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찰나의 시

영가등(靈駕燈)

슬픔은 산 자의 몫이니

by 올리비아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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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靈駕)등


내가 지금 갇혀 있다

병들고 힘이 없어 도와줄 수가 없구나


외할아버지 꿈 이야기를 하던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하늘만 쳐다보셨다


꽃이 피는 오월

탄광에서 임종을 맞이한

청년의 영혼은 슬픔에 젖어

구속되어 있다


전하지 못한 사랑의 후회

어린 네 자식에 대한 걱정이

깊은 미련으로 사무쳐

생과 사를 관통하는 슬픔이 되었나


지장암 앞마당

슬픈 그대 위해

새하얀 꽃 등을 달아 놓았소


슬픔은 오로지 산 자의 몫이니

미련 두고 가벼이 떠나시오

극락으로

극락으로




부친을 일찍 잃은 어머니는 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면 눈시울을 붉히셨다. 유독 어머니를 아끼셨다는 외할아버지는 강원도 탄광촌에서 젊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젊은 아내와 아직 어린 네 자식을 남겨둔 채 떠난 할아버지의 사무친 슬픔은 살아있는 내 어머니에게 아직까지 전해진다.


어느 날 할아버지 꿈을 꾸셨다는 어머니는 일어나자마자 한없이 울었다고 하셨다. 꿈에서 할아버지는 철창에 갇혀 아프고 힘이 없어 도와주지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어찌하여 죽은 이들이 살아있는 이들을 도와야 한단 말인가. 그런 모순을 어째서 우리는 죽어서도 가져가야 한단 말인가. 슬퍼야 하는 건 살아 있는 우리들이다. 죽은 이의 미련도, 애환도 온전히 우리 살아 있는 이들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몫이다.


이번 석가탄신일에 지장암 앞에 영가등을 달았다.

내 어머니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슬픔이 내 어머니에게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으면 해서.


외할아버지가 이 생의 기쁨, 슬픔, 후회, 미련 모두 이 등에 달아두고 가뿐히 떠나시길 바란다.

오로지 사랑만을 가슴에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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