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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Sep 27. 2022

상하이, 홍콩, 서울의 전설들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 도시의 전설들과 미신

- 세 도시의 풍수 전쟁



첫 글을 올리며


  역마의 살이 들린 지난날 황해의 연안을 따라 서울 상해 홍콩에서 살며 공부를 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유명한 얘기도 있고 잘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기왕 이야기들이 내게 왔으니 내가 잘 엮어 보면 이미 있던 이야기라도 다시 살이 붙고 새단장을 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세 도시를 여행하듯 살며 나를 가장 매료 시켰던 것은 하늘을 찌르며 서있는 건물과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경관도 있었지만 그 건물과 경관에 얽혀있는 사람들이 살아온 또 살아가며 만든 이야기들이었다. 

스마트 폰이 모든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고 양자역학의 과학이 발달하여 우주의 신비를 밝히여는 현대에도 사람들은 전설을 만들어 내고 과학으로는 셜명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세 도시의 물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들었던 얘기들에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또 살을 붙여 전해 본다. 이미 갔던 곳을 떠올리며 또 새로 가게 된다면 그 장소에 얽힌 전설과 미신 풍습들을 알게 된다면 그 또한 재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한다고 하여도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이미 문화로 자리잡아 있는 것들은 고치기가 어렵다.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도 없고 증명을 할 필요도 없는 문화들이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풍수지리는 아마도 중국에서 만들어 져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유구한 세월 속에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모든 미신들이 파괴되고 나서도 홍콩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100년이나 당하고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상해와 홍콩은 풍수지리를 가지고 풍수 전쟁이라고 할정도의 해프닝을 겪었고 서울 역시 철저하게 풍수지리 사상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이다. 이 세 도시의 풍수지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아보고 여행 때에 이곳을 찾아가 보는것도 여행의 한 묘미가 될 것이다.




 - 상 해-  


음기의 도시, 일본도 논란 

  상해는 청나라 시대부터 독일 일본 프랑스등 열강의 조계지로 발달한 도시이다. 

열강들이 각국의 영사관과 자치구를 설치하고 치외법권 지대를 유지하면서 어촌마을이었던 상해를 급격하게 발달 시켰다. 

상해의 바로 근처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남쪽의 서울인 남경과 송나라 때부터 유구한 항구 도시 였던 동양의 베니스라는 항주가 있지만 열강들은 중국의 자극을 피하기 위해 남경과 항주의 중간 지역에 조계지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상해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고 2차 대전과 국공내전을 거치며 각지의 난민들이 유입되어 신흥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동안 죽의 장막에 가려있던 상해는 개혁개방 이후 다시 한번 부흥기를 갖게 되고 세계의 자본이 들어오게 된다. 이때 상해의 구시가지 건너편 신시가지를 개발하면서 풍수전쟁이 시작된다. 

상해를 관통하는 황푸강의 동쪽(푸동 浦東)은 조계지 시절에 발달한 구 시가지 이고 상대적으로 늪지대였던 황푸강의 서쪽 (푸시 浦西) 지역은 개혁개방 이후에 발전을 시킨다.

  중국의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상해의 상징인 동방명주가 세워지고 금무대하라는 과거에는 동양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세워진다. 

하지만 일본계 자본에서 푸시에 금융센터 건물을 세우면서 상해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다. 

이 빌딩의 디자인이 일본도를 닮았다는 말이 떠돌면서 남경 대학살이 벌어진 남경에 얼마 멀지 않은 지역에 일본도와 꼭닮은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에 상해 사람들은 매우 분노를 한다. 


  이 건물이 상해의 상승하는 기운을 깍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사람들은 건물 건립에 반대를 한다. 

하지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해에서 중국 자본으로 더욱 높은 상해타워를 세우게 된다. 

단순 해프닝 같아 보이지만 상해의 발전에 외국의 자본이 들어오고 이 자본을 이용해 다시 중국의 자본이 성립되는 중국 발전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본다. 


왼쪽이 일본도 모양을 닮아 논란을 일으킨 금융센터 가운데가 새로 지어진 상해타워 가장 우측이 가장 오래된 금무대하이다.

  
  상해는 음기가 많은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고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가 자주 있기 때문에 이런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해는 여성의 기가 강하고 남성들이 쥐여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성들이 요리와 육아를 도맡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것 또한 음기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농이 많다. 


  이러한 음기가 강한것은 여기에 사는 용 때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용과 관련하여 상해의 중심가인 인민광장 근처의 고가도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고가 도로는 상해를 남북으로 가르는 도로가 만나는 지점인데 연안로(延安路)와 성도로(成都路)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 고가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한기둥만 특이한 용무늬가 세겨진 기둥이 있다. 


  이 기둥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여기에 고가도로를 만들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기둥에 문제가 생겨 도로를 연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회사들이 덤벼들어도 기둥이 세워 지지 않자 결국 상해의 작은 절인 정안사의 스님에게 물어보게 되는데 그 스님은 자신이 이 이유를 알려줄수는 있지만 이것을 발설 하면 수명이 단축 될것이라고 말한다. 

이유인 즉슨 그 도로가 백룡(白龍)의 등에다가 기둥을 세우려고 하고있기 때문에 용이 당연히 자기 등에 기둥을 세우도록 가만히 놔두질 않는 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기둥에 백룡이 자기 몸이라고 착각하도록 용무늬를 새기면 기둥을 세울 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건설사는 용무늬 기둥을 성공적으로 세울수 있었고 상해의 도로는 남북이 뚫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스님을 얼마 안되 목숨을 다했다는 전설이다.



상해의 남북을 가로 지르는 연안로 고가


용무늬가 새겨진 연안로와 성도로의 교차지점의 기둥


 하지만 홍콩에 오고 나서 이와 같은 해프닝이 홍콩에서도 매우 똑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콩은 중국이 개혁개방이 되기 전에 아시아의 중심지였다. 

아마 상해를 개발하던 사람들은 홍콩을 본따 상해를 개발했을 것이다. 

실제로 상해의 많은 것들은 홍콩과 닮아있다. 홍콩의 양안의 야경과 그 사이를 운행하는 페리선 물 밑으로 뚤려진 해저 터널과 마천루들 그리고 금융의 중심지라는 위상은 두 도시를 비슷하면서도 경쟁하는 도시로 만들었다. 

과연 홍콩의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상해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지 흥미진진한 포인트 이다. 그럼 상해의 풍수지리 사건과 매우 유사한 홍콩의 원조 풍수 전쟁에 대해 알아보자


 



-홍  콩- 


화룡의 도시 중국 칼 논란

  홍콩은 상해와는 다르게 영국의 직접 통치를 받았다. 

조계지였던 상해와는 다르게 홍콩은 식민지배를 받았고 개혁개방의 시기 이전에 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 말 중국으로 반환 시기가 다가오면서 홍콩인들은 불안에 떨었고 이러한 심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풍수전쟁이라고 불린 사건을 촉발하게 된다.

 

  중국 반환을 얼마 앞둔 홍콩섬에 중국은행에서 빌딩을 세우게 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칼과 같다고 하여 많은 홍콩인들이 반대를 한다. 

이 건물의 그림자가 마치 칼모양 처럼 홍콩의 총독관저에 드리운다고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우연의 일치인지 홍콩의 신임총독이 관저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홍콩 사람들은 중국은행의 건물의 칼같은 기운이 홍콩을 헤친다고 방법을 강구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국은행 건물의 맞은편 HSBC 건물에 매우 거대한 대포와 같은 곤돌라를 설치하여 그 기운을 억누르고 중국은행 주변 건물에 거대한 사자상을 설치하여 이 건물의 기운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또한 신임총독이 공식적으로 관저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기 까지 하였고 버드나무를 심어 이 칼의 기운을 비껴내려는 진압풍수를 펼친다. 


  이 풍수 전쟁은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다. 어찌보면 단순한 해프닝 같지만 이 배경에는 홍콩에 침투하려는 중국과 이에 저항하는 홍콩인들의 내면세계가 현실에 반영되어 풍수지리가 실제 사람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누군가는 대포를 만들어 정면으로 저항하고 누군가는 버드나무와 같이 흘려보내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표현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홍콩의 자존심이라고 여겨지던 장국영의 자살과 홍콩 부자들의 엑소더스를 겪고 홍콩은 현재 중국에 반환되어 여러 진통 끝에 결국 아시아의 보석에서 중국의 보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것 같다. 

하지만 이런 칼날 논란까지 수입해간 상해가 점점 금융과 교통의 허브역할을 빼앗아 오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칼모양이라고 하여 논란이 된 중국 은행 왼쪽 가장 높은 건물


HSBC 은행 옥상에 세워진 곤돌라는 꼭 중국은행을 노리는 대포 모양 같다.



  상해가 음기가 강하다면 홍콩은 화기(火氣)가 강하다고 알려져있다.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고 무더운 날씨와 돌이 많은 지역이 자연히 불과 관련된 기운이 많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홍콩의 이곳저곳은 화룡(火龍)과 관련된 절과 전설이 많다. 바다와 면해 있기 때문에 홍콩 섬에 사는 화룡이 바다에 몸을 식히러 간다는 전설이 많다.


홍콩 타이항의 화룡춤


  추석이 되면 이런 화룡에게 제물을 바치고 복을 기원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화룡과 관련된 풍수지리 일화중 가장 유명한 것은  Repulse bay mansion이다. 이건물은 홍콩에서도 가장 부유한 동네인 리펄스 베이에 세워져있는데 건설 당시에 공사하던 사람이 자꾸 죽어 공사진행이 매우 어려웠다. 

풍수가를 불러 물어보니 리펄스 베이에 살고 있는 화룡이 가끔 리펄스 베이(浅水湾)에 들어가 몸을 식히는데 그 길목에 이 건물을 지으니 화룡이 지나갈때마다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이였다.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어 하는 건설에 이런 흉흉한 소문이 도니 건물주와 투자자들의 낭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설계자가 묘안을 내어 건물의 가운데를 텅 비운 설계를 제시하였다. 

빈 공간에 객실을 넣어 분양을 하면 벌 수 있는 엄청난 돈을 포기한 파격적인 설계 였다. 

이렇게 건물을 올리자 안좋은 일들은 없었고 화룡이 가는 길목이라는 소문이 퍼져 건물이 유명세를 타게 되어 집값이 공실의 부분을 메우고도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상해의 용무늬 기둥과 전개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풍수지리 일화까지 가져간 상해의 추격을 홍콩이 과연 뿌리칠 수 있을까? 

화룡의 통로를 비워두고 설계한 리펄스베이 멘션





- 서울 - 


불기운의 도시

  서울은 철저하게 세워질 때부터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세워진 도시이다. 

애초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풍수를 의뢰하여 세워진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처음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에 왕십리쪽에 정하려고 하였지만 무학대사의 꿈에 도선대사가 나타나 십리를 더가라고 하여 지금의 자리에 궁궐터를 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발생한 지명이 왕십리(往十里)이다. 서울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한 풍수지리상으로 북악산이 또한 불의 기운을 띠는지라 서울안은 화기가 가득한 도시라고 한다. 

개국 초기에 도읍을 정하며 대신들과 풍수를 논할 만큼 풍수는 그 당시에는 과학이고 학문이었기 때문에 서울은 이 불기운을 막는 설계를 하였다. 

일단 남대문은 숭례문으로서 불기운을 막기 위해 현판을 세로로 썼다. 

이것은 숭례문에 불기운을 더하여 맞불 작전처럼 미리 불을 놓는 작전이다. 또한 서울 곳곳에 해치(해태) 바다 괴수상을 세워 불기운을 막게 하였다.



광화문 앞의 해태
경복궁안의 해태
남대문 경찰서 앞의 해태



  또한 경복궁의 입구를 동쪽으로 내려고 하였는데 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다가 결국 남쪽으로 입구를 내었다. 

그때 무학이 남쪽으로 입구를 내면 200년뒤에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200년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이 타버리는 화를 겪게 된다. 

이처럼 서울은 화기를 잡으려는 풍수지리가 강하다. 대표적으로 관악산에서 나와 한강으로 흐르는 화기를 잡기 위한 노력이 있다. 

북악산에서 나와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을 지난 화기는 남재문을 빠져나가 한강으로 들어가는데 이 화기를 따라 한강로가 서울의 중심을 가로 지른다. 

이 길은 당연히 청와대와 명동등을 지나기 때문에 각종 기업의 본사들이 이길을 따라 들어섰는데 기업들이 화기를 막지 못하여 도산해 버렸다는 후문들이 들린다. 

이 화기를 피한 기업들은 이름이 아예 물에서 나온 해치의 이름을 딴 기업이거나 큰 바다의 이름을 지닌 기업 사각형이 아닌 건물을 지어 화기를 분산한 기업들만이 살아 남았다는 세간의 평가이다. 

이 길을 따라 들어선 건물들은 나름의 풍수적인 방도를 두었는데 입구를 대로변이 아닌 골목쪽으로 돌리는등 나름의 풍수적인 노력을 하였다. 



이름에 태평양이 들어간 기업 



  이렇게 물과 관련되어 화기를 누르고 성공을 이루어낸 기업이 있는가 하면 이길을 따라서는 대우그룹, 갑을그룹, STX등 많은 기업들이 불처럼 성장하였다가 불처럼 사그라진 경우가 많다. 

현재에도 이길을 따라서 들어서는 기업들은 입구에 코끼리 상을 설치하기도 하고 분수를 설치하기도 하여 알게 모르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운을 억누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은 최근 화기를 막아주던 남대문이 불에 타버리는가 하면 광화문에는 촛불시위가 일어나는 등 화기를 잡지 못하여 나라에 환난이 생기는지 환난이 생기기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지는 알 수 없는 형국이다. 

롯데 타워와 같은 건물을 세우면서 상해와 홍콩과 같은 그럴싸한 이야기거리를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고 호수 공원의 물이나 빨아 먹는다는 평가를 받으니 기왕 세우는 것에 재미있는 스토리를 곁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라도 그저 자본의 논리나 개발의 논리가 아닌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물과 관련된 조형물이나 공원을 세워 홍콩과 상해의 풍수지리 스토리 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을 치료하고 관광의 명소가 되는 무엇인가가 생기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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