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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Sep 11. 2023

동티살 (3)

(1), (2) 요약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여자친구와 이별로 힘들어하던 김대리는 이런 불행이 어디선가 주워온 핸드폰에 낀 동티살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던 와중에 몰래 마음에 두고 있던 여직원이 사내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106

(1)화 보러 가기




이선주 사원과 김부장을 뒤로하고 커피집을 나오자 맞은편에 번쩍거리는 쉘부르라는 야자수가 그려진 간판이 보였다. 소리 없이 번쩍 거리는 네온사인이 왠지 시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다음날 자리에 앉자 이선주 사원이 메신저를 걸었다.


[대리님 어제 잘 들어갔어요?]


[네... 배가 고파서 국밥 한 그릇 혼자 먹고 들어갔습니다.]


[어머 왜 혼자 드셨어요? 다음엔 저랑 꼭 같이 먹어요!]


[아. 네네... 선주씨도 국밥 좋아해요?]


[그럼요? 제가 국밥 얼마나 좋아하는데! 을지로에 제가 아는 집이 있는데 꼭 같이 가요.]


[그럴까요?]


그녀는 한참이나 국밥집 설명과 같이 갈 사람들 멤버를 고르고 골랐다. 회사는 다시 예전의 지루한 업무와 쓸데없는 가십들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문득 책상 위에 깜박 하고 놔둔 동티살 낀 깨진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들고 부장의 자리로 갔다. 부장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선주 사원이 어제와 같은 동그란 토끼 눈을 하고 시선으로 내 뒤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부장님?"


"어... 어? 아함~ 아오 어제 오래간만에 집에 가서 애기들이랑 놀았더니 피곤하네"


"이 핸드폰 충전하니까 전원 켜지더라고요. 고쳐서 쓰세요."


"어? 어.. 그래 내가 고쳐서 쓸게. 그거 주려고 온 거야?"


"아.. 아 네... 갑자기 생각나서요"


"그래 고맙다."




핸드폰을 무슨 소중한 꿀단지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받으며 눈으로 씨익 웃는 부장의 포동포동한 얼굴이 피글렛을 닮은 것 같아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며칠이나 흘렀을까? 나는 이제 또다시 직원들의 술자리나 모임에 끼지 않고 바쁘다는 핑계로 겉돌았다. 이선주 사원은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하기는 어쩐지 어색했다.


상반기를 결산하고 하반기를 시작하며 부서사람들은 또 회식을 했다. 나는 밥만 먹고 빠졌지만 이미 그때부터 모임자리는 급하게 마신 술들로 흥청이고 있었다.


다음날 회사에 오니 다들 숙취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와중에 신 과장과 오 과장이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인사팀 직원과 카페테리아로 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되죠"


신 과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카페테리아에서 들렸다.


"아니 제가 똑똑히 봤는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아니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요."


무슨 일인가 싶어 커피도 한잔 내릴 겸 카페테리아 쪽으로 갔다. 인사팀 직원이 정장을 입고 와 있었다. 신 과장과 오 과장 그리고 몇몇 여직원들이 카페테리아에 인사팀 직원과 있었다.


"제가 김 부장이 이선주 씨 몸을 만지는 걸 똑똑히 봤다고요."


신 과장이 팔짱을 낀 채 얘기를 했다.


"신과장님 저희도 양측 얘기 다 들어봤고요. 피해자 분은 이 일이 공론화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인사팀 직원은 이미 난처한 얼굴이다. 신과장이 그말을 듣고 더 격앙되어 말한다.


"아니 그렇다고 이 일을 덮어요? 혹시 김 부장 말 듣고 그러는 거예요?"


신과장은 계속 인사팀 직원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듯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선주랑도 얘기해봤고요. 선주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회사 측에서 이 일을 덮으면 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회사에서는 두 분 진술을 다 들었고요... 회사에서는 처벌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계속 김 부장을 비호하겠다는 거죠?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알아보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니 부장도 자리에 없었고 이선주 사원도 자리에 없었다.


"무슨 일 있어요? 신과장님 굉장히 화가 났는데?"


사원 둘이 의자를 붙여놓고 소곤소곤 얘기를 하고 있길래 물어봤다.


"아.. 김대리님은 어제 회식 일찍 가셨죠? 3차부터는 다들 완전 꽐라 됐거든요."


"어휴 진짜 엄청 마셨지"


"근데 아.. 생각만 해도 더러워 김 부장이 이선주 씨 꽐라 되었는데 몸을 막 더듬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오 과장 말로는 정신이 있었다던데?"


"아 정신이 있었으면 더 끔찍하다... 으... 극혐"


"아니, 근데 회사에서는 김 부장 편을 든다면서요?"


"김대리님 이게 말이 되요? 술 마시고 뻗어 있는 사람을... 나이차가 도대체 몇 살이야?"


"그러게..."


"야.. 김대리님이 이선주 사원 좋아했잖아"


다른 사원이 쿡쿡 찌르며 말을 하길래 못 들은 척하고. 자리를 피했다. 팀 분위기가 도저히 일을 할 수 있을 분위가 아닌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5분 정도 걸어 회사 뒤 작은 공원으로 갔다. 작고 통통한 뒷모습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지 뒤로 스프링 같은 꼬리가 나올 것 같은 피글렛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내가 준 동티살 붙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부장님..."


"후.... 우.. 아 김대리 너도 담배 피우게?"


"아니요.. 저는 됐습니다."


"김대리도 들었지? 소문?"


"네... "


"김대리 뭐 안 믿겠지만 나 그런 놈 아냐.."


"네... 저는 두 분..."


‘사이 알아아요.’ 까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막혔다. 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 둘의 유일한 증언자가 되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왜 그랬어요?"


"하.. 너도 안 믿는구나? 뭐 됐다."


"왜 그랬냐고 이 XX새끼야!"


"뭐? 너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그냥 참고 있다고 너까지 나를 성추행범 취급을 해? 너 걔랑 나랑은!"


"닥쳐! 닥치라고 이 새끼야!"


당황하는 부장을 뒤로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 역시 소문만 수군거릴 뿐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이선주 사원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부장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부장은 그 뒤로 내가 잠시 외근을 나간 사이에 회사에 와서 이선주 사원에게 가서 증언을 다시 하라고 시끄럽게 했다고 전해 들었다.


신 과장과 오 과장이 가서 경찰에 신고한다며 맞섰고 오 과장이 집에 까지  알려져서 큰 일 만들지 말고 좋게 퇴사를 하라고 중재했다고 했다. 신 과장은 끝까지 회사에서 이일을 덮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과장이 김 부장을 달래서 인사팀과 유리한 조건으로 자발적인 퇴사를 했다고 들었다.


그 다음 인사발령에 오 과장이 차장으로 승진하여 퇴사해 버린 부장 대신 업무를 진행했다. 회사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메신저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에게서 대금 납부 능력을 상실한 D전자가 정부의 지원으로 물품 대금의 일부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사무실 정리 도와달라 해서 가보니 어머니가 와 게셨다. 아버지의 빚이 청산되고 조금씩 다시 들어오는 주문을 두 분이서 처리하고 계신다고 했다. 어머니 차려준 밥을 오랜만에 먹었다.




[김대리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이선주 사원의 메신저였다. 한참 답변을 입력을 못하고 망설였다.


[아.. 별일은 없는데 무슨 일이죠?]


[김대리님 드릴 것도 있고 저번에 알려주신 을지로 국밥집 가볼래요?]


[그래요 이따가 퇴근하고 같이 갈까요?]


[아뇨 저는 반차 쓰고 처리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계 세여 시간 맞춰 갈게요.]


금요일 7시 반의 국밥집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혼자서 반 병 정도 마셨을 때 이선주 사원이 나타났다. 청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났다. 가을을 맞아 향수를 바꿨는지 달콤한 향이 아닌 은은한 난초 꽃 향기가 났다. 하얀 쇄골이 우중충한 국밥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 찐 맛집 바이브다. 그렇죠?"


"아 미안해요 늦을 것 같아서 미리 시켰어요."


"아 괜찮아요! 저도 똑같은 거 먹으면 되죠?"


소맥을 따르고 조금 기다리자 안주가 나왔다. 이선주 사원은 국밥을 야금야금 조금씩 잘라먹었다. 소맥도 몇 잔을 말아서 시원하게 건냈다. 잔을 건넬 때 하얗고 가는 손목에 작은 하트 모양 펜던트가 달랑거리는 백금 팔찌를 바라보았다.


회사 돌아가는 얘기 요즘 인사발령 얘기, 우리 부모님 사업이 다시 정상화된 얘기들을 했다. 마치 김 부장과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 부분만을 도려낸 채로 말을 했다. 이선주 사원과 나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


"김 부장님 연락해요?"


 이선주 사원이 오면서 가져온 테이크아웃 음료수 안의 얼음이 다 녹아서 물이 됐을 때쯤 나는 불쑥 말을 꺼냈다. 나조차고 말을 뱉어 놓고 이 말이 왜 나갔는지 어떻게 나갔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말이 먼저 날아갔다. 그 말은 이선주 사원의 웃는 표정으로 날아가 꽂힐 것만 같아 무서웠다.


"김대리 님은 우리 사이 알았죠? 그 회식날?"


"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발령 오고 나서 나를 잘 챙겨주고 일도 많이 알려줬어요. 나 미친 여자 같죠?"


"......."


"김 부장님이랑 회식 자리에서 그런 일이 생기고 회사에 불륜녀로 알려지느냐... 성추행 피해자로 남느냐..."


이선주 사원이 갑자기 몇 살은 더 나이 든 표정으로 말했다. 내 쪽으로 꼬아 내린 그녀의 발끝에 구두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김 부장님은 그렇게 혼자 다 뒤집어쓰고요?"


"김대리님이 나서서 증언해 주시지 그랬어요? 쟤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다. 이선주도 똑같은 년이다. 그러시지 그랬어요?"


"........"


"김 부장님도 그러자고 했어요.. 자기가 자발적으로 나가는 조건으로... 집에도 알리지 않고 회사에서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요."


그녀가 마지막 남은 소맥 잔을 비웠다.


"우리 나갈까요?"


계산을 하고 밤거리로 나왔다. 계절은 가을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공기가 조금은 더웠다. 사람들은 아직도 거리에서 바쁘게 오고 가고 있었다.


"아! 맞다. 김 부장님이 이거 김대리님 거라고 돌려주라고 했어요"

이선주 사원이 가방에서 화면이 깨진 까만 핸드폰을 꺼냈다. 예전에 내가 김 부장에게 건넨 동티살이 붙은 핸드폰이었다.


"이런 핸드폰이 뭐라고... 김 부장님이 꼭 김대리님 드리라고 그러던데..."


"김 부장을 다시 만났어요?"


"아... 회사 증언 하느라.... 뭐 그 뒤론 다 정리 됐어요.."


"그 핸드폰 내 것도 아니에요 그냥 버려요"


"그래도 아깝다. 중고나라에 팔아도 되겠던데? 아참 나도 폰 바꿨어요. 겸사겸사 번호도 바꾸고."


그녀가 아무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은 새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그녀에게서 동티살이 붙은 핸드폰을 받아 사람들이 남은 테이크아웃 잔들을 가득 버려놓은 지하철 환기구 옆에 놓았다.


"소금.. 있어요? 굵은소금"


"네? 갑자기 웬 소금이요?"


나는 소금을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동티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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