御營非營
손을 풀고 접속 로딩을 기다린다 = 즐비하게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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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 삑 삑...
이제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아니, 이미 입장 전부터 전투는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준비가 모든 끝을 좌우하기도 하니까. 빠르게 자리는 선점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입장하는가에 따라 자리 선호도는 다르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자리는 있기 마련이다. 로그인된 전투 속에서 머뭇거림은 다음 유저들에게 눈칫밥 먹기 십상이다. 빨리 골라야 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결정된 자리는 오늘 하루 나의 앞날을 좌우한다. 디폴트 값은 어디서나 중요하다. 나는 빠르게 노트북과 아*패드, 핸드폰의 콘센트를 찾아 꽂고 나만의 전장을 준비해 나간다.
성곽과 요새는 매우 중요하다. 노트북 받침대는 되도록 마주 본 사람의 시야를 가려야 한다. 높이가 조절되는 기능성이면 더할 나위 없다. 시야차단과 내 목 디스크 보호라는 이중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1만 원 정도 더 투자할 수 있다. 아이템 빨 이라는 것은 이때 하는 말이다. 의자 뒤에 기능성 등받이도 한몫한다. 이건 엄마 찬스를 썼다. 원래 기능성은 비싸니까.
그다음은 오늘 해야 할 퀘스트를 왼쪽에 쌓는다. 한국사 능력시험 문제집, 토플 어휘, 토플 L/C, 토플 VOCA, 공무원 모의고사 등등.. 일단 과목 별로 쌓아두어야 좋다. 언제 어떻게 집중력이 떨어질지 모르니, 시간적 효율성을 위해서는 골고루 퀘스트를 마련하는 것이 능률적이고 전략이 될 수 있다.
오른쪽에는 마우스와 애*팬슬, 필기류를 준비한다. 대부분을 패드로 해결하겠지만 레트로 버전은 항상 구비해야 마음이 안정된다. 모든 무기는 구관이 명관일 때가 있다. 지우개, 형광팬은 이왕이면 똑딱이로 하고 신호등 색은 필수이다. 그 외 파스텔 톤의 형광펜이 있다면 더 굳, 혹시 모르니 색연필도 있으면 좋다. 지우개는 지우개 밥이 많은 거로 기왕이면 갈고닦아 업그레이드된 것이 좋다. 아니면 남들이 탐낼 수 있는 독일제 지우개도 좋다. 이건 그냥 간지 나니까 꺼내 두는 것이다.
텀블러는 필수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고용량의 스텐*정도는 준비하면 좋다. 스트로는 굵은 것으로. 티는 오는 뭘로 할까? 티는 무슨.... 카*가 제일 만만하다. 카* 스틱 커피를 타고 도서관 정수기의 온수를 콸콸 넣어 책상에 탁 둔다. 이게 기본 세팅이다.
아! 겨울과 여름의 계절 템이 필요하다. 겨울은 담요, 핫팩이고 여름은 스텐딩 선풍기인데 무소음이 필요하다. 그래도 유저 간 소음 이슈는 없는 게 좋으니까.
이제 기본 세팅이 끝났다. 전장에 나가볼까? 아니! 자자... 잠깐! 핸드크림 좀 바르고... 립글로스도 바르는 김에 바르자. 그리고 에*팟을 귀에 끼면 이제 진짜 끝이다.
먼저 첫 번째 퀘스트는 가벼운 게 좋다. 간단하게 토플 VOCA 책부터 뽀개보자. 그렇다면 이면지도 필요하겠군. 가방에서 뒤적이며 찾아보니... 아차! 오늘 깜박했다. 원래 아이템 백은 한정된 편이다. 오늘 도시락까지 싸 오다 보니 공간이 부족했다. 망했다. 아니... 진정해. 생각 생각!
아! 이럴 때 길드 친구를 뒀다 뭐 하나. 이곳은 오픈월드. 친구는 2층의 열린 열람실에서 이 시간에 언제나 나처럼 로그인해 있다.
톡톡톡톡....
친구에게 이면지 쓸만한 것을 물어본다. 역시! 굳! 이 녀석도 굉장한 보부상이구만. 있다는 콜을 받고 2층으로 내려간다. 친구와 접선한다. 접선한 김에 약간의 근황토크는 필수! 매일 이곳에 함께 접속하지만, 같이 접속하는 긴 시간은 점심시간에 불과하다. 서로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암튼 약간의 낄낄 거림은 환기가 된다. 목적을 달성하고 친구는 다시 본인의 전장으로, 나는 3층 나의 전장으로 돌아간다.
자리에 앉아 단어를 외우기 시작한다. 깜지 쓰듯 단어를 써 내려가며 읽는 고전적인 전투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한 10 단어 외울 때쯤 슬쩍 옆 테이블의 사람을 봤는데, 이 유저는 태블릿 PC의 노트 어플 기능을 활용해 가렸다 봤다 하며 외우고 있다. 저게 무슨 어플일까? 더 적극적으로 엿보기에는 좀 자존심도 상하고 거리가 있다. 슬쩍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검색어는 ‘단어암기 어플 추천, 노트’ 정도면 되나?
아.... 이런 방법이... 이렇게 해 볼까? 어플을 다운로드하는 시간 동안 핸드크림을 다시금 발라본다. 됐다. 오늘은 이 방법으로 새롭게 외워볼까?
어떻게 사용하는지 요리조리 클릭해 본다. 음음... 그렇군... 한참을 씨름했지만.... 다음을 위한 빌드 업이라 생각하자. 이제 단어들을 넣어보자.
엇!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한 30분만 있으면 2층의 나의 전우와 같이 늘 밥을 먹는 시간이다. 좋아! 30분 힘들게 이제는 진짜 집중하는 거다. 단어 50개 외우기! 가방에 숨겨두었던 비장의 레트로 타이머도 꺼내 세팅한다. 이제 스타트!
10분쯤 외우고 커피 한 모금, 30분 지나기 5분 전에는 이제 시계를 몇 번 보게 된다. 엉덩이가 들썩 거리며 창 밖의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게 된다. 아... 햇살 죽이네...
머리를 다시 한번 질끈 묶고 힘을 내서 5분을 집중한다. 좋아! 일단 50개 다 읽어 외우려 하긴 했다. 밥 먹고 나서 확인하면 된다.
지하 1층, 그곳도 전쟁터이다. 힐링 스페이스. 우리의 힐러인 도서관 내 식당 조리사님이 계시지만, 진정한 힐러는 사실 매점 아저씨이다.
우리는 각자의 도시락을 가지고 지하 1층에서 접선한다.
오전에 뭐 공부했는지, 집중은 잘 됐는지 서로 공유한다. 서로 싸 온 도시락도 셰어 한다. 오후에는 뭐 할 건지 언제까지 도서관에 있을 것인지 공유한다. 알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봉을 뽑을 것이란 것을. 우리가 원 투데이도 아니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도 인사치레는 하는 게 이곳의 룰이다.
언제 우리는 이 돌고 도는 퀘스트를 끝낼 수 있을지. 목적 없이 이 도서관을 배회하고 자리만 지박령처럼 잡고 있는 할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취업이라는 다이아를 위해 뛰고 있다. 작년에 나는 1차를 붙고 브론즈에서 탈출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2차에 보기 좋게 안녕을 고하면서 나는 다시 올해 브론즈로 강등되었다. 버리려 했던 퀘스트들도 다시금 수집했다. 뭐든 오래 할수록 돈이 들어가니 작년 기출문제, 작년에 이용했던 아이템들이 지금도 필요하다. 이건 부모님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뭐든 강동은 힘이 빠진다. 매년 이렇게 등급이 올라 아름다운 탈퇴를 못하니.... 매일 이곳 도서관이 집보다 회사보다 더 나의 하루를 채워주는 곳이 된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친구와 더는 서로 지체하지 말자며 힘을 내자고 하며 점심을 마무리한다. 소화도 시킬 겸 도서관 밖에 나가 한 바퀴 돌려하다가 오늘은 그만두기로 했다. 오전의 시간 허비가 사치가 되었다.
자리로 돌아와 다시금 오전에 외웠던 단어를 되새겨 본다. 그럼 그렇지.... 절반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 토플점수가 오를 리가 없다. 요즘 영어는 기본인데.... 마음만 조급해지니 더 안 외워진다. 진짜 이럴 때는 내가 원어민이고 싶다. 우리 부모님은 왜 국제결혼을 안 하신 건지... 다시금 단어를 고집스레 외운다. 내가 오늘은 꼭 50개 마스터하고 간다!
2시 반쯤 되니 약간의 식곤증이 나를 괴롭힌다. 이런.... 전투 중 내 피셜 기준 가장 괴로운 녀석이다. 커피를 다시금 타면 그 사이 잠이 좀 달아나겠지.... 이번에는 진하게 맥*을 타먹으려 한다. 맥*스틱을 하나 들고 정수기 앞에 서서 스스로의 볼을 두어 번 때려 본다.
그래... 정신 차려!
눈물이 찔끔 났다. 아파서라기보다는 스스로가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이다. 그래... 힘을 내야지! 벌컥 커피수혈을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다름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엉덩이가 무거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다시금 에*팟을 끼고 백색소음 ASMR에 귀를 기울이며 단어를 외운다.
오후 5시쯤 되자 이제 좀 집중이 되기 시작한다. 그래 좋아! 첫 번째 퀘스트는 이쯤 하고, 이제 두 번째 퀘스트인 한국사를 하자.
모든 공무원 입시, 대기업 입시의 교양 지침이자 필수인 한국사능력시험! 곧 시험은 2주 뒤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붙어야 응시한 곳의 지원서에 한 줄을 넣을 수 있다!
헷갈리는 인물들을 외우고 형광펜을 들어줄 쳐가며 정리한다. 아... 노트 필기 기갈나게 예쁘게 하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악필일까? 다꾸에 소질이 없던 나의 소녀 시절을 떠올리며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 채 아직도 단원 제목 하나 제대로 못썼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렇게 1시간이 흐르자, 핸드폰이 밝아지며 깜박거린다...
아! 벌써... 저녁이네...
매일이 그렇듯, 친구가 지하 1층에서 접선을 요구한다. 그래 간다 가!
이곳도 자리가 없으면 재 때 못 먹는다. 그럼 우리는 이 힐링 스폿을 이용하기 위한 쿨타임을 강제로 가져야 한다. 이건 정말인지 시간나비를 자초하는 것 아닌가!
부리나케 지갑을 들고 지하 1층에 가서 힐러인 마트 아저씨에게 잽싸게 카드를 내밀고 컵라면과 맥*봉을 하나 사서 친구에게로 간다. 저녁을 무겁게 먹는 건 사치이다. 나가서 외식? 훗! 그건 풋내기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린 여기서 재빠르고 저렴하게 해결한다.
그래도 저녁노을이 이런 언덕 배기의 도서관의 매력일 수도 있으니 친구와 얼린 저녁을 해결하고 도서관 밖을 나선다. 아! 멋지다. 이 맛에 저녁까지 도서관에 붙어있나?
이제 마지막 전투이다. 오늘 생각보다 성과가 별로다. 울적하지만 세 번째를 오늘의 마지막 퀘스트로 정하고 이것 만은 오늘 뽀개보자 다짐하며 토플 L/C를 시작한다. 듣기를 위해 아*패드를 꺼내 핸드폰과의 접속을 끝고 에*팟을 다시금 연결한다. 작년에 다운로드한 L/C 파일 목록에서 하나를 열어, 관련 페이지를 편다. 그래, 틀린 것을 다시 점검하자. 떨어진 아이템도 주우면 다 득이다.
20분의 듣기 모의평가가 끝났다. 휴우... 이제 채점해 볼까? 앗! 틀린데 또 틀렸다. 오답노트를 만들어야겠군. 일단. 그래도 패드 접속한 김에.... 릴스 하나 볼까? 아니야. 이따 집에 가서 보자. 그건 하수나 하는 짓이라고!
도서관 마감인 10시를 채우고 가리라! 하지만 지금은 9시. 휴우... 1시간이나 남았다고!
이럴 때는 약간 마음의 Chill을 위해 릴스 봐줘야겠다. 아이씨! 오늘 만이야!
그렇게 9시 50분쯤 도서관 마감 안내 멘트가 나온다. 가볍고 상쾌한 음악이 내 마음과 정 반대이다.
이제 우리는 강제 로그아웃한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로그인과 로그아웃의 삶.
난 5년 차, 도서관 고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