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내 글을 보고 재밌다가도 어떤 문장에는 문득 우울해졌다고 했다.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생각에 나도 슬펐다. 적어도 3일에 글 하나는 쓰려고 했던 결심이 흔들렸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며 나의 내면을 직면하고 담담히 글을 써 내려갔던 며칠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취업 후에 내 삶은 온전히 나의 힘으로 성취한 일이 많지 않았는데, 정말 몇 년 만에 이룬 소소한 성취였다.
첫 글은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썼다. 내 스스로에게도 말하기 꺼려왔던 이야기들을 굳이 모아서 쓴 이유는 뭐랄까. 일종의 결의랄까. 이 공간에서는 솔직해지고 싶었다. 솔직해지고 싶어서 더 과장하고, 그래서 오히려 묘하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솔직하지 못한 자기소개에는 신물이 났다. 과장해서 나를 꾸미는 글만 써왔으니까. 몇 년 동안이나 나는 취업하겠다고 방구석에서 동이 틀 때까지 누추한 내 모습은 숨기고 새로운 누군가를 상상해서 묘사했다.
글로벌 비즈니스 능력과 저의 역량들이 XXX의 마케팅 업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전방위적인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고... 왈왈멍멍 후략
대충 있어 보이는 단어와 수식어를 나열해서 평생 관심도 없던 기업들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괜히 대기업이 아니다. 하기 싫어 죽겠는데 그래도 제출기일은 맞춰야 그나마 루저 신세는 면할 것 같아 억지로 폐지 줍듯이 주워 모은 문장들 사이 삐져나온 내 미천한 관심을 대기업이 모를 리 없었다.
뭐 어쨌거나 지금은 취업해서 잘 다니고 있으니 됐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공간에서만큼은 나를 꾸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쓴 글들이었는데 부모님이 보기엔 속상하셨나 보다. 내 생각보다 더.
그냥 다음 글부터는 보지 마. 그게 좋겠어.
하고 통화를 끊고는 나 역시 우울해졌다. 대체 나는 왜 글을 써서 부모님을 우울하게 만들고 나까지 우울해지는 건지. 오히려 좋아를 떠올려도 이내 오히려 좋긴 개뿔 하며 핸드폰만 뒤적거렸다.
고민하다가, 그냥 또 솔직하게 글을 쓴다. 내가 쓰는 글이 또 어떤 일상의 변화를 가져올지 나는 모른다.
이 글을 쓰려고 몇 년 만에 내 자소서를 열어봤다. 거짓부렁들만 가득 차 있었는데 그중에 SBS 라디오 PD에 지망하며 쓴 항목 하나만은 진실이었다. 그걸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책, 영화, 드라마 또는 노래 가사 속 표현 중 기억에 각인된 ‘잊지 못할 한 줄’을 선택하고 그 이유를 자신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십시오.
라디오 PD가 되어 단발이 잘 어울리고 반달눈으로 웃는 아나운서를 만나면 내 삶이 완성이 될 줄 알았던 지난날, 그러나 나는 이제 이해되지 않는 비겁함이 내 안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년 겨울, 나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언론고시 생활을 청산하고 일반기업에 입사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적성에 맞는 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싶다가도 라디오만 들으면 불쑥 솟아나는 마음을 정리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서점에서 읽었던 박연준 시인의 시 한 구절은 해가 갈수록 선명해질 뿐이다.
<마음이라는 게 아주 작게 접으면 접힐 수도 있는 것인데 자꾸 활짝 피고 싶은 꿈을 어떻게 한다?>
접으면 접힐 수도 있는 것일 텐데, 자꾸만 활짝 피고 싶어진다. 활짝.
혹시 SBS를 지원하는 누군가가 볼 수 있으니 말해두자면, 서류에서 떨어진 적은 없다. 언제나 면접에서 탈탈 털렸지.