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그녀를 만나는 날
"맛있는 냄새가 나는 주방에 반드시 맛있는 음식이 있듯이, 사랑스러운 공기가 감도는 곳엔 반드시 사랑이 있다."
"당신은 몸까지 떨고 있군요. 그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해요. 이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내 친구 파비앙이 말했다.
우린 어지러이 엉키고 설킨 도로 옆에 자리한 쿠알라룸푸르의 센트럴 역에서 헤어졌다. 헤어지며 진한 포옹을 나눴다. 파비앙은 뒤돌아서 거진 다 뜯기고 해진 붉은색 GREGORY 배낭을 짊어 멨다. 그는 티셔츠 2벌, 팬티 한 장을 가지고 몇 개월을 지낼 정도로 옷이 없는 여행자였으나 배낭 안은 무엇을 더 넣을 데도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이 가득한고 하니 뉴질랜드 여행에서 사용했던(몇 번 쓰고 다시는 사용하지 않은) 텐트 및 캠핑 장비, 오며 가며 주운 쓰레기(그에겐 흥미로운 물건들), 그리고 책들이었다.
그는 센트럴 역으로 이어지는 육교의 계단을 내려가, 신호등도 없는 8차선 도로를 뛰어서 가로질렀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번에 만난 것은 우연이었으나 다음에 만나기 위해선 필연이 필요했다. 이 한정된 삶에서 나는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리 슬픈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녀를 만나기 1시간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짧은 이야기에 나오는 스테파니 아가씨처럼, 축 처진 내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나는 이주일 간 사람 구경이라곤 못해본 산 위의 목동처럼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가 오다니, 꿈만 같다.
그녀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은 언제나 비슷하다. 느닷없고, 친숙하며, 어딘가 간지럽게 만든다(신체적이 아닌 정신적으로, 여기 머리 어딘가). 우린 활짝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한 발짝씩 다가간다. 10미터, 5미터, 1미터. 그녀를 만나면 이렇게 해야지, 영화처럼 안아 빙그르르 돈다든가, 주인공들처럼 아름답게 키스한다든가 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목메는 듯한 [안녕] 소리만.
아, 그 순간이 너무나 좋다. 머릿속에 녹음해두고 해마가 늘어질 때까지 틀곤 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실제로 내 앞에 재생되는 순간.
우리는 짧은 봄마저 온전히 함께 보내지 못하고 떨어져, 세 개의 계절을 서신왕래한 끝에, 뜨거운 적도의 열기가 타오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둘만의 첫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