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원하지 않던 내가 병원 예약을 하기까지
결혼 5년 차.
이 숫자를 혀끝에서 굴려보면, 묘하게도 동그란 사탕 같은 느낌이 난다. 달콤하지는 않지만 익숙하고, 오래 품고 있어도 녹지 않는, 그런 부드러운 무게.
함께 지나온 계절들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알아갔고, 예측 가능해진 일상 속에서 오히려 안정이라는 작은 사치를 누렸다.
반복되는 일상이 연속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나이에 나도 모르게 초조해 졌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전히 미래에 대한 그림을 선명하게 그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주 조용한 순간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한 번도 진지하게 바라본 적 없는 이미지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물렀다. 마치 낯선 향기가 방 안에 가만히 스며들듯,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이른 이혼을 겪으며 자란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품은 따스함보다 그 이면의 균열을 먼저 배웠다. 청소년 시절의 기억은 종종 차가운 벽지의 촉감처럼 되살아났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집, 동생들에 대해 쌓여만 가는 죄책감,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숨 쉬는 법을 익혀야 했던 나. 그 시간들은 내 안에 깊은 물음을 새겼다. 과연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나는 그것을 원하기는 할까?
스물 둘, 글쓰기 교양 시간에 어머니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며 과연 내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했다. 희생이 어울리는 단어였을까. 헌신? 아니면 그저 여성 그 자체? 물론 엄마도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희생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났다. 그걸로 엄마는 행복했을까? 내 기억의 엄마는 가족을 떠나고도 행복하지 못했고, 한동안 여러가지 일들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괴로워 했다. 아빠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동시에 부담감을 내비치는 두가지 모습으로 내게는 아버지라기 보다는 '인간' 그 자체로서 갈등하는 존재였다.
결혼 후 만난 시어머니도 그랬다. 헌신과 희생이라는 단어 자체를 대변하는 듯해보였지만 내겐 그 삶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엔 시어머니의 이름이 지워졌고, 누군가의 '엄마'가 대체했으며, 성인이 된 자녀들은 지워진 시어머니의 이름을 메꿔줄 수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물론 부모의 대명사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가까운 이들을 통해 느꼈던 것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헌신이 있었지만, 동시에 지워진 자기 자신의 이름.
나는 두려웠다. 내 삶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이기심으로 낙인찍힐까 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 나를 결함 있는 사람으로 만들까 봐.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마음의 문을 닫았다. 아이라는 가능성 앞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결혼 초기, 남편은 조심스럽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눈에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단호했고, 그의 얼굴에 스친 작은 좌절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두 사람 사이의 온도 차. 남편도 분명 내 단호함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 틈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메워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단절시킨 그 이야기를 내가 꺼내야 할 순간이 올 거라는 것을.
코로나 이후로 취미로 읽기 시작했던 로맨스 소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열망과 갈등,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이 좋았다. 하지만 늘 마지막 장면에서 멈칫했다. 해피엔딩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결혼, 그리고 그 너머의 출산. 마치 사랑의 완성을 증명하는 인장처럼 찍히는 아이의 존재. 왜 모든 로맨스의 결말은 아이를 낳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오래 곱씹었다.
어느 날 문득, 하나의 답이 보였다. 아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연속이 아니라, 상징적으로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 세계에 뿌리내렸다'는 증표인 것이다. 추상적이던 감정이 살과 피를 가진 실체가 되는 순간.
시간이 흘러도 남을 무언가, 사라지지 않을 흔적.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그 결말을 거부했을까? 어쩌면 나는, 내 사랑이 세상에 뿌리내리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뿌리를 내리면 도망칠 수 없으니까. 흔적을 남기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나는 자유롭고 싶었고, 가벼운 존재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부담도, 의무감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소소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우리 둘 사이에,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게 무엇일까?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가꾸고 또 닦아냈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부드러워졌고, 어긋나던 틈은 서로의 온기로 메워졌다. 그런데 문득, 이 애틋한 여정이 세월을 통과한 뒤 어떤 형태로 남을지 궁금해졌다.
그 빈칸을 떠올릴 때, 이상하게도 아이의 모습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 그건 "갖고 싶다"는 욕망이라기보다, "어쩌면…" 하고 천천히 말이 이어지는 가능성에 가까웠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서랍을 열었을 때, 예상치 못한 편지 한 장을 발견하는 것처럼.
물론 이 마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확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여리고, 결심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드러운 그림자 같은 감정이다. 하지만 변화를 인정하면 한결 편안해지더라. 원래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도, 모두 내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라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산전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보기로.
하지만 그 결심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느 저녁,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어스름 저물어 들고, 하늘이 짙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용기를 냈음에도 목소리는 내가 의도한 것보다 더 작고 떨렸다.
남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왜? 아이 싫어했잖아."
남편의 목소리에는 회의가 섞여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혹은 믿고 싶지 않다는 듯한 뉘앙스.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어내렸다. 아, 내가 단호하게 거절했을 때 그가 느꼈던 게 이런 기분이었을까. 마음을 열었는데 벽을 만난 것 같은, 손을 내밀었는데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이 막막함.
나는 결국 얼버무렸다.
"아, 그냥… 한번 생각해봤어. 별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까지 그 짧은 대화를 되새김질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음을 접을까? 이런 어정쩡한 감정은 그냥 흘려보낼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꾸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확실하게 만들고 싶다고. 흐릿한 윤곽을 선명하게 그려보고 싶다고.
며칠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여보, 우리 산전 검사 같은 거 한번 받아볼까? 그냥… 우리 몸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는 거야."
나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지만, 내 안에서는 작은 떨림이 있었다.
만약 이번에 거절하면 나 혼자라도 다녀오겠다는 마음으로.
남편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쳤다. 그의 표정에서 어떤 감정을 읽기엔 내가 너무 떨고 있었던지, 아니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읽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겠다.
"그래, 그럼 한번 가보자."
이번에는 회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운 수긍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도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처음의 거절에 상처받았다가, 그 상처를 받아들이고, 다시 마음을 여는 시간을.
이 결정이 반드시 아이를 낳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내 몸을 알고 싶다는 의미다.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의 나처럼 두려움으로 문을 닫아버리지 않고, 조용히 그 문 앞에 서보고 싶다는 의미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은 언제나 조심스레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소리 내 울리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마음의 테이블 위에 놓인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것도 그런 종류의 장면이다.
결말을 정하기엔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 떠오른 마음을 너무 빨리 규정하지 않을 것,
관점이 변했다고 해서 과거의 나를 부정하지 않을 것,
배우자와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에게 맞는 속도를 가장 먼저 존중할 것.
이것들이 지금 내가 배워가고 있는 것들이다.
아마 이 변화는, 내 안에서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니까.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나를 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