떨어뜨린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한번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물건을 잘 떨어뜨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주 핀잔을 듣죠. 아마 결혼하신 남성분들은 극 공감 하실 겁니다. ‘나는 왜 아내의 잔소리를 생성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숨만 쉬어도 아내는 잔소리가 디폴트 값이니까요. 저는 처음에는 제가 물건을 잘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습관 따위를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지만 우리는 습관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살죠. 그러니 그냥 그대로 체화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데 한 번은 제가 사과접시와 포크를 들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tv에 집중하고 있어서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손에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더군요. 저도 순간 당황했습니다. 이때 사람들마다 반응은 다양하시겠죠. 어떤 반응들이 예상되세요? 맞습니다. 어떤 분은 되려 더 크게 화를 낼 수도 있고, 아니면 위축되실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잡아떼실 수도 있죠. 기본적으로 이는 합리적인 방어기제이며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오늘은 사람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자리는 아니니까 각설하고, 저는 일단 화를 내는 쪽이

었는데 아내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화를 냈습니다.


"아이씨! 나는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떨어뜨리는 거야. 신경 쓴다고 쓰고 사는데! 으휴, 내가 그렇지 뭐."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아,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수 치는 것일 수 있죠. 하지만 선수 치는 것과 자신을 자책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저는 제 스스로를 탓하고 있고 반추하고 있음을 스스로 외재화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한번 더 떨어뜨리는 행동에 대해 더 예민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 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자책의 고도화 과정으로서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자신의 결점을 메꾸는 것은 고도의 노력과 집중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마치 부족한 수학 과목 공부를 보완하기 위해 온 시간과 노력을 쓰듯이요.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퍽이나~ 으휴!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떨어뜨리고 왜 그러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야? 손에 힘이 없는 거야? 신경에 문제가 있어? 그럼 병원 가보던가. 아주 옆에서 스트레스받아! 물건 떨어뜨리는 그거가 문제가 아니야. 그게 포크인데 발이라도 찍혀서 다치고 멍들면 손해인데 그런 게 더 문제인거지. "


맞는 말입니다. 아내만큼 저를 걱정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하하. 저는 이래 봬도 잉꼬부부이거든요

그럼 아내의 말처럼 실증적으로 접근해 생각해 봅시다. 물건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여러 문제를 야기합니다. 아내의 말처럼 상해, 물건의 손 망실, 부부관계의 악화, 아내의 정신건강문제(물론 저는 여기에 당사자로서 스트레스받는 저의 정신건강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포크의 떨어뜨림은 물건의 손망실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부부관의 악화와 아내의 정신건강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의학적으로 진단할 만한 수준은 아니죠. 아내 또한 오히려 남편의 물건 떨어뜨리는 습관에 대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담대하거나 다소 무관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물건을 떨어뜨려도 손상되지 않거나 다치지 않을 것으로 바꾸어 실용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겁니다. 이에 대해 아내분들은 물론 이의재기 하실 수 있습니다.

하하 맞아요, 너무 합리화 아니냐고요? 네 우리는 합리화가 '능률화'와 같은 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들의 진정한 연관성을, 종종 그것들이 일어나는 동안이나 그 직후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한다고 하죠. 제가 했던 말은 아니고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한 말입니다. 습관이다 보니 조금 느리지만 우리는 상당한 서로의 시간 흐름이 있은 후 이를 깨닫고 능률화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경험은 모두 배움입니다.

실제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 말고도 인생에서도 그러합니다. 취준생이 가장 싫어하는 말 뭔 줄 아시죠?

맞습니다. '떨어졌다'는 말이죠.

물론 요즘 같은 취업난에 한 방에 붙기는 어렵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알바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참 각박한 세상이지요. 취업이 안된다는 것은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산성 있지 못하다는 생각과 자괴감을 주기 딱 좋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세요. 세상의 틀, 그리고 회사의 틀에 나를 맞추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발적 비취업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다 무기력하거나 못 사냐? 그것도 아닙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지내죠. 어쩌면 유튜브 크리에이터, 콘텐츠 작가, AI 디자이너 등 디지털노마드 인력들이 그런 부류일 수 있습니다. 아, 주식이나 코인 투자자들도 그렇겠죠.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비웃기도 합니다. 부러워하면서 욕하기도 하고 신뢰하지 않기도 하죠. 재수는 없지만 결과가 좋으니 부러운 거 아니겠습니까. 이들에게 '떨어졌다'는 잣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떨어진 게' 아니라 '내가 안 한다'라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도 됩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또한 합리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사회일원이 되기 위한 절대적 이유라면 '능률'적인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를 부모님에게 바로 시전 하진 마십시오. 일단 등짝 스매싱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부모세대는 아직 다양한 일의 방향성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첫 직장은 정형화된 곳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는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프레임에 우리 세대를 끼워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젊은이의 패기이기도 하죠.

저같이 심사를 하거나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떨어뜨리는 것'은 상당한 고뇌와 책임감을 가지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가르는 일이니까요. 연애라는 관점으로 생각해 볼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사랑하면 안 되는? 혹은 할 수 없는 가문의 입장이라면 부모는 소위 도시락 싸들고 둘을 '떨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아침 막장 드라마에서처럼 '저런 여자애는 우리 집 며느리 감이 아니다'라고 하며 부모가 혼사를 반대하기도 하죠. 이는 앞으로의 그들의 인생을 가르는 방해꾼입니다. 저도 어떤 학생을 이 학교에 붙이고 떨어뜨리는 것을 매년 합니다. '너는 이 레벨이 아니다'라는 꼴인데, 내년에 그 학생이 다시 저희 학교에 응시를 하면 또 만나게 됩니다. 제가 그 학생에게는 인생의 방해꾼 일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의 방해꾼이 있어야 목표와 대상에 더 열열 해 집니다. 단순히 떨어져야 하는 현실과 떨어지는 현실에 좌절하지 마십시오. 떨어뜨리는 것은 쌍방이 미워할 일이 아닙니다. 서로의 입장에서 최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지향점이 다른 서로의 노력입니다. 그러니 떨어졌다면, 떨어져야 했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입장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떨어뜨린다는 것은 일정한 사건입니다.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우리는 단순히 일어난 그 일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떨어뜨린다는 것에 대한 광활한 지혜와 철학을 나눔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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