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계속 인연을 맺고 싶은 강사님들의 특징
기업이 계속 인연을 맺고 싶은 강사님들의 특징
매년 12월이면 기업에서는 한 해 열심히 달려온 사원들의 사기를 충전시키고 내년에 기업의 목표에 추진력을 더해줄 명사를 초빙한다. 나 같은 기업 내 교육 담당자들은 누가 우리 기업의 트렌드와 핵심 메시지에 부합하고, 또 잘 전달해 줄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여러 명사들을 찾아 나선다.
유명하신 분이라 삼고초려로 모셨으나 섭외 과정에서 혀를 내두르거나 상사에게 된통 혼날 때도 있고,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다음 계약을 이어나가는 강사님도 계신다. 그분들의 대체 어떤 점들이 기업과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는 힘이 되는 걸까?
교육 담당자인 내가 회사의 요청으로 강사를 섭외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다섯 가지가 있다.
1. 강사의 콘텐츠가 현재 우리 기업의 지향점과 일치하는가?
2. 참석자들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는 콘텐츠와 강의력인가?
3. 강사의 삶이 그분이 주장하는 메시지와 일치하는가?
4. 강의를 요청한 기업의 특성을 강사가 이해하고 강의에 녹이기 위해 애쓰는가?
5. 비용은 적합한가?
신기하게도 유명한 강사, 몸값이 높은 강사가 5번을 제외한 네 가지를 다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TV에도 자주 출연하셔서 인지도를 믿고 섭외를 요청한 분이 계신다. 시간당 500 정도 되는 금액이었지만 강사님을 믿고 큰 행사에 초청했는데 행사가 끝나자마자 상부로부터 된통 혼났던 기억이 난다. TV와 똑같은 내용을 직접 와서 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말에 그런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섭외한 것에 반성했다. 몇 년 전, 한 강사님의 콘텐츠가 자사에 적합했으며, 출판을 통한 공신력도 검증된 터라 섭외를 의뢰했다.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적힌 글들로 인격도 뛰어난 분이라 생각했지만, 계약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에 실망하고 말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라 진행은 했지만, 두 번 다시 그분과 인연 맺는 일은 없도록 하고 페이스북에서도 조용히 친구를 끊었다. 강사가 아무리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일이라 하지만 이왕 포장하는 거면 좀 더 철저했으면 한다.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보이는 하류 장사치 같은 태도, 막무가내 셀럽처럼 사측으로 과한 요구를 하거나 권위주의적인 태도, 생각하면 할수록 불편한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섭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마음이 상한 적이 많다. 동시에 회사의 요구 사항을 여러 차례 미팅을 통해서 전달했지만, 자사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서로가 속상한 적도 많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사님들은 초반 미팅부터가 다르다. 18년도에 쿠 퍼실리테이션에 강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참여식 교수법 강의를 요청한 적이 있다. 홈페이지로 접수를 한 얼마 후, 담당 강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내부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셨다. 보통은 기본 짜여 있는 커리큘럼 기획안을 보내주시는 게 전부였는데 확실하게 맞춰 주시는 기분이었다. 30분에서 한 시간 이상의 인터뷰를 한 후, 기획안을 작성해서 보내 주신다고 했다. 교육 전에도 명단을 받아서 학습자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셨고, 교육 내내 모든 참여자가 만족할만한 콘텐츠와 태도로 최선을 다 해주셨다. 식사할 때 그분께서 하시는 이야기, 선한 눈빛과 말투에서 나와 팀장님은 진심으로 그분께 감동했고, 이후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이어나가는 관계가 되었다. 아마 그때 그분의 열정적이고 선한 태도가 아니었다면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또 다른 강사님도 마찬가지다. 처음 그분께 감탄한 건 자사의 상품에 대해 내부 관계자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오셨다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모든 강사님이 그러지 않는다. 아무리 길게 사내 상황을 브리핑해서 보내준다 한들, 질문 한번 없으시거나 제대로 읽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들에게는 다음이 있다. 본사 측에서 전속 계약을 맺고 계시기도 하지만, 내부에서도 모시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건 정말로 우리와 한배를 타고 이해하려 하며, 끊임없이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시는 모습이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섭외가 여러 사정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그분들은 항상 그다음을 보고 계신다. 회사에서 기획안이 통과되지 못해 모시지 못한 많은 강사님께서는 마음의 빚을 남겨주신다. 죄송한 마음으로 연락드리면 기분 좋게, "괜찮습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음에 또 다른 기회를 내가 만들지 않고서는 안 되게 말이다. 그러면 정말 마법처럼 그분들을 다시 모실 기회가 반드시 온다. 그분들의 선한 영향력이 교육 담당자인 나에게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 담당자들 또한 강사님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콘텐츠 개발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단순히 제시된 금액으로만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격 절충은 비용 지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만약 강사님들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절충해 주신다면 비용 외적인 측면(모시는 과정이나 비용을 처리해 드리는 속도)만큼은 불편하지 않게 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 먼 거리를 오가셔야 하는 고충도 생각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아침부터 강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가. 학습자 전원이 듣고 싶어서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끌려온 포로의 뚱한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것이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 강의하시지 않았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교육 담당자는 강의 평가가 생각보다 좋지 않거나, 현장의 반응이 좋지 않아도 강의를 준비해 주시고 와 주신 것에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게 먼저다. 전달해야 하는 피드백은 현장의 의견을 모두 모은 후 하루 이틀의 기간을 두고 2차 미팅을 하는 것이 좋다. (모 기관에서는 외부 강사를 앉혀놓고 수고와 감사를 표현하는 대신 질책하는 모습을 봤다) 나도 강의를 하는 사람이지만 교육이 끝난 강의실에서 상사가 나를 질책하듯이 피드백하면 그 내용이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네가 해라) 멀리서 오신 강사님들은 오죽하실까. 해당 기업과 다시는 연을 맺고 싶지도 않을 거고, 그 태도는 일파만파 강사님들 사이에 퍼질 것이다.
강의 섭외와 계약은 메일, 전화, 서류상으로 주로 이뤄지는 일이다. 기업의 필요 때문에 이루어지는 거래지만 그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제안도, 행정업무도, 강의도, 의사소통도 다 사람이 한다. 그렇다면 강사와 교육 담당자는 무엇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위에 나열된 다섯 가지의 기준은 강사를 섭외하는 기준일 뿐이다. 중요한 건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존중이 바탕이 된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큰 기업의 교육 담당자라고 해서, 내가 유명한 강사라고 해서 보이는 타이틀만 믿고서는 모두가 WIN-WIN 할 수 없다.
연말 연초는 너도나도 좋은 강사를 섭외하기 위해 바쁜 시기다. 역량 있고 인지도도 높은 강사인데 '왜 나를 부르지 않지?'라는 생각이 드는가? 또는 '우리 기업은 나름대로 유명한 곳인데 강사님들이 오시길 꺼려시지?'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오늘'만 있는가, 아니면 '다음'이라는 가능성도 함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